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가야사 편)] “규슈 지방 요괴 ‘가랏파’는 가야인의 오랜 기억 허구화된 것”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4.0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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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랏파 전설’을 담은 구마모토의 돌비석 ‘가랏파도라이노비’ 속 의문의 문장

 

일본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요괴 중에 ‘갓파(かっぱ)’라는 캐릭터가 있다. 강이나 바닷가 얕은 물속에 살면서 물놀이하러 온 사람들을 끌어당겨 물에 빠뜨리는 장난을 잘 친다고 전해진다. 현재까지도 일본 전역에서 사랑을 받는 캐릭터로서, 물 관련 사업의 로고로도, 또 애니메이션 캐릭터로도 자주 애용된다.

 

일본 민단 속에 자주 등장하는 요괴 '갓파'. 대체로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등에 거북이 등판 같은 게 붙어 있으며, 녹색의 몸에 주둥이가 달린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무료이미지

 

갓파 이야기는 혼슈·시코쿠·규슈 등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며, 지역에 따라 갓파의 외모와 성격에 대한 묘사가 조금씩 다르다. 그 다양한 버전들에서 대략 공통되는 부분은 이렇다. 갓파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몸은 녹색, 주둥이가 튀어나왔으며, 등에 거북이 등판 같은 게 붙어 있다. 머리는 납작하고 움푹 들어가 마치 대접과 같은 모양인데, 이 머리에 물이 고여 있지 않으면 기력이 떨어져 죽기도 한다. 힘이 세고 헤엄을 잘 치며, 대체로 어린이 정도의 체구라고 하는 데가 많은데, 지역에 따라, 특히 규슈 지방 같은 곳에서는 체구가 크고 건장한 장년의 느낌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오이를 잘 먹고 술을 잘 마시며, 알 수 없는 언어로 우렁차고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것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한자로는 ‘하동(河童)’이라고 쓰고 지역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다른데, 특히 규슈 구마모토 현 일대의 이름이 재미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구마모토는 규슈의 동쪽 산지에서 발원하는 강이 비교적 길고 완만하게 흐르며 형성한 비옥하고 너른 평야를 갖춘 지역이며, 이 하천과 평야는 가야와 쉽게 닿을 수 있는 서북쪽으로 열려 있다. 따라서 가야인들이 배를 타고 와서 앞선 철기문명으로 원주민을 장악했다면 가장 큰 규모로 자리를 잡았을 가능성이 큰 곳이다. 

 

그래서인지 갓파 전설과 관련해서도 유달리 가야와의 연관성을 의심하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 일본 전역에서 ‘하동(河童)’을 ‘갓파’라고 읽어 아마 젊은 사람들은 매스컴이나 책을 통해 그 이름에 익숙해져 있을 텐데, 구마모토 현 평야지대의 중심도시인 구마모토 시(市) 일대의 토박이들은 ‘다비노히또(タビノヒト)’, 즉 ‘나그네’라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심도시인 야츠시로 시 일대의 토박이들은 ‘가랏파’라고 읽는다. 

 

규슈 야츠시로에서만 '가랏파'로 불리는 '갓파'

 

일본어의 일상적인 쓰임새에서 어떤 이름 끝에 촉음 ‘-ㅅ(-っ)’을 달고 이어 ‘파(-ぱ)’라는 접미어를 붙이면 ’…의 무리에 속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가랏파’라는 말은 ‘가라(가락국) 무리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될 수 있다. 무슨 관련성이 있는지 혹은 없는지 몰라도 이곳에서는 대대로 ‘갓파’를, ‘가야의 무리’라고 생각될 수 있는 ‘가랏파’라는 명칭으로 불러왔다는 것이다. 

 

야츠시로 시(市)에는 이 ‘가랏파’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기록한 ‘가랏파도라이노비(河童渡来の碑)’라는 돌비석도 있다. 구마모토 산지에서 발원한 구마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하구인 ‘도쿠노후치(徳の渕)’ 나루터에 세워진, 사람을 압도하는 정도의 크기와 무게감을 가진 돌이다. 아주 오래 전 제사의 제단으로 사용됐었다고 전해지던 이 돌은 350년 전 돌다리를 만드는 데 사용됐다가 1954년 이곳 주민이 세워 기념비처럼 만들어 그 유래를 적은 것이라고 한다.

 

비석에 새겨진 내용 전문을 정확하게 우리말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곳은 1500, 600년 전, 가랏파가 중국 방면으로부터 와서 처음 일본에 도착해서 살기 시작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돌의 석재는 350년 된 다리의 돌인데 ‘가랏파’ 돌이라고 불린다. 어느 날 장난꾸러기 가랏파가 이곳 주민들에게 붙들려, 이 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장난을 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1년에 한번 축제를 지내게 해달라고 청해, 주민은 그 부탁을 받아들여 축제를 5월 18일로 정해서, 지금까지도 오레오레데라이다(オレオレデーライタ) 축제라고 하여 매년 지내고 있다.

 

앞서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도 본 황옥공주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기본적으로는 허구인 설화의 형태로 전해지는데, 설화치고는 사실적인 디테일이 살아있다.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동안 허구적이거나 과장된 요소가 덧붙여져서 픽션처럼 되어버린 게 아닌가 추정할 수 있다. 정말 오래 전, 몇 만, 몇 십만 년 전 있었던 일이라면 세월 때문에라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실제 있었던 일인데 사실대로 전하지 않아야 할, 혹은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 때는 허구적인 요소와 함께 얼버무려 전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사실성과 허구성이 동시에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면서 공존하게 될 것이다. 갓파의 경우엔 어떨까?

 

“적어도 규슈 지방에서 갓파의 존재는 가야인에 대한 기억이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허구화된 것이다.”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에 실려 있는 이종기의 주장이다. 그는 규슈 이곳저곳을 발로 뛰며 탐사하던 중 주요 현지조사지 중 하나인 야츠시로 시에서 우연히 갓파의 의미를 그렇게 조명할 기회에 마주하게 된다. 이곳 토박이로 ‘야츠시로 문화재 심의위원회’ 멤버인 오쿠노(奥野)와 면담 중 ‘가랏파도라이노비’ 관련해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오쿠노는 ‘갓파’를 이곳 토박이들은 ‘가랏파’라고 한다는 것, 어린 시절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아주 오랜 옛날 이곳 나루터에 바다를 건너 가랏파들이 상륙했는데, 그 숫자가 3000명이었다고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일본 구마모토 현 야츠시로 시에 있는 ‘가랏파도라이노비(河童渡来の碑)’에는 ‘가랏파’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기록돼있다. ⓒ이진아 제공


 

이야기 끝에 두 사람의 화제는 축제의 이름으로 옮겨졌다.

 

 

 

이종기(이): 왜 비석에 ‘오레오레데라이다’만 카타카나로 적었을까요?

 

오쿠노(오): 그야 ‘오레오레데라이다’가 가랏파 말이기 때문이겠지요. (이 대목에서 그야말로 ‘심쿵!’한 이종기는 잠시 망설인 끝에 오쿠노에게 말해준다.)

 

이: 한국어로 ‘오래’라는 말은 긴 세월을 의미합니다. 말을 반복하여 ‘오래오래’라고 쓰면 아주 긴 시간이 되지요. 뒤에 붙은 ‘데라이다’는 ‘되어지이다’와 같은 말일 것 같은데요. 한국의 남쪽지방에서 ‘데라이’라고 흘려 말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또 말끝에 ‘다’를 붙여 축원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하고.

 

 

오: 그렇다면? (오쿠노는 심각해진다.)​  

가랏파의 기원을 적은 돌비석에서 발견된 익숙한 문구 '오레오레데라이다'

 

또 이종기는 비석에서 “가랏파가 중국 방면(方面)으로부터 와서…”라는 문구에 주목한다. ‘…방면’이라는 일본 한자어의 쓰임새는 ‘…가 있는 쪽’이라는 뉘앙스를 갖는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온 게 아니라 중국 방면에서 온 거라면, 규슈로 보아서는 중국 뿐 아니라 한반도 일대가 다 해당된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이종기는 갓파, 혹은 가랏파는 일본에 정착한 가야인들의 초기 모습에 대해 일본 원주민 사이에서 전해지던 말이 세월이 지나고 일본이 나름대로 정체성을 갖게 되면서, 자기들 입장에서 희화화시킨 게 아닌가 추정한다. .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의 원고가 저술되던 1990년대 후반에서 20년이 지난 지금, 시절은 많이 변해있다. 이젠 현지에서 발로 뛰지 않아도, 상당히 세부적이고 심층적인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고, 그런 것들에 입각해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우선 유전자 분석을 통해, 누가 진짜 그 땅의 주인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종기는 열정을 가지고 발로 뛰면서, 아무도 그럴 가능성을 상상도 못하던 시절에 가야인이 규슈에 와서 사회의 주역이 됐던 흔적을 증명해보이려 했다. 우리는 이전 회차에서 보았듯이, 전문가들이 분석해놓은 보고서만 보고 가야인들을 비롯한 한반도 남부 사람들이 규슈, 그리고 이어서 시코쿠, 혼슈까지도 휩쓸었겠구나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 현지의 정보를 정확히 입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야츠시로 토박이인 오쿠노가 말한 내용과 요즘 ‘현지에서 전해진다’고 알려지고 있는 내용이 서로 다른 부분도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회차로 넘겨야겠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 차이는 동아시아 3국, 즉 한국·일본·중국의 근현대기 정치적 역학관계를 웅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이 연재의 중심 주제 중 하나인, 기후변화가 인간의 역사에 어떻게 작용해왔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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