‘최순실 제부 회사’ 인수한 페이퍼컴퍼니의 주인은?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6 13:40
  • 호수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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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네트웍스 삼킨 사모펀드 AEA 주목…일각 ‘최순실 비자금 창구’ 의혹 제기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검찰의 칼끝은 최순실 일가의 불법 재산을 향하고 있다. 만약 이들 재산이 돈세탁 과정을 통해 부풀려졌다면, 전액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가운데 시사저널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2013년 서양네트웍스의 지분 매각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제보를 받았다. 서양네트웍스는 최순실씨의 동생인 최순천씨의 남편 서동범씨가 대표로 있는 회사다. 즉 서 대표는 최순실씨의 제부(弟夫)인 셈이다. 서양네트웍스는 지난해 말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최씨와 연루된 기업으로 알려지면서 일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서양네트웍스 본사 사옥 © 시사저널 포토

페이퍼컴퍼니 ‘퍼펙트인베스먼트’의 실체

 

1991년에 설립된 서양네트웍스는 그동안 의류 제조와 판매를 담당해 왔다. 주력 상품은 유명 유아복 브랜드인 블루독·밍크뮤·알로봇 등이다. 이 회사는 재무구조가 탄탄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최대주주 지분을 넘기기 전인 2012년 말 기준, 매출은 1518억원, 영업이익은 116억원이었으며, 부채비율은 38.5%에 불과했다.

 

서양네트웍스가 지분을 매각한 시점은 2013년 1월2일이다. 당시 서양네트웍스는 주식 양수도 계약에 의거, 지분 70%를 네덜란드 소재 퍼펙트인베스트먼트로 넘겼다. 계약 전까지 서양네트웍스는 서 대표와 계열사 서양인터내셔널이 각각 4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국내 언론에는 홍콩의 리앤펑그룹이 서양네트웍스 경영권을 인수한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당시 국내 언론들은 리앤펑그룹의 서양네트웍스 지분 매입 시기를 2013년 1월초라고 보도했다. 리앤펑그룹은 1906년에 설립된 홍콩의 중견그룹이다. 생산시설 없이 오로지 유통망만을 가지고 수익을 내는 독특한 사업모델로 전 세계 경영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회사다. 회사 대표는 빅터펑(중국명 馮國經) 회장, 지주사는 FH1937이다. FH1937 산하에 상품 디자인·개발·물류 등을 담당하는 ‘리앤펑유한회사’(리앤펑)와 브랜드 의류·양말·액세서리를 생산하는 ‘글로벌브랜즈그룹홀딩스’, 그리고 홍콩·마카오 편의점 브랜드인 서클케이·토이저러스의 아시아 판권을 갖고 있는 ‘펑리테일유한회사’(펑리테일)가 편입돼 있다. 당시 언론 보도에는 리앤펑그룹이 서양네트웍스 지분을 매입하면서 20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와 있다. 리앤펑그룹 홈페이지에 가보면 현재 서양네트웍스는 펑리테일 산하에 있다.

 

FH1937은 홍콩에 법인을 둔 비상장회사로 빅터펑 회장 형제가 대부분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세 개의 계열사 중 서양네트웍스의 할아버지 회사 격인 펑리테일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회사가 홍콩 증시에 상장돼 있다. 구조상으로 보면, 펑리테일이 가장 윗단에 있으며, 그 아래 퍼펙트인베스트먼트가 있고, 손자 회사 격으로 서양네트웍스가 있다.(34쪽 그림 참조) 하지만 상장사인 리앤펑의 공시자료를 보면 조금 내용이 다르다. 2013년 8월13일 리앤펑은 서양네트웍스를 관리하는 조건으로 퍼펙트인베스트먼트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관리 계약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리앤펑은 계열사 펑리테일이 퍼펙트인베스트먼트 지분 60%를 AEA라는 펀드로부터 매입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관심의 대상은 퍼펙트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다. 공시자료에 보면, 퍼펙트인베스트먼트는 네덜란드에 있는 법인이라고 기재돼 있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퍼펙트인베스트먼트는 페이퍼컴퍼니에 가까운 회사였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해외에 숨겨진 최순실 비자금을 찾고자 독일을 세 차례 방문했으며, 그중 한 번은 퍼펙트인베스트먼트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면서 “서양네트웍스가 퍼펙트인베스트먼트로부터 2000억원의 자금을 유치한 것이 수상쩍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최근 펴낸 책 《끝나지 않은 전쟁》에서 “네덜란드 모처의 숲속 오두막집인 이 회사는 그야말로 초라했는데, 회사 사장이라는 사람도 그러한 투자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연발했다”고 밝혔다. 당시 안 의원과 함께 현지를 찾았던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도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최순실의 독일 비자금 창구였던 비덱스포츠처럼 아무런 연고가 없는 건물에 법인 등기만 해 놓은 사실상 페이퍼컴퍼니였으며, 건물 관리인들도 그곳에 퍼펙트인베스트먼트가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현덕 서양네트웍스 전략기획이사(왼쪽)와 김용회 옥션 부사장이 2016년 5월19일 업무협약을 맺었다. © 시사저널 포토

‘서양’의 공동대표, 조세피난처 회사 출신

 

리앤펑 관리 계약서에 보면, 퍼펙트인베스트먼트는 현재 AEA와 펑리테일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으며, AEA는 네덜란드에서 설정된 펀드라고 기재돼 있다. 정식 명칭이 AEA 펀드 5호(V)인 것으로 봐서 전형적인 사모펀드다. 그렇다면 왜 AEA가 자회사인 퍼펙트인베스트먼트를 통해 곧바로 서양네트웍스를 소유하지 않고, 지분 일부를 리앤펑에 넘겼을까? 국내 대형 회계법인에서 국제 세무 업무를 담당하는 A씨는 “투자자 보호가 생명인 사모펀드 특성상 퍼펙트인베스트먼트를 통해 국내 기업에 투자될 경우 우리나라 세무 당국이 인수자금의 출처에 대해 의심할 수 있기 때문에 홍콩 기업에 일부 지분을 매각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유럽의 사모펀드가 네덜란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뒤, 한국의 중견 아동복 회사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일반적인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핵심은 AEA의 주주다. 일각에서는 AEA가 최순실 일가와 관련된 유럽 내 비자금 창구일 거라고 의심한다. 특히 최순실 일가의 해외비자금 실체를 추적하고 있는 안민석 의원과 안원구 전 청장의 생각이 그렇다. 사모펀드라는 AEA의 실체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현행법상 사모펀드는 주주 구성을 밝힐 의무가 없다. 이런 이유로 불법 비자금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미국·유럽 등 주요 국가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사모펀드 규정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AEA가 리앤펑그룹에 지분을 매각한 것 자체를 불법으로 볼 수는 없다. 다만 리앤펑그룹 산하 기업의 대주주로 AEA가 참여하고 있거나 퍼펙트인베스트먼트 지분을 매입하는 자금을 AEA로부터 받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또 다른 세무 업계 관계자는 “AEA가 한쪽으로는 퍼펙트인베스트먼트를 인수하고 또 다른 쪽으로는 리앤펑그룹에 퍼펙트인베스트먼트 인수 자금을 댔다면, 자신은 2대 주주로 있으면서 사실상 최대주주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퍼펙트인베스트먼트가 자회사인 서양네트웍스 지분을 넘기면서 별도의 관리 계약은 리앤펑과 맺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지분은 펑리테일로 넘기고, 관리는 계열사인 리앤펑에 맡기면서 두 회사는 관리 계약 종료 시점을 2015년 말까지로 못 박았다. 계약서대로라면 리앤펑과의 계약은 이미 끝났다. 현재 관련 사이트에는 리앤펑그룹이 퍼펙트인베스트먼트와 맺은 계약을 연장했는지 확인할 만한 자료가 없다.

 

현재 서양네트웍스는 피터 로데베이크 샤츠(Pieter Lodewijk Schats)와 서동범씨가 공동대표로 있다. 샤츠는 2014년 3월부터 펑리테일 등기이사(Director)로 재직 중이다. 남아공 나탈대학과 케이프타운대학을 나온 샤츠는 그 전까지는 대형 장난감 매장 체인 토이저러스 아시아 관리이사, 홍콩 럭비협회장 등을 지냈다. 시사저널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에서 공개한 역외 폭로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한 결과, 샤츠는 2000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위치한 이글루파이낸스의 등기이사로 근무한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ICIJ는 지난해 4월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피난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를 폭로해 탐사보도 부문 ‘올해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글루파이낸스가 있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는 파나마·바하마제도와 함께 대표적인 조세피난처다. 역외 폭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이글루파이낸스는 중국계로 보이는 인사들이 주주로 구성돼 있다. 그의 조세피난처 소재 기업 근무 이력이 중요한 것은 퍼펙트인베스트먼트 역시 준(準)조세피난처인 네덜란드에 위치해 있어서다. 서양네트웍스 대주주인 펑리테일도 법인 소재지는 네덜란드다. 계열사인 리앤펑은 또 다른 조세피난처 버뮤다에 법인을 등록했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홍콩 회사들은 대체로 유럽에서는 네덜란드·아일랜드·스위스 등 조세 혜택을 주는 곳에 법인을 많이 설립하는데, 이는 회사 매각 또는 투자 유치 시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케이만제도·바하마·버진아일랜드 등이 법인세·소득세 등을 면제해 주는 조세 천국(Tax Paradise)이라면, 네덜란드·스위스·아일랜드 등은 해외 소득에 대해 일정부분 과세 혜택을 준다. 이들 국가들은 조세 천국보다는 혜택이 적어 ‘택스 리조트’(Tax Resort), 택스 쉘터(Tax Shelters)로 불린다. 최근 다국적 기업들이 네덜란드 내에 법인을 세우고, 조세 혜택 차원에서 전 세계 지사의 지적재산권 사용료를 이곳으로 몰아준 것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됐다. 세무 업계에서는 네덜란드 법인을 활용한 이러한 비과세 전략을 가리켜 ‘더치 샌드위치’라고 부른다.

 

네덜란드 법인을 통해 국내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추후 매각 시 생길 세제 혜택까지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다. 한 세무 업계 관계자는 “홍콩 기업이 네덜란드에 법인을 세우고 네덜란드 법인에서 한국에 투자할 경우, 홍콩 세무 당국은 네덜란드 법인의 수익을 국외소득으로 간주, 비과세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서양’ 측 “리앤펑, 홍콩의 공신력 있는 기업”

 

펑리테일 법인 자료에도 샤츠는 등기이사로 올라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서동범 대표의 외아들인 서현덕 전략기획이사가 SNS ‘링크드인’ 프로필에 현재 자신의 직책을 펑리테일 CSO(최고전략책임자)로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언제부터 펑리테일 임원으로 활동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계약 이전부터 활동했다면 매각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증거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양네트웍스는 “대주주 간 지분 거래와 관련해서는 답변해 줄 수 없다”면서도 “다만 리앤펑그룹은 홍콩의 공신력 있는 중견그룹”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서현덕 이사의 프로필과 관련해서도 “현재 서양네트웍스가 펑리테일 소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렇게 기재한 것일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고 항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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