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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르완다 대학살, 잔인한 4월을 기억하라!”

이형은 팟캐스트《올어바웃아프리카》 진행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4.08(Sat)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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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7일이면 세계 곳곳에서 르완다 학살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크위부카(Kwibuka)’라는 추모 행사가 개최된다. ‘크위부카’는 르완다의 토속어인 키냐르완다어로 ‘기억하다’라는 뜻이다. 이 행사명에는 학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르완다 국민들의 화해와 단결 그리고 재건을 위한 그들의 열망의 의미를 담고 있다. 

 

르완다 대학살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 중 하나로 르완다 내전 중 다수족인 후투족에 의해 투치족과 이들을 옹호했던 중도 성향의 후투족이 집단 학살된 사건이다. 공식적으로 1994년 4월7일부터 7월 중순까지 약 100일 동안 100만여 명이 살해됐다고 알려졌으나, 2008년 AERG(학살 생존자 학생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390군데의 학살 장소 및 무덤 등을 조사한 결과 약 200만 명이 살해됐다. 이 통계에는 학살기간 동안 강이나 호수에 버려지고 화장된 시신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끔직한 대학살은 1994년 4월6일 당시 르완다 대통령이었던 쥐베날 하브자리마나와 부룬디 대통령이었던 시프리앵 은타랴미라가 타고 있던 비행기가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하강하던 중 격추돼 탑승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에서 시작됐다. 후투족 출신인 두 대통령의 죽음이 투치족과 중도성향의 후투족을 향한 폭력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사실 투치족과 사건 용의자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1994년 4월의 르완다 키갈리 집단학살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관에 어린이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시돼있다. ©연합뉴스


 

이 비극적 학살의 가해자인 후투족과 피해자인 투치족, 이들의 갈등과 증오가 학살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갈등과 증오는 르완다를 지배한 유럽 열강의 식민지 정책에 의해서 탄생됐다. 

 

식민지 정책이 낳은 부족 간의 갈등 : 후투족과 투치족

 

르완다 국민은 전통적으로 약 20개의 씨족들로 구성됐다. 전체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농업에 종사하는 후투족, 목축업에 종사하는 14%의 투치족, 그리고 수공업에 종사하는 1%의 트와족으로 크게 나뉜다. 후투, 투치, 트와는 토지 소유 여부에 기초한 경제 활동에 따른 분류로 부족을 나누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들은 키냐르완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서로 유사성이 많은 거의 같은 종족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당시 사회적 다윈주의에 사로잡힌 유럽 열강이 르완다에 진입하면서 자의적 판단에 의한 우열적인 부족 분류가 이뤄지면서 르완다 국민들 간의 갈등이 시작됐다. 

 

벨기에에 앞서 르완다를 먼저 지배했던 독일은 그들의 경제 활동과 신체 조건에 따라 르완다 사람들을 분류했고 이 분류가 종족 개념으로 바뀌게 됐다. 독일은 키가 크고, 피부색이 덜 까맣고, 코가 높은 이들을 투치족, 나머지를 후투족으로 분류했다. 그들은 투치족을 검은 유럽인이라고 칭하며 후투족보다 월등하다고 여겼다. 이때부터 르완다 국민들은 투치족과 후투족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두 집단의 갈등과 증오는 사회적, 정치적 차별 그리고 교육과 세뇌에 의해 싹을 키웠다. 

 

벨기에는 소수의 투치족을 통해 다수의 후투족을 지배하는 식민 정책을 펼치면서, 투치족은 권력을 장악하게 됐다. 벨기에인은 르완다를 수월하게 통치하기 위해 두 집단을 분열시켰고, 소수파인 투치족을 식민지배의 앞잡이로 내세웠다. 아주 오래전 르완다 외부에서 이주해 들어온 투치족이 원주민인 후투족에 비해 신체적 조건 등 여러모로 투치족을 우월한 인종으로, 후투족을 열등한 인종으로 규정한 선입견적 인종학적인 사고에 기초해서 식민지배 정책을 폈던 것이다. 

 

19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을 한 이후 기득권을 놓고 두 집단의 투쟁과 갈등은 더욱 극단적으로 치달았다. 1990년대 후투족 정치 엘리트들은 정치, 사회, 경제 문제를 투치족의 탓으로 돌리고, 투치족은 르완다애국전선을 중심으로 뭉치면서 기득권을 되찾기 위한 투쟁이 지속되면서 르완다 내전이 발생하게 된다. 

 

라디오방송과 학살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과 증오는 오랜 기간 지속됐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 짧은 기간에 인종청소에 가까운 학살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라디오 방송의 역할이 매우 컸다. 

 

학살 직후 라디오 방송을 통해 목표가 되는 특정 투치족 사람들의 위치 정보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학살을 정당화시켰다. 투치족이 권력을 쥐고 있을 때 후투족이 겪은 차별에 대해 논의했다. 식민지배 시대 후투족을 노예와 같았다고 정의하고 학살을 해방을 위한 일종의 노예 반란으로 규정했다. 라디오에서 전파되는 얘기들은 대다수 후투족의 분노를 증대시키고 실행으로 옮기게 했다. 라디오 방송은 투치족을 바퀴벌레로 칭하고 그들을 비인격화시킴으로써 학살을 덜 잔혹하게, 가해자로 하여금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들지 않게 만들었다. 평범한 시민들이 잔혹한 악마로 변해갔다. 

 

© Pixabay


 

후투 극단주의자들은 그들의 권력을 견고히 하기 위해 투치족 완전 몰살의 계획을 세웠다. 잔혹한 살인뿐 아니라 투치족 여성에 대한 계획적 강간은 르완다 학살 동안 투치족 몰살을 위한 무기가 됐다. 육체적 고통과 동시에 감정적 고통을 함께 줌으로써 투치족의 혼을 파괴시키는 방법으로 여겼던 것이다. 약 25만에서 50만 명의 여성들이 강간당했고, 강간 직후 살해됐다. 

 

학살 직후 국제사회 반응 

 

르완다 대학살이 역사적으로 의미를 갖는 것은 단기간에 학살된 희생자의 수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한 잔혹행위에 대한 많은 서구 국가들의 반응 때문이기도 하다. 학살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 예고된 사건이었다.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르완다에 파견됐던 로미오 달레어 장군은 ‘투치족 멸살(滅殺)’과 관련해 지금은 잘 알려진 ‘제노사이드 팩스’를 유엔에 보냈지만 유엔은 이에 대응하지 않았다. 미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국가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한 정보국의 첩보를 입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했고, 르완다 학살에 대한 실질적인 개입을 거부했었다. 특히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이 사건을 대학살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거부했고, 클린턴 행정부는 르완다와 이해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결론이 뻔한 사건이라고 판단해 개입하지 않기로 했었다. 국제 사회의 이러한 반응은 르완다 내전에 간섭해서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내전 동안 르완다 국민을 돕는다는 명분 아래 무기를 판매하는 데 열을 올렸다. 

 

크위부카, 기억하라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목격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에 참여했던 이 끔찍한 사건 이후, 르완다에서는 ‘기억의 의무’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매년 4월7일부터 일주일 동안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 애도 기간을 갖는다. 르완다 국민들은 매년 4월7일부터 100여 일간 잃어버린 친구, 친지, 이웃, 지도자, 미래의 지도자 등을 기억하며 잊고 싶을 비극에 대해 토론한다. 

 

이제 르완다에선 국민들의 대통합과 화합에 장애가 되는 투치, 후투 그리고 트와라는 단어가 금기시됐다. 르완다 정부와 국민들은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국민들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화합과 통합이라는 명분아래 학살 책임자에 대한 사면이 아닌 그들에 대한 철저한 처벌을 하고 학살 재발 방지를 위해 힘쓴다. 이러한 노력이 르완다 대학살 피해자들에 대한 예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르완다 대학살을 통해 갖는 메시지는 인간이 한 순간에 얼마나 잔인하게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인류 역사에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서로 죽고 죽이는 끔찍한 내전을 겪은 후 생존자들이 비극을 극복하며 화해와 대통합을 이루는 과정은 공동체 안에 갈등과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가 눈여겨 볼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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