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르몬 흩날리며 ‘봄날은 간다’
  •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0 10:13
  • 호수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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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유독 여성들이 춘흥(春興) 못 이겨 하는 까닭

 

봄은 늘 갑자기 온다. 요즘 길에 나서면 눈앞이 환하다. 길가에는 벚꽃·목련·개나리 같은 봄꽃들이 어느새 흐드러지게 피어서 주변이 온통 꽃대궐이다. 이렇게 날씨가 따뜻해지고 바람조차 훈풍이 불면 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용수철처럼 통통 튀는 듯 경쾌해 보인다. 화사해진 거리엔 온통 봄을 찬양하는 노래들이다. 이른바 ‘봄캐럴’이다. 젊은 사람들이라면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라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에 꽂힐 것이고, 나이 든 사람들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라는 《봄날은 간다》의 가사를 흥얼거리며 뒤늦은 로맨스를 기대하기도 할 것이다.

 


봄이 오면 도파민 분비 자극해 흥분시켜

 

봄이 되면 필자에게는 유독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한창 사춘기 소녀였던 어느 늦은 봄밤이었다. 밤도 깊었는데, 어디선가 가까운 곳에서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애절하게 들려왔다. 누군가 대문 앞에 아기를 두고 간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 어머니가 밖으로 나가셨다. 곧 어머니가 “얘야, 이리 좀 나와 봐”라며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부르셨고, 문을 열고 나간 필자는 향긋한 라일락 꽃 향기와 함께 꽤 몽환적인 장면을 마주했다. 제법 넓었던 뜰 한가운데에 심어진 보랏빛 라일락꽃 나무 밑에서 두 마리의 고양이가 한참 세레나데를 부르며 주거니 받거니 연애행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달빛조차 교교히 밝았다. 환하게 푸르스름한 달빛을 받으며 라일락꽃 나무 밑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두 마리의 고양이들이 어찌나 낭만적이고 교태로웠던지, 어머니의 목소리조차 떨리는 듯이 느껴졌었다.

 

그날 밤 맡았던 라일락꽃의 달큼한 향기와 환한 달빛에 파르스름하게 빛나던 라일락꽃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애절한 목소리로 서로를 부르고 어르며 상대를 애무하던 낭만 고양이들은 꽤 충격이었던 듯, 그 후로 라일락꽃 나무 밑을 지날 때면 그 장면들이 또렷하게 떠오르곤 한다.

 

예로부터 봄은 사랑의 계절이었다. 춘흥·춘화·춘사 등 봄 춘(春)자가 붙으면 여지없이 사랑과 섹스, 생식을 포함하고 있었다. 사랑의 노래인 세레나데도 봄밤이어야 더 어울린다. 심지어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달에 태어난 물고기자리는 바람둥이가 많다는 해석도 나온다. 사랑이야 봄·여름·가을·겨울 모두 뜨겁게 할 수 있건만, 왜 우리는 특별하게 봄이 오면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것일까?

 

좀 더 과학적으로 접근해 보면, 여전히 매력 있는 문화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봄에 우리가 흥분되는 이유를 ‘도파민’ 때문이라고 말한다. 도파민은 ‘중독 호르몬’이라고 부를 정도로 우리를  뭔가에 집중하게 하고 빠져들게 하는 호기심 호르몬이다. 헬렌 피셔는 “봄이 되면 날씨는 따뜻해지고, 색색의 꽃들이 피어나며, 새들은 활기차게 노래한다. 이런 자극들이 도파민 분비를 자극해 우리를 흥분시킨다”고 말한다. 즉 공기 중에 떠도는 향긋한 꽃향기와 겨울엔 볼 수 없었던 연초록의 잎새와 꽃들이 우리의 호기심 호르몬의 분비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봄의 자극으로 촉발된 뇌 속 도파민의 충분한 분비는 우리를 충동적으로 새로운 감정에 열렬히 빠지게 하고, 이것은 우리의 사랑 민감도를 높여 유혹과 열정에 빠질 기회를 더 많이 만든다.

 

매년 4월의 뇌는 자신도 모르게 도파민 공장이 되고, 우리를 사랑 중독자로 이끈다. 도파민에 젖은 사람의 뇌를 찍어보면 마치 코카인 같은 약물 중독자의 뇌와 같다고 한다. 물론 도파민으로 시작된 열정이 사랑으로 발전하려면 사랑의 밀어, 키스와 애무 같은 몸의 진도가 더욱 필요하지만, 어쨌든 봄은 우리에게 사랑의 감각을 일깨우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봄이 가진 어떤 속성들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일까?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영향을 받는데, 특히 우리는 온도·감촉·무게·소리·맛·냄새·색깔을 통해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는다. 봄이 되면 기온이 올라가서 따뜻해지고, 따뜻한 온도는 인간의 기분을 좋게 한다. 심지어 따뜻하면 덜 외롭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온도와 감정의 관계를 실험하면서 ‘외롭다’와 ‘차갑다’ ‘춥다’의 단어가 같이 묶이는 것을 발견했다. 토론토대학교의 한 연구팀은 학생들에게 게임을 통해 그룹에서 배제된 느낌을 받게 한 후에 방의 온도를 물어보았다. 같은 온도의 방에 있으면서도 배제된 느낌을 받지 않은 학생들은 24도라고 답했고, 따돌려졌다는 느낌을 받은 학생들은 21도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것은 감정과 실제 온도가 서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 이렇게 배제된 느낌을 받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따뜻한 음료나 음식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정서적 상처를 치유하려고 했다.

 

또한 봄에는 파릇한 풀들이 돋아나면서 푹신한 느낌을 주고, 회색빛 겨울의 거리가 울긋불긋 꽃으로 화사해진다. 꽤 오래된 영화지만, 《오즈의 마법사》를 보면 도로시가 집과 함께 폭풍우에 휩싸여 낯선 곳에 떨어졌을 때부터 흑백영화에서 총천연색 영화로 바뀐다. 이렇게 풍요로운 색깔은 희망·호기심·변화를 의미하고 단색조의 환경보다 인간을 흥분시킨다. 또한 봄에 활짝 피어난 꽃들이 풍기는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가 사람들을 더 너그럽게 하고 즐겁게 한다. 좋은 냄새는 타인과의 상호관계를 긍정적으로 만들어준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한 장면

봄 햇볕이 성욕 부추기는 호르몬 분비 촉진

 

게다가 봄의 햇볕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밝은 빛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그래서 창이 크고 빛이 잘 들어오는 집으로 이사 가면 갑자기 행복도가 높아지고, 긍정적인 경험을 한 날은 ‘밝았다’고 기억하게 되는 이유다. 어둡고 축축한 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북유럽인들이 햇살의 강렬함을 찾아 아프리카의 휴양지를 찾으며 즐거워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에 더해 크리스티안 노스럽이라는 미국의 심신의학자는 봄날의 길어진 햇볕이 성욕을 부추기는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봄이 되면 더욱 성욕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또한 남자보다 훨씬 후각적으로 예민한 여자들은 봄에 땅이 풀리는 냄새, 꽃이 피는 냄새를 맡으면서 강한 성적 자극을 받는데, 이것은 냄새가 뇌로 전달되는 경로와 성적 반응이 뇌로 전달되는 경로가 아주 가까워서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봄이 되면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춘흥을 못 이겨 한다. 어딘가 꽃구경을 가야 할 것 같고, 온몸이 들썩이는 것이다. 어쩌면 생명의 씨앗을 받아 몸 안에서 생명을 키워내는 대지와도 같은 여자의 본능이 공기 속을 떠도는 수많은 꽃의 정자들을 알아채고는 덩달아 싱숭생숭해지는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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