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없는 독립영화관의 슬픈 투쟁
  • 나원정 매거진M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4 14:20
  • 호수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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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지원 나선 독립영화전용관 신영극장, 이를 통해 본 국내 독립영화관 실태

 

지난 3월24일 한국 독립영화 진영에 오랜만에 희소식이 있었다. 강릉에 독립·예술영화 전용 상영관 ‘신영극장’이 1년 만에 재개관한 것이다. 신영극장은 강릉시네마떼끄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비영리 민간극장이다. 이번 재개관으로 이 극장은 또 하나의 ‘최초’ 타이틀을 얻게 됐다. 지난해 2월29일 운영난으로 잠정 휴관한 신영극장이 재개관할 수 있었던 것은 강릉시가 5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초자치단체가 독립·예술영화관에 지원한 국내 최초 사례다. 전국의 작은 극장들이 이번 사례를 하나의 선례로서 주목하는 까닭이다.

 

2016년 8월5일 국내 최초 야외독립영화제이자 강원도의 대표 여름영화축제인 ‘제18회 정동진독립영화제’가 강릉시 강동면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 연합뉴스


 

“영진위 지원 사업, 철저한 배제와 검열의 논리”

 

신영극장의 재개관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탄압 속에 위축됐던 독립영화계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기지개를 켠 첫 ‘사건’이기도 하다. 그동안 보수 정권은 영화계, 특히 독립영화계가 좌파에 점령당했다는 편견을 가져 왔다. 이는 박영수특별검사팀이 밝혀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영화 진흥을 위해 설립된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특히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상영한 영화관을 정부 지원 사업에서 배제했다.

 

지난 2월7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역자 사퇴 및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영화인 1052인 선언’ 자리에서 영화인들은 정부 비판적 문화·예술인 지원을 조직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명단, 다시 말해 블랙리스트에 대해 개탄했다. 《다이빙벨》 배급사 시네마달 김일권 대표는 “반정부적인 영화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독립·예술영화관에 대한 (정부) 지원이 끊겼다”며 “(정부 비판적인) 박찬경·이송희일 같은 감독들의 영화는 지원하지 말라고 지시까지 했다”고 했다. 이에 독립영화 제작·배급사 인디플러그 고영재 대표는 “정부가 특정 영화를 상영한 독립·예술영화관 지원 중지를 감행한 건 《다이빙벨》 이전부터였다”고 했다.

 

“내가 당시 지원 심사를 맡았는데, 영진위 예산도 넉넉해 극장마다 고루 지원하기로 결정이 났다. 그런데 일주일 뒤 영진위가 갑자기 재공고를 하더라. 2014년의 일이다. 영진위에 이유를 묻자, 사업 성격이 변경됐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대구동성아트홀과 대전아트시네마가 지원에서 탈락했다. 나중에야 2013년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했기 때문인 걸 알았다.” 고영재 대표의 말이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2010년 천안함 사건에 의혹을 제기한 백승우 감독의 다큐멘터리로, 극장 상영이 돌연 줄줄이 취소되자 결국 온라인에 무료 배포하며 화제가 됐다.

 

서울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안소연 프로그래머는 제주도 미 해군기지 건설을 비판한 2011년 다큐멘터리 《Jam Docu 강정》과 《다이빙벨》 등을 상영한 서울 아리랑신네센터와 인디스페이스, 대구 오오극장 등이 극장판 블랙리스트에 올라 영진위 진흥사업에서 계속 제외됐음을 언급하며 “영진위의 지원 사업이 철저한 배제와 검열의 논리로 짜여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엔 이런 뉴스도 나왔다. 당시 영진위 지원 사업에 대한 영화계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영진위가 어느 영진위 위원의 이름으로 조작된 기고문을 내보내 여론 왜곡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영진위가 만든 기고문 초안이 해당 위원의 이름으로 그대로 공개됐다”고 CBS 노컷뉴스는 지난 4월1일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 측 관계자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2015년 6월 영진위가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 삭감에 대해 영진위에 우호적인 기고문을 영화계 인사 이름으로 조작해 한 일간지에 기고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영진위의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신영극장도 몸살을 앓았다. 2012년 문을 연 신영극장은 4년 뒤 영진위 지원이 끊기면서 예산난으로 문을 닫았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는 이곳을 운영하는 강릉씨네마떼끄에 관한 언급이 있다. ‘단체를 이끄는 박광수 사무국장이 문화·예술인 269인 진보신당 지지선언’이란 문구와 함께 ‘지원 배제’라고 표기됐다. 사실상 정치적 개입이 극장의 숨통을 죄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독립영화전용관으로 새롭게 개관한 신영극장 내부 © 신영극장 제공


영진위 선정 영화 매달 2편씩 상영해야 지원

 

그러면 독립·예술영화관 운영에 왜 영진위 지원금이 중요할까. 시네마달 김일권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독립 다큐는 1년에 네다섯 편 부지런히 개봉해도 석 달에 1000만원 벌기가 힘들다. 영진위를 통한 정부 지원금에 기댈 수밖에 없다.” 제작 규모를 키울수록, 개봉관을 많이 확보할수록 흥행 가능성이 높아지는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 국내 극장가에서 《귀향》 《자백》 같은 독립영화 흥행작은 가뭄에 콩 나듯 나는 게 현실이다. 다양성영화 한 편에 대한 배급 지원금은 통상 2000만~3000만원 선으로, “약 20~30개관 개봉을 기준으로 포스터와 예고편을 만들고 시사회를 진행하는 실비(實費) 정도”라고 김일권 대표는 말했다. 최근엔 독립·예술영화 중에서도 화제성 높은 작품들을 대기업 극장 브랜드가 독점 상영하면서 작은 영화관들은 상영할 기회도 갖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해졌다.

 

이러한 마당에 2015년 영진위는 ‘예술영화전용관 유통배급 지원 사업’을 실시하면서 조건을 내걸었다. 지원 대상 극장들이 영진위 위탁단체가 선정한 영화 24편을 매달 2편씩 의무 상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진위 입맛에 맞는 영화를 틀어야 지원해 주겠다는 얘기다. 이는 영화관 고유의 상영작 선정권을 침해하는 행태이기도 하다. 2014년 《다이빙벨》 상영을 놓고 부산시와 갈등을 겪었던 부산국제영화제는 정부가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압박한 정치적 프레임이 독립·예술영화관에도 고스란히 적용된 셈이다. 서울 종로구의 씨네코드 선재, 광화문 스폰지하우스 등이 잇달아 폐관하고 창원의 씨네아트 리좀 등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된 배경이다.

 

 

독립영화를 강릉 대표 문화콘텐츠로 육성

 

반면 영진위 직영 독립영화관 인디플러스는 연간 1억원 넘는 지원금을 가져갔다. 편중된 예산 운영을 의심할 만한 지점이다. 2011년 서울 신사동에 문을 연 인디플러스는 정치적 비판이 담긴 작품을 상영하지 않음으로써 ‘독립 없는 독립영화관’이란 일부 언론의 한탄까지 듣다 재정난이 겹쳐 결국 지난해 문을 닫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각각 천안과 포항에 새로 문을 연 두 곳의 인디플러스 극장에는 또다시 1억4000만원 넘는 영진위 사업비가 지원됐다. 가뜩이나 빠듯한 독립영화 상영관이 늘어났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하지만, 이곳들 역시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영화만 상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제기된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인 탄압에 일조한 혐의가 드러난 김세훈 영진위원장은 영화계의 사퇴 요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많은 영화인들이 여전히 블랙리스트의 먹구름이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신영극장은 이번 재개관에서 영진위의 어떠한 지원금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임대료 등 외부 지원금 없이는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재개관이 성사된 데는 강릉을 ‘독립영화 도시’로 조성하고자 하는 강릉시의 의지가 있었다.

 

지난 4월4일 강릉시청 상황실에서 열린 ‘독립영화도시 강릉 조성 연구용역’에 대한 결과 보고회에서 강릉시는 독립영화 관계자들과 함께 독립영화를 강릉 대표 문화콘텐츠로 육성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용역을 진행한 연구팀은 조례 제정 등 안정적인 독립영화 지원 시스템과 폐교 등을 활용한 독립영화 플랫폼 설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독립영화 제작과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강릉시는 올해 19회째를 맞는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대해서도 2017년 추경예산안에 반드시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올해 영진위가 국제·국내 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을 대폭 삭감한 것과 비교된다.

 

공사 전 신영극장의 모습이 나온 홍상수 감독의 신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한 장면 © ㈜영화제작전원사 제공


새로 문을 연 신영극장은 시설도 좋아졌다. 기존 좌석 200석을 111석으로 줄여 더욱 편안한 관람 환경을 조성했다. 내부 설비도 개선했다. 재개관작인 홍상수 감독의 신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는 공사 전 신영극장의 모습이 나온다. 두 번째 챕터 첫 장면에서 주인공 영희(김민희)가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극장이 바로 신영극장이다. 신영극장은 2012년 독립·예술영화관으로 새 단장하기 전 1960년대부터 운영돼 온 강릉의 유서 깊은 명소이기도 하다. 신영극장 재개관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는 게 영화 관계자들의 평이다.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독립·예술영화관들이 바로 서는 데는 지원금만큼이나 관객의 진심 어린 지지가 절실하다고 영화인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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