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代를 잡아라” 퍼주기식 공약 남발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8 14:43
  • 호수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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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들 ‘노인 정책’ 살펴보니…

 

장미대선으로 불리는 19대 대통령선거에서 60세 이상 유권자 인구는 전체 유권자의 24.1%에 달한다. 고령화로 노령층 인구가 급속히 늘어난 셈이다. 올해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12년 18대 대선 당시 60세 이상 유권자의 투표율은 80%를 상회했다. 적극적으로 투표장을 찾는 60세 이상 유권자의 표심(票心)이 장미대선의 향배를 가를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는 의미다.

 

때문에 주요 대선 주자들은 다양한 노인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65세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확대하거나 강화하는 방안, 경로당 개편을 통한 노인 돌봄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대다수 정책들이 구체적인 재원 방안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시혜적 복지정책이 아니라 고령 사회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만원 지급” 퍼주기 정책…재원 대책?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기초연금 인상과 치매 국가책임제 실시 등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문 후보는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 하위 80%에게 30만원의 기초연금을 제공하겠다는 인상안을 제시했다. 현행 기초연금 지급액을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리고, 지급 대상도 기존 70%에서 80%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문 후보의 노인 관련 공약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치매 국가책임제’다. 치매를 개인이나 가족이 아닌 국가에서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게 공약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환자가 치료비를 내는 본인부담에 상한제를 도입, 고가의 치매 치료비는 국가에서 부담하고 경증치매 환자에게도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주겠다고 제시했다. 진료시설도 대폭 늘린다. 치매지원센터를 증설하는 동시에 지방 치매지원센터를 새로 지을 계획이다. 많은 치매노인이 요양시설에 머무는 점을 고려해 국공립 치매요양소를 확대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문 후보는 이 밖에 △어르신 건강 돌보는 ‘찾아가는 방문건강 서비스’ 확대 △보청기 건강보험 적용 확대 △마을회관(경로당)을 ‘어르신 생활복지관’으로 개편 △농산어촌 100원 택시 도입 △어르신 일자리 확대 및 수당 인상 등도 공약으로 제시했다. 다만 구체적인 재원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서민복지 관련 7개 대책 가운데 5개가 노인 관련 정책에 집중돼 있다. 특히 독거노인을 위한 공약을 집중적으로 내놓았다. 정부의 ‘노노(老老)케어’와 ‘홀로 어르신 응급안전 돌봄시스템’을 확대하는 것이다. 노노케어는 건강한 노인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찾아가 말벗을 해 주고 식사나 은행 업무, 병원 진료 등을 도와주는 제도다. 봉사 노인에겐 일정한 수당도 지급돼 일할 여력이 있고 사회 참여를 원하는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와 함께 스스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에게 복지도우미가 방문목욕과 건강관리, 식사, 청소 등을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를 비롯해 ‘경로당 연계 독거노인 안부확인 서비스’와 ‘홀로어르신 주거환경개선사업’ 확대를 서민복지 공약으로 제시했다. 홍 후보는 복지재원 예산을 조정해 세금을 늘리지 않고도 충분히 관련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틀니와 임플란트 등 노인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울러 동네 경로당을 노인맞춤형 건강생활 지원센터로 확대·개편할 것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경로당을 노인 건강생활 지원센터로 리모델링하고, 간호사 등의 인력을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또 지역사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과 연계해 인지훈련, 음악·미술, 원예 등 활동 프로그램 등을 시행해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생활 보장을 돕겠다는 포부다. 안 후보는 독거노인 공동생활가정 사업 시행과 노인 생활체육 활성화 등 노인 맞춤형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노인 기초연금·건강보험 등에 대한 공약은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다만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등을 확대한다는 기조로 복지 공약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기초생활보장제도 관련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함께 노인 진료비 본인부담 기준 개선, 치매노인 복지지원 강화, 치매등급 기준 완화, 노인 장기요양보험제도 본인부담금 단계적 폐지 등의 공약을 내놓았다. 유 후보는 약 100만 명의 노인이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소득과 재산이 최저생계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추가 예산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노인 일자리 관련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노인 기준을 65세에서 75세로 올려 더 일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겠다는 의미다. 모든 사람에게 3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를 도입한 뒤 기초연금(월 20만원)과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장기요양 제도와 관련해서는 공공장기요양시설을 늘리고, 동별로 장기요양센터를 만들어 통합된 지역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전문가들 “재원 마련 방안·근본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재원 마련 대책과 함께 종합적인 노인 복지정책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한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박근혜 정부 4년을 겪으면서 증세 없이는 복지정책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재원 조달 방식이 기존 예산의 허리띠를 졸라맨다거나 다른 예산을 돌리는 방식일 경우 공약을 안 지키겠다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를 믿었다가 나중에 큰 혼란이 초래됐다”며 “지금 대선 주자들의 각종 복지공약 재원 대책도 아주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고령 사회 진입에 따른 근본적인 종합 대책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위원장은 “(기초연금처럼) 소득 지원금을 30만원으로 늘린다고 해도 노인들의 생활은 여전히 어렵다”며 “노인 소득보장체계, 노인 건강보장체계, 노인 일자리 등 세 가지로 구성된 노인 복지정책이 상호보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호주의 경우 노인의 건강유지를 위해 운동하는 노인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실시했는데, 예산 절감 효과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최병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기업의 연공서열식 직급체계와 임금체계를 바꿔 노인들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대선후보들은 생산가능인구의 기준을 재정립하는 등 고령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노동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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