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본토 노리는 징후 포착되면 주저 없이 선제타격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9 09:26
  • 호수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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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美와 동등한 ‘핵보유국’ 입장의 협상 테이블 요구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국민 여러분. 한·미 연합 전력은 금일 새벽 4시 평북 동창리 북한 미사일 기지에 대한 정밀 타격을 시행하였습니다. 이번 작전에는 괌 앤더슨 기지에서 출격한 미 공군의 장거리 전폭기 B-1B ‘랜서’ 등 최정예 항공 자산이 투입됐으며, 북한의 레이더망과 관련 군사설비를 완벽하게 무력화시킨 전자전 장비가 동원됐습니다. 이번 공격으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던 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체와 발사대를 비롯한 기반시설이 완전 제거됐으며 현재 북한군의 도발에 대처한 완벽한 대비 및 응징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미국 측은 이번 작전 개시 직전 중국 당국에 외교채널을 통해 제한적인 규모의 대북 공습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대해 이해를 구했으며 베이징 지도부도 사실상 양해하였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시길 바랍니다.”

군 당국의 요청으로 새벽 6시 긴급 편성된 TV 생중계 브리핑은 큰 충격을 던졌다. 한국군과 미군이 합동으로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장을 전격적으로 선제타격했다는 놀라움 때문이다. 설마설마했던 대북 공습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국제사회는 긴장 속에 한반도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도 패닉에 빠졌다. 북한 전역에 촘촘히 짜인 대공 방어망이나 조기 경보시스템이 완전 무력화된 상태에서 ‘죽음의 백조’란 별명처럼 B-1B가 펼친 은밀한 타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측면에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3월18일 평북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실시한 신형 고출력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을 지켜보고 있다. © EPA 연합

위와 같은 시나리오는 북한의 무모한 핵 도발과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한·미의 대북 선제공격이 이뤄진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함북 풍계리 핵실험장이나 평북 동창리와 함북 무수단에 있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장을 타격함으로써 핵개발이나 미사일 발사 의지를 꺾어버리기 위한 방안으로 거론돼 왔다. 일부 군사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고, 한·미 군 당국 간에 비공개리에 관련 검토가 이뤄졌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논의되거나 실행 가능성이 있는 사안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미국이 대북 군사 공격을 강행할 경우 따르는 부담과 북한의 반발, 한반도에서의 전쟁발발 가능성 등이 제약요인으로 작용해 온 때문이다. 한국 내에서는 보수정권이 집권한 지난 9년 동안에도 군사력을 동원한 대북 선제공격은 입에 올리기 부담스러운 이슈였던 게 사실이다.

 

 

美 “확실하게 위협 느낄 때만 사용될 것”

 

하지만 이런 기류에 중대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조야(朝野)에서 대북 선제타격 문제가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는 데다,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비중 있는 인사들의 언급이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가장 또렷하게 목소리를 낸 건 미 상원 군사위원장인 존 매케인 의원(공화·애리조나)이다. 매케인 위원장은 3월21일(현지 시각) 김영우 국회 국방위원장과 만나 대북정책 핵심 이슈 중 하나로 대두한 ‘선제타격론(preemptive strike)’에 대해 입을 열었다. 매케인은 “북한 미사일이 미국을 위협하는 상황이란 게 우리 국민에게 인지되면 선제타격에 대한 지지 여론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확실하게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란 단서를 달았고,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지만 분명한 어조로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같은 당 소속인 데빈 누네스 하원 정보위원장(캘리포니아)은 더욱 강하게 대북 군사조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3월19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무기 운반 능력 개발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일종의 선제타격을 할 수 있는 태세를 더욱 갖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무기가 한국이나 일본·미국에서 터지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말도 했다.

 

이 같은 언급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가한 직후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17일 트위터에 “북한은 매우 나쁘게 행동하고 있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미국을 가지고 놀았다. 중국은 거의 도움이 못 됐다”고 지적했다. 하루 전 서울을 방문 중이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윤병세 외교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군사적 갈등까지 가는 걸 원치 않는다”면서도 “북한이 한국과 미군(주한·주일 미군)을 위협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에 대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틸러슨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에 대한 선제타격 옵션도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3월1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을 예방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 © AP 연합

서울의 외교안보 당국자와 군사 전문가들은 이런 언급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트럼프와 그 참모들의 대북 인식이 초강경 기조인 데다 북한 김정은의 무모한 도발행보가 이어지고 있어 정면충돌할 우려가 큰 형국이란 얘기다. 특히 미국은 추가 핵실험보다는 장거리미사일 실험에 신경 쓰고 있는 분위기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ICBM 시험발사를 하려는 구체적 징후가 포착된다면 미국은 주저 없이 선제타격이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본토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되는 데다 명분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북한 관영매체의 지속적인 위협 발언이나 구체적인 대미 타격 방식을 담은 영상자료도 대북 공격의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선중앙TV나 북한이 운영하는 인터넷 선전 사이트에는 워싱턴을 미사일로 공격하는 상황을 묘사하거나 백악관이 북한의 핵타격을 받는 영상이 자주 등장한다. 지난 3월6일 김정은이 참관한 탄도로켓 발사의 경우 북한은 주일미군 타격을 위한 훈련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의 경우 ‘서울 불바다’나 ‘남조선 쓸어버리겠다’ 등의 대남 위협에 익숙해져 덤덤해진 측면이 있지만, 미국의 경우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꺼내는 것이 금기시되는 문화라 북한의 위협에 대해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북 선제타격이 현실화할 경우 북한이 매우 고민스러운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압도적 전력의 미국이 북한이 응전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철저한 추가 응징 태세를 갖추고 나설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핵무기 사용 등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우려도 나오지만 김정은과 핵심 지도부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는 점에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수 있다. 미군 측이 이상 징후를 감지한다면 핵·미사일 시설 타격에 그치지 않고 북한 최고지도부에 대한 제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한미군은 북한 최고지휘부가 지하 갱도에 은신한 상황을 가정한 실전훈련을 벌인 장면을 3월13일 공개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에 투입됐던 데브그루(DEVGRU·네이비실 6팀) 등 미군의 최정예 특수부대가 한·미 합동 군사연습 기간 중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수뇌부를 겨냥한 참수작전을 펼친 상황이라 북한 측의 긴장감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맨 오른쪽)가 3월16일 자신의 집무실에서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맨 왼쪽)과 회담하고 있다. © AP 연합

 

잇따른 韓·美 군사훈련에 北 반발

 

한·미 합동 군사연습 기간 파상적으로 펼쳐지는 대북 압박 공세도 거칠어진 분위기다. 미국은 3월22일 B-1B 전폭기 한 대를 한반도에 투입해 한국 공군 전력과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앞서 3월15일 2대를 전개해 북한에 대한 무력시위를 펼친 지 7일 만에 재투입한 것이다.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CVN 70)과 핵추진 잠수함 콜럼버스(SSN 762)를 투입한 북한 핵심시설 타격 연습도 병행됐다.

 

북한은 이를 대북 선제타격 움직임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노동신문 3월22일자는 “우리에 대한 핵 선제타격을 실행해 보려는 적들의 무모한 군사적 망동이 극히 위험한 단계에 들어섰다”고 비난했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를 동원한 분위기 탐색도 이어지고 있다. 이 신문은 3월2일자 보도에서 “전면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조선(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핵보유국 대(對) 핵보유국’의 관계에 입각해 북한과 미국이 과감한 협상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단계”라고 주장했다. 곧 미국 타격을 가능하게 만들 ICBM을 보유하게 될 것이란 점을 예고한 것이다. 이 같은 공개언급은 핵·미사일 관련 절충이나 협상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자충수가 돼버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주민들에게 공언해 버린 ‘ICBM 보유’를 슬쩍 넘기다가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하는 모양새로 비치고, 강행하자니 정면충돌이 불가피해진다는 얘기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도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박은 멈추지 않을 기세다. 미사일 발사 현장 참관에 신형 로켓엔진 실험까지 직접 챙기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3월18일 “신형 고출력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에 성공했다”며 개발 실무자를 등에 업고 기뻐하는 장면을 연출했지만 나흘 뒤 미사일 발사 시도는 폭발사태로 실패했다. 지난해 무수단 미사일을 8차례나 쏘아 올리려 시도했지만 단 한 차례만 제외하고 모두 실패한 악몽이 재연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갈 길은 바쁜데 뜻대로 풀리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다. 점차 높아지는 대북 선제타격 목소리에 김정은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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