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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이 승자에게 미래는 없다

[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벼랑 끝에서 다시 만난 문재인과 안철수, 네거티브 공세 아닌 정책과 철학으로 승부해야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2(Wed) 1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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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과 안철수 서울대 교수는 서로 예의를 갖추며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해주던 아름다운(?) 사이였다. 2012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의 경쟁에 대해 “단순히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후보가 돼 정권을 장악하는 차원이 아니라 함께 연합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수준까지 가야 한다”고 밝혀 정계에 수많은 이슈와 화제를 몰고 오기도 했다. 특히,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의 교감에 대해 시대정신을 포함해 향후 우리 사회의 방향이나 가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가깝기에 얼마든지 함께 힘을 합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불과 5년 전 일이다.

 

안철수 후보 역시 과거에 문재인 후보를 얼마나 존중하고 그의 품격에 대해 높이 평가했는지는 당시 진심캠프에 참여했던 구성원들이나 주변 측근들이라면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5년 전 후보 단일화를 위한 TV 토론에서도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압박하거나 공격하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스탠스를 끝까지 주장해 캠프 구성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서로 예의를 갖춰 상대를 존중하며 정책으로 품격 있게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안철수 후보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2012년 11월22일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1대1 단일화 담판 결렬 이후 두 사람은 현재까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느낌이다. 

 

5년 전,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방향이나 가치관, 시각이 유사하다고까지 주장했던 두 후보는 지금 누구보다 정치와 경제, 안보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해법에 관한 간극(間隙)이 벌어져 있다. 일자리 및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에 대해서도 문재인 후보는 정부 주도, 안철수 후보는 시장 주도가 보다 타당하다고 맞서고 있다. 이외 개헌, 교육, 복지 등 다양한 정책에 있어서 두 후보가 생각을 같이 하는 부분은 찾기 힘들 정도이다. 5년 전, 범보수 세력에 맞서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던 두 후보는 지금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두 후보의 사이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안철수 후보의 입장을 먼저 살펴보자.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실망을 했는지는 지금까지 수많은 주변 측근들이 증언해주고 있다. 안철수 후보가 친문 패권주의를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이유는 5년 전 단일화 협상에서 공세적으로 나왔던 민주당의 조직적 압박 때문이기도 하고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당대당 통합을 이룬 후에도 사사건건 자신의 생각에 발목을 잡았던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행태 때문이기도 하다. 안철수 후보가 계파정치와 세력 확산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문재인 후보 뒤에 숨겨진 인의 장막이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의 입장은 어떤가. 문재인 후보 역시 서운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재인 후보에 관해서는 일관되게 품격 있고 예의 바르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앞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치에 나선 이후 그는 뜻하지 않게 ‘믿을 수 없는 사람’, ‘짐승만도 못하다’ 등의 상대 비난을 감당해야 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간다는 점을 이유로 과거 안철수 후보에게 행해졌던 비판인 ‘통합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동일한 비난마저 듣고 있다. 문재인 후보의 입장에서 볼 때, 당의 혁신을 위해 협력해주길 간곡히 요청했을 때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이는 다름 아닌 안철수 후보였으니(물론, 이에 관해 두 사람의 당시 상황 해석은 지금도 판이하게 다르다) 그에 대한 서운함이 누구보다 크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5년 전, 어색하게 서로 헤어졌던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아이러니하게 대선 본선에서 다시 자리를 마주하게 됐다. 안철수 후보가 올해 1월부터 주장한대로 사실상 양강 구도가 확고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는 80%에 가까운 비호감을 유지하고 있고 연일 막말로 국민들의 신뢰에서 벗어난 지 오래며,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는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자신의 실력과 역량을 현재 제대로 검증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 역시 ‘군소정당 후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기에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겉으로는 5자구도지만 사실상의 1대1 양자 대결에 직면해 있다. 

 

이번 재대결은 두 후보에게 대통령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에 보다 혼신의 노력을 다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도 만약 패배한다면 미련 없이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인터뷰를 통해 수차례 밝힌 바 있으며, 안철수 후보 역시 이번에 패배한다면 5년 후 안희정, 이재명 등의 잠재적 후보 그리고 불확실한 판세에 직면할 수 있기에 승리를 보장한다는 확신이 없다. 두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모든 화력을 집중할 가능성이 큰 이유이다. 이미 SNS 상에서 두 후보의 지지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장점을 부각하고 자신이 반대하는 후보의 루머를 가짜 뉴스로 퍼뜨리는 등 전면전에 돌입한 상황이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모두 인품 및 역량에서 흠잡을 데 없이 좋은 정치인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필자의 입장에서 이번 재대결이 조금 걱정되는 이유는 두 후보의 역량과 인품을 캠프 및 지지 세력이 여전히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이다. 예컨대,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제기하는 ‘안철수 조폭’, ‘안철수 신천지’ 등의 공세는 군사정권 시절 상대 후보를 무너뜨리기 위한 마타도어 공세에 가깝다. 또한, ‘3D’를 삼디로 읽었다고 해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 캠프가 국립국어원에 공식적으로 문의하는 행태는 세련되지 못한 반응이다. 오히려, ‘정보통신 용어가 너무 복잡해서 쉽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문재인 후보의 반응이 훨씬 품격 있었다. 

 

안철수 후보 측에서도 ‘문모닝’과 같은 지엽적인 네거티브 공세는 중단해야 한다. 국민의당 지도부가 ‘문모닝당’으로 불리며 연일 문재인 후보를 비난한다고 해서 안철수 후보의 지지가 오른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패착일 가능성이 크다. ‘안철수 조폭 연루’ 논란에 대해 웃으면서 정책과 후보의 철학을 검증하자고 주장한 안철수 후보의 반응이 훨씬 세련됐다고 느낀 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지지자들 역시 연일 상대 후보에 대한 비난과 무책임한 가짜 뉴스만을 퍼뜨리는데 혈안이 되고 있다. 공정하게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철학과 정책을 분석하고 상대 후보의 정책이나 철학에서 다소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이 진정한 지지자들의 모습이다. 

 

현재, 문재인 후보는 ‘정권 교체 세력 대 적폐로부터 지지를 받는 정권 연장 세력’으로 프레임을 강화하고 있고, 안철수 후보는 ‘계파정치에 의한 과거 세력 대 대탕평에 의한 미래 세력’으로 프레임을 확정한 모습이다. 5년 전 전초전에 이은 벼랑끝 재대결을 진행하다 보니 두 캠프가 갈수록 부정적 공세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국민 여론은 무려 80% 였기에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적폐세력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문재인 캠프의 공세는 오히려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후보가 ‘삼디’라고 읽었다고 해서 미래에 대해 준비하지 못한 후보라고 물아 부치는 안철수 캠프의 태도 역시 공정하지 못하다. 

 

아쉬운 점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두 후보의 캠프는 상대에 대한 네거티브에 치중해 있고 지지자들 역시 강성의 모습으로 두 후보의 당선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다수 유권자는 진흙탕 싸움이 아니라 두 후보의 진정성이 가미된 역량 대결이 펼쳐지길 기다리고 또 기대하고 있다. 네거티브로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여론몰이 방식이다. 상대 후보에 대한 무책임한 비난과 흑색선전이 아니라 자신이 더 나은 정책과 철학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선거가 되길 바란다. 정치는 결과만 남는 전쟁이자 현실이라지만 너무 승리지상주의, 현실주의에만 집착하는 정치인을 지지할 유권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상처뿐인 영광과 피투성이 승자에게 미래는 없다는 점을 두 후보 모두 명심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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