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크리스탈이 아니라 다이아몬드가 되겠다”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4 14:30
  • 호수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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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생생토크] 한국 농구 대표하는 ‘조선의 슈터’ 조성민 취중토크

 

“제가 인터뷰를 해도 되는 걸까요? 올 시즌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조선의 슈터’ 조성민(34·창원 LG)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자, 조성민은 살짝 망설였다. 2016~17 KCC 프로농구 플레이오프가 한창인 가운데 일찌감치 시즌을 종료한 그로선 인터뷰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팀이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성민은 이번 시즌 부산 KT 프랜차이즈 스타란 타이틀을 벗고 창원 LG로 트레이드되면서 농구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했다. 트레이드도 예고편 없이 속전속결로 진행된 터라 선수는 물론 팬들, 동료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2006년 부산 KT(전신 KTF)에 전체 8순위로 지명됐던 조성민은 2016~17 시즌이 프로 데뷔 10년 차였다. 10년 만에 KT가 아닌 LG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조성민으로선 이번 시즌, 인생의 희로애락을 맛보며 농구 인생의 성장을 거듭했다. 오프 시즌에만 할 수 있는 취중토크의 형식으로 조성민을 만났다.

 

2월5일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16~17 KCC 프로농구 창원 LG와 안양 KGC의 경기. KT에서 LG로 트레이드된 조성민이 공격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인터뷰하기를 망설인 걸로 알아요.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기대했다가 탈락한 데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나요.(창원 LG는 올시즌 8위로 시즌을 마쳤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얼마 전 후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어요. 6강 플레이오프에 탈락한 게 비참한 게 아니라 플레이오프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더 이상 농구 코트에 설 수 없는 게 비참한 것이라고. 그것보다 더 비참한 일이 있어요. 시즌 종료 후에는 농구를 잊으려고 아예 관련 기사를 찾아보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사람들과 술 한잔하고 있다가 슬며시 휴대폰을 통해 플레이오프 경기 결과를 확인하는 거예요.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할 때 몹시 비참한 심정이 됩니다.”

 

창원 LG로 트레이드된 후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나뿐만 아니라 선수단 전체가 노력했는데 운이 따르지 않은 것 같아요. (김)종규가 무릎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가 돌아오니까 이번엔 내가 어깨 부상을 당하면서 남은 경기에 뛰지 못했어요. 만약 종규나 내가 부상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팀은 충분히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거든요. (김)시래도 몸이 안 좋았고, 전체적으로 불운했다고 봐요. 그래서일까요? 자꾸 뒤를 돌아보게 돼요. 미련과 아쉬움 때문이에요.”

 

3월26일 고양실내체육관에서 고양 오리온과 시즌 마지막 경기가 벌어졌어요. 그날 경기장에서 조성민 선수는 볼 수 없었는데요.

 

“뛸 수 없는 몸이라 원정 경기에 함께하지 않았던 거죠. 그날 경기를 숙소 TV로 지켜보다가 경기 종료 후에 선수단 단체카톡방에 글을 하나 남겼어요. ‘우리 팀이 탈락한 아쉬움보다 너희들을 너무 늦게 만난 게 아쉽다’면서 ‘비시즌이 기다려진다. 너희들과 처음부터 훈련을 함께하며 다음 시즌을 잘 준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수고 많았다. 우리 내년에 잘해 보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선수들한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선수들이 그 글을 보고 공감을 담은 답장을 보내더라고요.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했습니다.”

 

어깨 부상으로 결장한 건 잘 알려졌지만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김진 감독이 기자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어요. ‘병원에서는 어깨 인대 부상이나 탈골이 아니라고 하는데 조성민이 통증을 느낀다’라고요. 듣기에 따라선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이었는데요.

 

“그건 감독님이 뭔가 오해하셨거나 보고를 잘못 받으신 게 아닐까 싶어요. 매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담당 의사 말로는 같은 부위를 또 다칠 경우 수술할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팔이 안 올라갈 정도였고, 어깨 부위가 약간 찢어져서 피가 고여 있었거든요. 내가 LG에 어떻게 오게 됐는데 몸이 아프지도 않은데 아프다고 꾀병을 부릴 수 있었겠어요. 어떻게 해서라도 경기에 나가고 싶었어요. 팀 순위를 끌어올리려면 내 역할이 중요한 상황이란 걸 잘 알고 있는데 일부러 안 뛰려 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경기에 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어디서 오류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내 몸 상태와 관련된 내용이 전달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로 인해 LG 팬들의 비난을 많이 받았었죠.

 

“내 별명이 ‘크리스탈’이더라고요.”

 

크리스탈요? 어떤 의미죠.

 

“유리몸이라고요(웃음). 자꾸 부상당한다고 그런 별명이 생겼는데 어쩔 수 없죠. 부상당한 건 사실이니까. 내년 시즌에는 크리스탈이 아니라 다이아몬드가 되려고 해요. 어떤 위험에도 깨지고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몸으로 만들 겁니다.”

(조성민은 최근 3시즌 동안 계속 다쳤다. 2014~15 시즌 인천아시안게임 대표팀 차출 여파로 23경기에 결장했고, 지난 시즌에는 발목을 다쳤다. 올 시즌에도 무릎 부상으로 13경기에 출전했는데 LG에서 다시 어깨 부상을 당한 것이다.)

 

3월2일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16~17 KCC 프로농구 창원 LG와 고양 오리온의 경기. LG 조성민이 상대 수비를 뚫고 드리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성민 하면 부산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였습니다. 그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여겼을 텐데 결국 LG로 깜짝 트레이드됐어요. 

 

“그날(1월31일) 오전 훈련하고 점심 먹을 때까지 구단으로부터 어떤 얘기를 듣지 못한 상태였어요. 3시에 시작하는 오후 훈련을 위해 테이핑까지 다 하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감독님 방으로 오라는 호출이 있었죠. 조동현 감독님이 LG 구단의 요청으로 트레이드를 추진하게 됐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전혀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단 한 번도 KT를 떠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거든요. 훈련 나가지 말고 짐 싸서 LG 숙소가 있는 이천으로 가라는 얘기에 혼란스럽기만 했어요. KT 선수들한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떠나는 상황이 납득이 안 돼 혼자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와선 선수들이 훈련 중인 체육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선수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었고요.”

 

KT 선수들 중에 조성민 선수와의 이별에 눈물을 흘린 후배도 있다고 들었어요.

 

“네. 나도, 또 선수들도 모두 당황했으니까요. 제가 KT 주장이었잖아요. 날 믿고 따랐던 후배들이 많았죠. 체육관에 가방을 들고 나타난 날 보고 모두 깜짝 놀랐어요. 차마 선수들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훈련 중이라 짤막하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얘기만 남기고 나오는데 그 뒤를 따라서 막내 (정)희원이가 눈물을 쏟으며 쫓아오더라고요. 그래도 날 위해 울어준 후배가 있어 마음이 아프면서도 따뜻했습니다.”

 

(이날 부산 KT 조동현 감독은 LG가 조성민을 원했고 팀의 리빌딩을 위해 트레이드를 단행했다고 말했지만, 트레이드는 KT가 먼저 원했고 조성민 대신 KT가 받은 선수는 조성민보다 한 살 적은 김영환이었다.)

 

 

그날 곧장 부산을 출발해 경기도 이천의 LG 숙소에 합류했는데 하루에 두 팀의 숙소를 오간 셈이네요.

 

“그렇죠. 그날 밤 이천 숙소로 들어가니까 김진 감독님을 비롯해 선수들이 모두 날 기다리고 있었어요. 인사를 나누고 숙소 배정을 받은 후 방에 들어오니까 정말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마치 대표팀 숙소에 온 것 같았어요. LG에는 대표팀에서 인연을 맺은 종규와 시래가 있어 조금 편하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종규랑은 대표팀 룸메이트를 이루며 친해졌었거든요. 한번은 종규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형이랑 같은 팀에서 뛰어보고 싶다고. 그래서 제가 부산 KT로 오라고 했죠(웃음). 그러려면 종규가 FA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쯤 되면 제가 은퇴할 시기가 될 것 같고. 불가능한 일로 결론을 내리며 대화를 마무리한 게 현실로 이뤄지니까 어안이 벙벙했어요. 제가 LG로 갔을 때 가장 뜨겁게 반가워해 줬던 이도 종규였고요.”

 

2월5일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LG 유니폼을 입고 홈인 창원에서 처음으로 경기에 나섰는데요. 이날 창원체육관이 2016~17 시즌 두 번째 매진을 기록했다면서요.

 

“시즌 최다 관중을 이루기도 했어요(웃음). 홈 첫 경기를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창원 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 고민 끝에 나온 얘기가 ‘내가 LG에 온 이유는 단 한 가지다. 통합우승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진심을 담아 전한 메시지에 관중들 반응이 장난 아니었어요. 팬들도 그걸 바랐고, 그 바람을 제가 건드니까 엄청난 환호와 박수로 응원을 보낸 것이죠. LG 선수들 중 우승을 거론한 선수가 없었다고 해요. 섣불리 그런 얘기를 꺼내지 못했나 봐요. 부담이 크니까. 그런데 제가 오자마자 통합우승을 얘기하니까 팬들의 반응이 굉장히 뜨거울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때 정말 소름이 돋았어요. 이렇게 열정적인 팬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LG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며 느낀 점이 있었을 텐데요.

 

“‘날라리’들이 많을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착하고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그동안 그 선수들을 이끌어갈 만한 구심점이 없었던 것 같아요. 선수들은 제게 그런 역할을 원했고, 나 또한 팀 우승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 역할을 받아들이고 싶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6강 플레이오프에 탈락했으니 여운이 깊을 수밖에요.

 

“시즌 끝나고 한동안 가슴 한쪽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LG 팬들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게 가장 미안했습니다. 내년 시즌에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되겠죠. 그리고 이 얘기는 처음 말하는 내용인데….”

 

어떤 얘기인가요.

 

“창원 LG로 트레이드되기 전까지만 해도 은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어요. 그 결론이 KT와의 FA 계약 기간이 끝나는 36세에 은퇴하기로 결심했던 겁니다. KT가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빅3’(이종현·최준용·강상재) 영입에 실패하고, 외국인 선수도 부상 등으로 퇴출되고 교체되면서 시즌 출발부터 어수선했거든요. 선수 생활의 남은 목표가 우승뿐인데 KT의 전력으로 우승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니까 참담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팀이 우승할 수 없다면 차라리 FA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은퇴를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FA 이후 다른 팀으로 갈 마음도 없었어요. 우승이 아니라면 선수생활을 연장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한몫했고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트레이드로 팀을 옮기면서 나도 모르게 뜨거움이 생기더라고요.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우승에 대한 욕심이 꿈틀거렸고요. LG 유니폼을 입고 뛰는 내내 그 뜨거움이 날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은퇴에 대한 생각을 가족들도 알고 있었나요.

 

“아내한테는 얘기했었어요. 많이 속상했을 겁니다. 아내도 나름 세웠던 그림들이 있을 텐데 남편이 36세에 은퇴하겠다고 선언해 버렸으니까요. LG에서 그 마음은 잠시 묻어뒀어요.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만 했던 농구가 다시 재미있어졌어요. 훈련 시간이 기다려지고, 경기할 날만 기다리게 되고. 그런 변화들이 집 나갔던 내 멘털을 제대로 잡아줬어요. 지금은 부상만 없다면 계속 선수 생활을 이어 가고 싶어요.”

서울 논현동 중식당에서 창원 LG 소속 조성민 선수는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 시사저널 박정훈


 

그동안 기회가 있었지만 MVP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어요. 조성민 선수가 생각하는 ‘내 인생의 MVP’는 언제였다고 생각하나요.

 

“2013~14 시즌, 평균 출전시간 32분, 평균 득점 15점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팀을 4강까지 진출시켰을 때라고 생각해요. 아, 그런데 당시 4강에서 만났던 팀이 창원 LG였네요(웃음). LG한테 스윕을 당하며 시즌이 마무리됐고, 당시 MVP는 문태종 선수한테 돌아갔었죠. 그때는 3점슛을 쏘기만 하면 들어가던 시기였는데.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농구의 커리어 하이를 찍은 2013~14 시즌이 내 인생의 MVP가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지금은 은퇴 전까지 MVP를 받는 것보단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승이 목표입니다. 내년 시즌 준비 잘해서 재도약을 이뤄야죠. 꼭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조성민은 비시즌 동안 전력분석실에서 살 예정이라고 말한다. KT에서 LG로 ‘이사’오며 갖고 있던 농구 패턴지를 모두 버리고 온 게 두고두고 후회된다는 그는 LG에서 전력분석 공부를 하며 농구에 대한 시각을 넓히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조성민한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바로 아내 윤숙정씨(서울대 관악부를 졸업한 플루티스트, 결혼 전 경북도립교향악단 수석 연주자로 활동)와 사위를 전폭적으로 믿고 지지해 주는 장인과 장모님이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모두 교통사고로 잃은 조성민으로선 아내를 통해 가족을 형성한 장인, 장모님에 대한 고마움이 차고 넘친다. 두 살 된 딸 을하양은 조성민의 비타민이나 다름없다. 농구 인생의 ‘3쿼터’를 막 마치고 돌아선 그가 ‘4쿼터’에선 어떤 농구로 코트를 채워 갈까. 4쿼터 안에 그가 소원하는 우승이 담겨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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