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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박근혜, ‘反체제 왕정복고 혁명’ 원하는가?”

[쓴소리 곧은소리] 최소한의 애국심도 없는 막장 드라마…“자신이 살려고 보수 전체 죽이고 있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2(Wed) 14:45:50 | 14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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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판결에 겸허히 승복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이것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부정이다.” 이 말들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에 불복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야당’들의 규탄 성명처럼 들린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아니다. 이는 2004년 국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한 뒤,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수도 이전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을 때 박근혜가 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로서 했던 말들이다. 그렇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박근혜의 말을 그대로 빌려,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도전이고 대한민국이라는 체제에 대한 부정이다.

 

 

“법 위에 군림하는 여왕이라는 착각에 빠져”

 

박근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승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불복 선언을 하고 삼성동 사저를 중심으로 국민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저항에 나서고 있다. 결국 입만 열면 “사랑한다”고 이야기했던 대한민국이라는 체제를 부정하는 ‘반(反)체제의 길’을 스스로 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의 불복 선언, 그리고 서청원 등 친박 의원 8명이라는 ‘팔상시’와 열렬 지지자들을 데리고 삼성동 사저에서 시작한 ‘사저 정치’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선출직 대통령이 아니라 법 위에 군림하는 여왕이라는 착각에 빠져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을 전복하고 ‘박정희·박근혜 왕조’로 복고를 노리는 ‘반체제 왕정복고 혁명 세력’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지울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월12일 서울 삼성동 사저에 도착해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검찰, 특검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일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박근혜의 수많은 죄들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검찰수사는 이보다 많은 죄들을 밝혀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반쪽 이야기에 불과하다. 한 언론의 칼럼이 잘 지적했듯이, 박근혜의 가장 큰 죄는 특검의 조사보고서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포함돼 있지 않다. 그것은 이념과 전혀 무관한, 부패와 같은 범법행위의 문제를 자신이 살기 위해 “보수 대통령을 끌어내려 빨갱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빨갱이들의 음모”로 몰고 가 나라를 이념전쟁으로 몰고 가고 갈가리 찢어놓은 것이다. 아니 그것으로도 모자라 사실상 탄핵 결정에 불복하고 탄핵 반대 세력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혹 헌법재판소를 진보적 재판관들이 장악하고 있다면 모를 일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자신이 임명한 두 명의 헌법재판관을 포함해 다수가 보수적 성향의 재판관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까지도 만장일치로 합의한 탄핵인용 결정이 빨갱이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자신이 빨갱이 판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박근혜의 죄명에 국가보안법 위반을 추가해야 한다! 그런 것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설사 만에 하나 개인적으로 억울한 것이 있더라도, 나라를 위해, 자신으로 인한 나라의 분열을 막기 위해 “헌재의 판결을 겸허하게 수용하며 그동안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한때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다스렸던 정치인이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정말 최소한의 애국심도 찾아볼 수 없는 막장 드라마다.

 

이 같은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른 것이 부하린과 박헌영이다. 부하린은 러시아혁명의 주역 중 한 명으로 스탈린에 의해 숙청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고, 일제하 항일투쟁과 좌익운동을 해 온 공산당 최고지도자 박헌영은 해방 정국에서 미군정의 탄압을 피해 월북하지만 김일성에 의해 미국의 스파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죄명으로 숙청당한 비운의 혁명가다. 이들은 스탈린과 김일성이라는 두 독재자의 정적 제거를 위한 조작된 죄명에 의해 억울한 사법적 응징을 받아야 했지만 자신들로 인해 당과 나라가 분열되고 혼란을 겪는 것을 막기 위해 순순히 죄를 시인하고 죽음의 길을 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에 비하면 박근혜의 처신은 너무도 대조적이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박근혜의 처신은 분노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불필요한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전화위복일 수 있다. 박근혜가 “헌재의 판결을 겸허하게 수용하며 그동안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면 적지 않은 국민들 사이에 “이제 그만 용서하고 사면하자”는 동정론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박근혜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검찰수사와 사법 처벌이라는 정공법 이외의 다른 선택을 봉쇄해 버리고 말았다. 한마디로,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고 매를 벌고 있는 것이다. 이제,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는 박근혜의 소원대로 검찰이 강도 높은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주면 된다.

 

 

“검찰, 고강도 조사로 진실 밝혀주면 된다”

 

그뿐이 아니다. 박근혜는 판결 불복과 사저 정치를 통해 자유한국당 등 보수 세력이 혁신을 통해 부활할 수 있는 기회를 봉쇄해 버리고 말았다. 한마디로, 자신이 살려고 보수 전체를 죽이고 있다. 이 점에서 박근혜의 불복과 사저 정치가 사실은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하는 대한민국에 마지막으로 봉사하려는 애국심의 발로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든다. 즉 살신성인의 자세로 일부러 민심에 반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동정론을 차단해 법의 준엄함을 보여줄 기회를 만들어주고 내시정당으로 자신과 함께 나라를 망친 자유한국당 등 보수 세력의 집권 기회를 막음으로써 대한민국에 마지막으로 봉사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구속을 피해 보려는 전술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어쨌든 박근혜가 검찰의 소환에 순순히 응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박근혜가 최소한의 애국심이 있다면 “헌재 판결에 승복하며 나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분란은 멈춰 달라”고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호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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