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특명 “중국 사드 보복에 각자도생하라”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7.03.30 09: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SK·한화·롯데 등 민간 차원서 사드 보복 뚫기 위해 안간힘


한국 기업을 겨냥한 중국의 ‘사드 보복’이 시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피해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특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부지를 정부에 제공한 롯데그룹은 ‘직격탄’을 맞았다. 현지에서 영업 중인 롯데마트 매장 중 90% 가량이 문을 닫을 정도였다. 

 

국내 상황도 녹록치 않다. 한국 관광 전면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면세점과 관광, 화장품 업계를 중심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전년 대비 매출이 30% 정도 줄었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이런 추세라면 한국에 있는 업체들도 상당수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재계에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팔짱만 끼고’ 바라보고 있다.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책으로 일관하면서 기업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외교·안보 문제를 제어할 컨트롤 타워가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재계의 ‘맏형’ 역할을 해오던 전경련도 최근 ‘최순실 게이트’ 여파에 휩쓸리면서 조직이 대폭 축소됐다. 삼성과 현대차, LG, SK그룹 등이 전경련에서 탈퇴하면서 과거의 ‘맏형’ 역할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한국 경제가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상태에 빠진 것이다

 

3월7일 중국 잉리백화점 앞에서 '한국 롯데는 중국에서 꺼져라'는 내용의 대형 플래카드를 펼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모종혁 제공

 

“정부가 역할 못하니 우리라도…”

 

보다 못한 재계가 자체 해결에 나섰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역할을 못하니 우리라도 나서야 하는 것 아니겠냐”며 “여러 루트를 통해 제안을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주요 기업이 갖고 있는 위기의식을 정부 인사들이 아직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3월23~26일까지 나흘간 중국 하이난성 충하이시 보아오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이 주요 기업의 탈출구가 됐다. 매년 이맘때 중국에서 열리는 보아오포럼은 ‘아시아판 다보스 포럼’으로도 불린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의 장관과 국제기구 대표, 재계 인사 등 2000여 명이 매년 이 행사에 참석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최재원 SK 부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상무가 올해 이 행사에 참석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민간 경제외교였다. 김 상무는 3월24일 아시아 스타트업 20곳을 초청해 ‘메이드 인 아시아에서 크리에이티드 인 아시아로’(From Made in Asia to Created in Asia)를 주제로 공식세션 라운드 테이블 행사를 개최했다. 중국과 일본, 한국, 인도, 태국 등 아시아 권역의 20~30대 스타트업 창업자 20명이 이날 패널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 상무는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시장에서 얼마나 창의적인 영향력을 선사할 수 있을지 토의해보는 자리를 마련코자 행사를 마련했다”며 “각 국가의 아시아 스타트업들이 서로 통합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더 큰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 이후 김 상무는 짜오하이샨 텐진시 부시장을 일행을 접견했다. 이 자리에서 김 상무는 텐진시 및 텐진시 자유무역지대의 최근 투자 환경이나 상호 관심사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한화그룹의 한 관계자는 “미팅 자리에는 김용현 한화자산운용 대표가 참석했다”며 “한화자산운용 중국법인이나 중국기금업협회 라이선스 등록 등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분히 사드 상황을 의식한 행보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한화그룹 차남인 김동원 상무(중앙)는 3월24일 중국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토론을 하고 있다.

최재원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최 부회장은 3월24일 1박2일 일정으로 보아오포럼에 참석했다. 이전까지 보아오포럼은 친형이자 포럼 이사인 최태원 회장의 단골 참석 무대였다. 하지만 최 회장이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검찰로부터 출국금지를 당했다. 결국 최 부회장이 형을 대신해 민간 외교관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SK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최 회장은 포럼 개막 전까지 참석 가능성을 타진했다”며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검찰에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3개월 넘도록 출국금지가 해제되지 않으면서 참석을 접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형 대신 참석한 최 부회장은 짧은 일정을 쪼개 비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주로 중국 고위 당국자나 현지의 파트너사 대표를 만나 그룹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2000년대 초 중국에 제2의 SK를 건설하는 ‘차이나 인사이더’를 선언했다. 이후 중국 사업에 공을 들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부탄디올 합작사업과 상하이세코 지분 인수, 중국 내 전기차 배터리셀 합작공장 설립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사드 사태로 인해 새로운 사업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칩거 중이던 최 부회장이 중국으로 날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포럼 일정 쪼개 중국 고위 당국자와 회동

 

사드 보복의 장본인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 ‘읍소 전략’에 나섰다. 신 회장은 3월24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돌연 “I love that country. We definitely want to continue our business in China.(나는 그 나라(중국)를 사랑한다. 우리(롯데)는 절대로 중국 사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분히 중국 여론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 정부의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신 회장은 “정부 정책을 이유로 땅을 포기하도록 요구한다면 기업은 거부할 수 없다”며 “지난 1월 중국에 방문했다면 긴장상태를 완화시킬 수도 있었다. 중국 방문 계획을 세웠다가 검찰 수사 일정 등으로 접어야 했다”고 말했다. 

 

신 회장 역시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현재 출국이 금지된 상태다. 이에 대한 사정당국의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 한편으로 격앙된 중국의 민심을 달래기 위함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