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은 중국서 꺼져라!”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14 13:23
  • 호수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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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嫌韓> 기류 조성하는 중국 정부

#장면1. 3월7일 오전 11시 중국 내륙 충칭(重慶)시 위중(渝中)구 다핑(大坪)의 잉리(英利)백화점 앞. 2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남성 8~9명이 준비한 플래카드 2장을 꺼내 펼쳤다. 플래카드에는 ‘나는 중국을 사랑한다. 한국 롯데는 중국에서 꺼져라’라고 적혀 있었다. 이들은 수차례 구호를 외친 뒤 대형 중국 국기를 앞세워 롯데마트 다핑점으로 내려갔다. 지하 매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아서고는 다시 구호를 외쳤다.

 

오가던 행인들이 모여들자, 2명은 준비한 유인물을 나눠줬다. 유인물에는 ‘다핑 롯데마트 불매운동그룹’의 QR코드가 찍혀 있었다. 이 시위를 지켜본 한 중국인은 필자에게 “시위 주동자들이 구호를 선창하자 몰려든 행인 50여 명도 따라 했다”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이를 SNS에 올린 뒤 목적을 거둔 듯 해산했다”고 말했다. 실제 시위 광경은 웨이신(微信)과 웨이보(微博)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장면2. 같은 날 정오 충칭시 푸링(涪陵)구의 롯데마트 푸링점.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남성 7~8명이 플래카드를 들고 몰려와 매장 입구를 봉쇄했다. 플래카드에는 ‘롯데를 불매하고 롯데를 중국에서 쫓아내자’고 적혀 있었다. 플래카드 주변에 모인 행인들이 70여 명으로 늘어나자, 시위대의 구호는 과격해졌다. 한 주동자가 “푸링에서 당장 롯데마트를 추방하자”며 행인들을 이끌고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경찰이 출동해서야 시위대는 매장 밖으로 나가 흩어졌다.

 

잉리백화점 앞에서 중국 국기와 대형 플래카드를 펼쳐든 일단의 남성들 © 모종혁 제공

중국 롯데마트 99곳 중 55곳 문 닫아

 

중국에서 롯데마트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 2월27일 롯데그룹 이사회가 경상북도 성주군의 골프장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부지로 제공하는 안건을 의결한 뒤 대륙 곳곳에서 집중 타격을 받고 있다. 3월8일 오후 6시까지 중국 내 롯데마트 99곳 매장 중 55곳이 문을 닫았다. 대부분 소방법, 시설법 등을 위반했다며 당한 영업정지 조치였다. 하지만 일부 점포는 몰려든 시위대로 인해 몸살을 앓자, 임시휴업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롯데가 사드 부지 제공을 결정하면서 중국 내에서는 반한(反韓) 감정이 증폭되고 있다. 주 대상은 롯데지만, 점차 한국 브랜드와 상품으로 커져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칭하이(靑海)성 시닝(西寧)시의 한 백화점에서 일어난 소동이다. 웨이보에 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아모레퍼시픽 라네즈 메이크업 시연 행사장에 20대 후반 남녀가 들이닥쳐 “왜 중국에서 한국 기업을 위해 일하느냐”고 외치며 행패를 부렸다. 현지 직원은 “우리도 중국인이며 월급을 받고 일할 뿐이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남성은 중국인 직원에게 “정신병자”라고 욕하며 “한국 기업은 꺼져라”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 밖에도 SNS에는 베이징(北京)현대차에서 생산한 차를 해머로 파괴하거나, 삼성 스마트폰을 망치로 부수는 영상과 사진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공안 당국은 3월초부터 베이징 한인타운인 왕징(望京)의 한인회, 한인사업체 등에 대해 불시 점검을 하고 있다. 경찰은 여권과 거주신고증, 취업증 등을 대조하면서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다. 이에 현지 공관과 한인회는 교민들에게 ‘대중밀집장소나 유흥업소 등의 출입을 자제하고, 중국인과 접촉 시 불필요한 논쟁을 삼가 달라’는 통지문을 보냈다.

 

우리 공관과 한인회가 긴장하는 이유는 반한 감정을 조장하는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3월7일 충칭 시위에서 볼 수 있듯이, 롯데 불매시위는 조직적이고 주도면밀하게 진행된다. 시위대는 플래카드와 중국 국기를 준비해 역할을 나누고, SNS를 통해 퍼뜨린다. 같은 날 베이징에서는 ‘사드에 반대하고 한국 상품을 불매해서 중국의 위신을 세우자’라는 차량 광고판까지 등장했다. 공공장소에서 정치적 목적의 광고를 내보내는 일은 중국 당국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롯데마트 푸링점 입구를 플래카드로 막아선 채 불매시위를 벌이는 중국인들 © 모종혁 제공

中 한인회 ‘중국인과 논쟁 삼가’ 통지

 

온라인에서는 한국과 롯데에 관한 유언비어와 가짜 뉴스가 판치고 있다. 3월6일부터 급속히 퍼졌던 ‘반중(反中)집회’ 동영상이 대표적이다. 이 영상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측이 대형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세워 가두시위를 벌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사드를 배치해 중국을 압박한 미국에 동조해 대규모 반중시위를 열었다”고 설명하며 반한 감정을 부추겼다. ‘환구신문안(環球新聞眼)’이라는 매체의 롯데 회장 인터뷰는 가짜 뉴스의 전형이다. 신동빈 회장이 “중국인은 가난해서 가격만 내리면 다시 상품을 산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바람과 달리 반한 감정이 격화되지는 않고 있다. 물론 SNS에는 중국 당국과 관영매체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글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블로그와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배타적인 애국주의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블로거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드 반대 교육을 가리켜 “어린아이에게 부모와 사드 토론을 하라고 시키는 것이 애국교육인가”라고 비판했다.

 

커뮤니티 사이트의 한 회원은 유언비어와 가짜 뉴스를 지적하며 “이런 말도 안 되는 소식을 퍼뜨리는 배후가 누군지 알 만하다”고 비난했다. 온라인 뉴스에서도 현 사태를 풍자하는 댓글이 인기다. 3월6일 ‘펑황망(鳳凰網)’의 한 사용자는 “9년 전에는 프랑스 상품을, 5년 전에는 일본 상품을, 지난해에는 필리핀 상품을 사지 말라고 했고, 지금은 한국 상품을 사지 말자고 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나라의 상품을 보이콧할지 모르겠다”며 직격탄을 날려 베스트 댓글로 뽑혔다.

 

중국 정부는 2008년 파리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서 프랑스인들이 티베트 독립 지지 시위를 벌이자, 프랑스 상품 및 카르푸 불매운동으로 맞대응했다. 2012년 일본 정부가 민간 소유였던 댜오위다오(釣魚島·센카쿠 열도)를 국유화하자 대규모 반일 시위와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일으켰다.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남중국해 판결 후에는 필리핀 과일 불매운동을 벌였다. 이런 끊임없는 ‘애국주의 불매운동’에 의식 있는 중국인들이 반감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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