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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정호승 시인 “절망 없는 희망보다, 절망 있는 희망이 더 가치”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서 절망으로 몸부림치는 세상 표현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6(Sun) 12:22:21 | 14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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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내린다 / 설악산 봉정암 진신사리탑 위에 먼저 내리지 않고 / 사리탑 아래 무릎 꿇고 기도하는 /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늙은 두 손 위에 먼저 내린다 // 강물이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야 바다가 되듯 / 나도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야 인간이 되는데 / 나의 가장 낮은 곳은 어디인가 / 가장 낮은 곳에서도 가장 낮아진 당신은 누구인가’(정호승의 ‘낮은 곳을 향하여’ 중에서)

정호승 시인이 절망으로 몸부림치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신작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를 펴냈다. 보통 희망은 무엇이며, 무엇을 희망할 것인가를 말하려 드는데, 그는 그런 희망 말하기를 단호히 거절한다. 대신 지금 맞닥뜨린 절망을 직시한다. 그는 신작 시집의 제목이 ‘역설적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진정한 희망은 절망에서부터 비롯되기에, 절망이 없는 희망보다 절망이 있는 희망이 더 가치 있다. 이제는 절망의 가치를 소중해함으로써 진정한 희망의 가치를 느꼈으면 좋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희망이 있는 희망을 찾을 것이다.”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펴낸 정호승 시인 © 뉴스뱅크이미지


“내 인생에 고통이 없었다면 시를 쓸 수 없었을 것”

 

‘나는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 / 희망은 기쁨보다 분노에 가깝다 / 나는 절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을 뿐 / 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 //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정호승의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중에서)

정호승 시인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으로서 시를 써왔는데, 그의 시 쓰기 또한 줄곧 ‘절망이 있는 희망’ 일색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수련이다. 수련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은 물속인데, 그 물은 더러운 흙탕물이다. 흙탕물은 우리가 사는 비극적 현실을, 그곳에서 꽃피는 수련은 아름다운 시의 꽃, 인간의 꽃을 의미하겠다. 틱낫한 스님의 ‘연꽃이 진흙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행복은 고통을 필요로 한다’라는 말처럼 행복을 위해서는 고통에 뿌리를 내려야 된다. 우리는 고통의 가치를 폄하하고 회피하려 하지만, 내게 고통은 시를 쓰게 하는 무엇이다. 만일 내 인생에 고통이 없었다면 시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정 시인은 “인간은 참 비극적인 존재이기에, 시도 인간의 비극성에서 시작된다”고 덧붙이며, 인간이 존재의 가치를 꽃피우기 위해 노력할 때 그 뿌리는 삶의 비극성,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끝없는 절망의 어둠 속에서도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그는 하나를 가지면 꼭 하나를 더 가지려 하고, 하나를 더 가져도 또 하나를 더 가지려 드는 비정한 세상에 대해 분노한다. 그러다가도 전태일거리를 걸으며 “배부른 나를 위해 늘 기도하던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남의 배고픔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빈손이 되어야 내 손이 새가 되어 / 자유의 푸른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 // 빈손이 되어야 내 손에 고이는 / 바람과 햇살이 모두 돈이 되어 /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줄 수 있다 // 빈손이 되어야 내 손이 / 첫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어 / 쓰러진 거리의 사람들을 일으킬 수 있다 // 빈손의 빈손이 되어야 내 손이 / 산사의 범종이 되어 / 외로운 당신의 새벽 종소리를 울릴 수 있다’(정호승의 ‘빈손’ 중에서)

“이 세상에 태어나 밥 한 그릇 얻어먹었으면 그뿐”이라는 정 시인은 가난한 삶일지라도 감사해하며 “누구나 일생에 한 번쯤 폐사지가 되지 못하면 야탑 하나 세우지 못한다”고 말한다.

 

정호승 지음
창비 펴냄
170쪽
8000원


 

사랑은 용서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라고 노래해

 

한 독자는 이번 시집을 읽으며 “시인의 시어가 너무 나약하게 다가온다. 몇 편을 빼고는 답답하다”고 한 줄 서평을 남겼다. 앞서 정호승 시인의 설명처럼 시의 뿌리가 비극에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출판사 측은 정 시인의 이번 시집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언제나 부드러운 언어의 무늬와 심미적인 상상력 속에서 생성되고 펼쳐지는 그의 언어는 슬픔을 노래할 때도 탁하거나 컬컬하지 않다. 오히려 체온으로 그 슬픔을 감싸 안는다. 오랜 시간 동안 바래지 않은 온기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그의 따스한 언어에는 사랑·외로움·그리움·슬픔의 감정이 가득 차 있다. 언뜻 감상적인 대중 시집과 차별성이 없어 보이지만, 정호승 시인은 ‘슬픔’을 인간 존재의 실존적 조건으로 승인하고, 그 운명을 ‘사랑’으로 위안하고 견디며, 그 안에서 ‘희망’을 일구어내는 시편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구축했다.”

정 시인은 어둠이 빛을 이기고 거짓이 참을 이기려 드는 세상, 죽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는 이 비참한 시대의 아픔을 잊지 말자 하면서도, 과거의 분노보다 오늘의 사랑이 더 소중하다고 깨우친다. 사람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할 때가 가장 아름답고 결국 사랑은 용서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래서 그는 ‘용서의 계절’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나에게 첫눈이 내리는 것은 / 용서의 첫눈이 내리는 것이다 / 나에게 마른 잎새들이 제 몸을 떨어뜨리는 것은 / 겨울나무처럼 내 마음의 알몸을 다 드러내라는 것이다 / 나는 오늘도 단 한사람도 용서하지 못하고 / 첫눈도 배고픈 겨울 거리에서 / 눈길에 남겨진 발자국에 고인 핏방울을 바라본다 / 붉은 핏방울 위로 흰 눈송이들이 / 어머니 손길처럼 내려앉아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 / 나와 함께 떠돌던 신발들을 데리고 / 용서의 자세를 보여주며 늠름하게 서 있는 / 첫눈 내리는 나목의 거리를 정처 없이 걸어간다 / 배가 고프다 / 인사동에서 술과 밥을 사 먹어도 배가 고프다 / 산다는 것은 서로 용서한다는 것이다 / 용서의 실패 또한 사랑에 속한다는 것이다 / 언제나 용서의 계절은 오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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