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 아직 말짱해요”
  • 김철수 가정의학과 전문의·한의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4 17:38
  • 호수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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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의 진료 톡톡] 파킨슨·알츠하이머 등 겹친 복합 치매 환자 치료

 

90세 J 회장은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10여 년 전에 중풍이 생겼고 합병증으로 왼쪽 팔이 마비돼 불편을 겪고 있었다. 이후 파킨슨병도 생겼다. 비록 몸이 불편해도 평생 경영해 오던 철강 사업을 위해 외국 출장도 자주 다녔다. 출장 중에 호텔 방을 못 찾는 곤란한 일을 겪고 난 후 병원에서 혈관 치매와 파킨슨 치매를 진단받아 치료를 했다. 하지만 점점 상태가 악화되면서 알츠하이머 치매가 겹쳐 있다는 새로운 진단까지 받았다.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점점 악화돼 밤에 잠을 못 자고 가족을 힘들게 했다. 섬망 증세(갑작스러운 의식의 변화와 함께 주의력·인지기능 장애가 생기는 상태)로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욕이나 헛소리를 심하게 할 때도 있다. 또 환각 증세, 특히 환시가 심해 헛것을 보고 두려워하기도 했다. 증상의 기복도 심했다. 일상생활 역시 걷지도 못하고 주로 누워서 생활했다. 대소변도 못 가리고 식사도 떠먹여야 했으며 간병인이 꼭 옆에 붙어 있어야 했다.

 

한 노인이 도구를 이용한 인지능력검사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치매가 진행되면서 부인에게 험한 소리를 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중년의 딸만 찾았다. 결국 딸이 친정에 와서 아버지를 전적으로 돌봐 드려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고, 가족들을 아주 힘들게 해 모두가 지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이 뇌세포가 재활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와 한약 치료를 원했다. 뇌의 해마와 후각구의 일부 세포를 제외하고 대부분 뇌세포는 재생이 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볼 때 뇌세포의 재생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재활은 가능하다. 뇌세포의 재활을 위해 기존 치료에 병행해 한약 치료를 시작했다.

 

치매 환자는 많은 부분에서 6세 이하의 어린아이 수준보다 못하다. 쓴 한약을 잘 복용해야 치료가 될 텐데, 약을 처방하면서도 쓰다고 거부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한 달이 지나고 아들이 와서 아버지가 약을 잘 복용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약을 먹게 하기까지 힘들었다고 한다. 망상이 심해서 약을 주면 약에 독이 들어 있다며 “너부터 마셔봐”라고 거부해 아들이 먼저 마시고 안심시킨 후에야 겨우 약을 복용했다고 한다. 그러던 환자가 이제는 오히려 약 복용을 좋아한다며 활짝 웃었다.

 

치료로 모든 것이 조금씩 호전돼 갔다. 치료를 시작한 지 11개월쯤 되던 어느 날, 드디어 환자가 두 발로 직접 병원에 찾아왔다. 엘리베이터에서 40m쯤 떨어진 거리를 걸어서 온 것이다. 치료 전과 달리 음식을 차리면 식탁까지 걸어가서 손수 식사도 하고, 대소변 뒤처리도 하고, 소변도 두 시간 정도는 참을 수 있게 돼 외식도 가능해졌다고 한다. 잠도 잘 자고 섬망, 망상, 환각 증세도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총 20개월 동안 치료를 받은 뒤 한약을 중지했다. 그로부터 약 6개월 후에 만난 환자분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 아직도 말짱해요.” 이 말은 뇌세포가 재활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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