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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교류로 남북관계 훈풍 불까

[이영종의 평양인사이트] ‘2018 여자 아시안컵’과 ‘국제아이스하키 여자 선수권’ 평양과 강릉서 동시 개최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2(Wed) 15:00:00 | 14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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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10일 낮 평양 순안비행장. 흰색 기체에 붉은 라인이 그려진 북한 고려항공 여객기 한 대가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 비행기에는 중국 우한(武漢)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선수권대회(동아시안컵)에서 우승하고 귀국하는 북한 여자 축구선수단이 타고 있었다. 결승전에서 한국팀을 꺾고 2연패를 한 터라 감격은 더했다. 선수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할 찰나 환영 군중들 속에서 일제히 큰 함성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당시 직책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깜짝 등장 때문이었다.

 

이날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는 “김정은 동지가 (부인인) 리설주 동지와 함께 비행장에서 선군조선의 장한 딸들을 직접 맞았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선수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축하의 말을 건넸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맹활약으로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한 라은심 선수에게 ‘노력영웅’ 칭호가 수여되는 등 파격적 포상이 내려졌다. 최고지도자까지 출동한 뜻밖의 환영에 감격한 감독과 선수들은 격정의 눈물을 흘렸다는 게 북한 측 보도였다. 일부는 김정은 옆에 다가가 팔을 끌어당기고 격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김정은으로부터 직접 최고의 찬사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활주로 주변은 평양 시민들로 가득 채워졌고 시내로 들어가는 연도에도 20여만 명이 동원됐다는 게 북한 매체들의 당시 보도였다.

 

4월7일 ‘2018 여자 아시안컵’ 예선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기가 열린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양팀 선수들이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김정은, 집권 후 스포츠 분야에 각별한 관심

 

북한 최고지도자가 스포츠 선수단의 개선을 환영하러 공항까지 나가는 건 전례가 없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1994년 10월 북·미 간에 체결된 제네바 핵 합의 때 북한 측 대표였던 강석주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공항에 나가 맞이했다는 얘기는 있었다. 북핵 위기 속에서 9억42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한 대북 경수로 발전소 지원 사업을 약속받는 협상을 이끌어낸 데 따른 축하 성격이었다. 여자 축구선수를 맞으러 직접 부인과 고위간부들을 데리고 공항 영접을 한 건 그만큼 스포츠에 쏟는 김정은의 관심이 각별하다는 걸 보여준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으로 집권한 김정은은 ‘체육 중시’라는 구호 아래 축구와 육상 등 북한이 상대적으로 자신감을 보여온 종목에 집중해 왔다.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 유학 시절 즐겼다는 농구에도 관심이 각별해 전미농구협회(NBA) 출신 데니스 로드먼 일행을 평양으로 초청해 친선 농구경기를 갖도록 하고 직접 참관하기도 했다. 마식령스키장을 건설하고 백두산이 있는 삼지연을 개발토록 하는 등 동계스포츠에도 관심을 나타내왔다. 아버지 김정일이 영화와 혁명가극 같은 문화예술에 관심을 보인 데 비해 김정은은 스포츠 분야에 치중하고 있는 형국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스포츠를 다루는 북한 당국의 입장에도 눈에 띄는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휴일 북한 TV에는 독일 분데스리가나 영국 EPL(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같은 수준급 프로경기의 주요 매치가 북한 해설자 입담과 함께 방영된다. 북한에서도 우리의 K리그 같은 프로축구 대항전이 펼쳐지는데, 노동신문 등에는 한 주간의 경기 일정이 소개되기도 한다. 북한 팀이 패하거나 경기력에서 열세를 면치 못한 경우도 TV를 통해 방영하는 건 김일성·김정일 집권 시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대북부처 당국자는 “북한 선수단이 단 한 명도 출전 못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 북한 TV가 하루 20~30분씩 주요 경기를 전한 것도 김정은 시기 들어와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남한과의 스포츠 대결이나 교류에서도 과거의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자신들이 남한과 어깨를 겨룰 만하다고 판단되거나 다소 우세를 점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종목에서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는 추세다. 4월5일 평양에서 열린 ‘2018 여자 아시안컵’ 예선 B조 한국과 인도 경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양측 선수단이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 나타나자 장내 아나운서는 “관람자 여러분, 인디아 팀과 대한민국 팀 선수들이 입장하겠습니다”라고 알렸다. 태극기, 인도 국기, 아시아축구연맹(AFC) 깃발이 등장했고, 인도 국가에 이어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5000여 명의 북한 관중들은 일제히 일어서 외국 국기에 대한 예의를 표했다. 김일성경기장에서 태극기와 애국가가 등장한 건 1969년 이 경기장이문을 연 이후 처음이라는 게 체육계 인사들의 설명이다.

 

4월6일 강릉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여자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팀과 북한팀이 맞붙었다. © 연합뉴스


 

평양에서 애국가가 처음으로 공식 연주된 건 김정은 집권 시기인 2013년 9월 세계역도선수권대회 때다. 과거 태극기 게양이나 애국가 연주가 부담스러워 남북한 스포츠 대결을 제3국에서 치른 경우까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파격적인 일이었다. 이를 두고 김정은이 주민들에게 ‘대남 자신감’을 과시하려는 차원에서 연출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노동당원과 특권층 등 핵심계층이 중심인 평양의 경우 큰문제가 없을 것이란 판단을 했기 때문이란 진단도 있다. 이번 김일성경기장 태극기 게양의 경우 국제 스포츠 경기를 주최하는 데 따른 룰을 북한이 따르도록 하려는 설득과 은근한 압박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AFC 측은 평양에 경기를 유치하는 조건으로 국가 연주 및 국기 게양과 관련된 국제관례를 준수하겠다는 북한의 각서를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스포츠만으로 교류협력 물꼬 트기 역부족”

 

평양 김일성경기장에 태극기가 휘날린 4월5일 강원도 강릉에서는 북한 국기인 인공기가 펄럭였다.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 세계선수권 디비전 2그룹A(4부 리그) 대회 3차전인 북한과 영국의 경기에서다. 연장전 끝에 3대2 승리라는 이변을 일으키면서 강등 위기에서 탈출한북한 선수들은 눈물을 흘렸다. 대형 전광판에는 인공기가 가득 수놓였고, 북한 국가(북한도 국가를 ‘애국가’로 지칭하나 가사와 곡조는 전혀 다름)가 울려 퍼졌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시기에 잇달아 벌어진 스포츠 교류가 남북관계에 훈풍을 불어넣을 것이란 기대도 대두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분위기 속에 꽁꽁 얼어붙었던 한반도 정세에도 변화의 기류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란 측면에서다.

 

하지만 스포츠를 통한 교류협력 물꼬트기가 약발을 발휘하기엔 남북관계는 물론 주변 정세가 녹록하지 않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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