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울버린!…슈퍼히어로 무비도 세대교체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09 13:16
  • 호수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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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들었던 슈퍼히어로 캐릭터 ‘울버린’을 떠나보내는 《로건》의 성숙한 이별

지난 2월19일 폐막한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에 여우주연상이라는 좋은 선물을 안겼다. 하지만 이 영화제에서 또 하나의 화제가 됐던 상영작 중에 《로건》도 있었다. 슈퍼히어로 영화 최초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정식 초청된 작품이다. 《로건》을 향한 기대는 곧 화제로 바뀌었다. 베를린 월드프리미어 후 신선도를 평가하는 ‘로튼토마토’에서 《로건》은 97%의 지지를 받았다. 또한 ‘마블 신화와 서부극 신화의 완벽한 조화’(할리우드리포트) 등 언론의 극찬을 이끌어냈다.

 

《로건》은 《엑스맨》 전체 시리즈 중 ‘울버린’ 스핀오프(Spin-off·기존 영화에서 등장인물이나 설정을 가져와 새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의 3편이자 배우 휴 잭맨이 연기하는 울버린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영화다. 그는 2000년 《엑스맨》 1편을 시작으로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 《더 울버린》(2013)을 포함해 17년간 모두 아홉 편의 영화에서 울버린을 연기해 왔다. 관객에게 익숙한 캐릭터를 떠나보내는 《로건》의 사려 깊은 작별 방식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그중에서도 슈퍼히어로 시리즈의 방향성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0년대 들어 시리즈를 공격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본격적으로 세대교체를 고민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 ‘울버린’의 세대교체를 예고한 영화 《로건》의 한 장면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로건》, 캐릭터 떠나보내는 방식의 좋은 교본 될 만

 

울버린이 뮤턴트(돌연변이)로서의 이름이라면, 로건은 인간으로서 그의 진짜 이름이다. 제목에서부터 “이 영화의 목표는 로건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바람이 묻어나온다. 뮤턴트로서의 본능이 깨어나기 전 울버린의 원래 이름은 제임스 하울렛. 이후 그는 로건이라는 이름을 썼다.

 

울버린은 《엑스맨》 시리즈 사상 가장 강한 뮤턴트였다. 그는 몸에 상처를 입는 순간 인간과 똑같은 고통을 느끼지만, 빠른 재생 능력인 ‘힐링팩터’를 갖춘 덕에 전투마다 늘 선두에 서곤 했다. 손가락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클로’ 역시 그의 강력한 무기였다. 하지만 《로건》에 등장하는 모습은 다르다. 로건은 늙고 지쳐 있다. 힐링팩터 능력 역시 예전 같지 않다. 불완전하고 병약한 남자. 그의 모습은 강력한 뮤턴트가 아닌, 늙고 지친 총잡이에 가깝다.

 

배경은 뮤턴트들이 모두 자취를 감춘 가까운 미래다. 뮤턴트들의 리더와 정신적 지주였던 찰스 자비에(패트릭 스튜어트)와 로건, 그리고 칼리반(스타펜 머천트)만이 서로 의지하며 외롭게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소멸의 시간은 어느덧 이들 앞에도 성큼 다가와 있다. 이들의 일상을 뒤흔든 건 어느 날 나타난 정체불명의 소녀 로라(다프네 킨). 그의 정체를 알게 된 로건은 로라를 지키기 위해 최후의 고독한 싸움을 시작한다.

 

최근 몇 년 사이 CG로 덩치를 키운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등장할 때마다 장르 특유의 피로감에 대한 문제도 잇따라 대두되기 시작했다. 《로건》은 인물의 감정과 서사에 집중하면서 장르적 피로감을 덜고 뚜렷한 개성을 챙기는 데 성공했다. 로라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해치는” 악몽을 꾸는 소녀라면, 로건은 “내가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악몽 속을 평생 걸어온 인물이다. 그가 인생 전체에서 느꼈던 피로와 죄책감, 그리고 회한은 《로건》의 핵심 테마다.

 

이 테마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영화는 서부극의 장치를 활용한다. 아예 극 중 서부극의 걸작으로 꼽히는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셰인》(1953)이 중요한 모티브로 반복 등장한다. 적과 맞서 싸워 정의를 지킨 뒤 “이제 이 계곡에 총성은 없을 것”이라 말하며 쓸쓸히 홀로 퇴장하는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다. 《로건》은 《셰인》과 같이 소중한 존재를 지키고 안전한 지점으로 인도하는 서부극의 전통 서사를 직접적으로 계승한다. 로건과 로라, 자비에의 여정(旅程)은 이들이 처음으로 가족의 가치를 경험하고 또한 마찬가지 이유로 비극적인 슬픔을 경험하는 여정이다. 맨골드 감독은 보다 직접적으로 ‘가족여행’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로건이 지난날의 과오를 후회하는 자라는 점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1992)의 향수도 어른거린다. 《로건》은 시리즈가 캐릭터를 떠나보내는 방식의 좋은 교본으로 오래 회자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영화 《엑스맨》 울버린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마블·DC, 새로운 슈퍼히어로의 세대교체 예고

 

《로건》은 극 후반, 로라를 포함해 다양한 유색인종으로 구성된 어린 뮤턴트 집단을 비추며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암시한다. 특히 로라는 울버린의 바통을 이어받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원작 코믹스와 영화 모두에서 암시하는 바와 같이 로라는 울버린의 DNA를 이식한 생체실험의 결과로 탄생한 뮤턴트 ‘X-23’이다. 이 캐릭터는 향후 《엑스맨》 시리즈나 새로운 스핀오프에서 울버린의 후예로서 중요한 활약이 예상된다.

 

《로건》으로 울버린 시리즈가 마무리되면서 20세기폭스가 진행하는 《엑스맨》 라인업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5월 공식 발표된 바에 따르면, 《엑스맨》 시리즈의 차기작은 《엑스맨: 슈퍼노바》로,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폭스는 그 밖에도 《엑스맨》의 세계관과 연결되는 또 다른 시리즈인 《뉴 뮤턴트》와 《엑스 폭스》 등의 제작을 확정하며 적극적으로 새로운 캐릭터 유입과 세대교체를 준비하고 있다.

 

마블 코믹스의 또 다른 대표 캐릭터인 스파이더맨 역시 세대교체를 선언한 상태다.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3부작, 마크 웹 감독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 2편에 이어 시리즈의 리부트인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연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주인공 피터 파커의 고등학교 생활과 성장기를 다룬다. 새로운 스파이더맨으로 낙점된 배우는 영국 배우 톰 홀랜드. 이미 그가 연기하는 스파이더맨은 《캡틴아메리카: 시빌 워》(2016)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이 영화에는 블랙 팬서(채드윅 보스만)도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그는 마블의 단독 시리즈 《블랙 팬서》(2018년 예정)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처럼 아이언맨·캡틴아메리카·어벤져스 등 기존 시리즈에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면서 동시에 이들의 단독 영화를 진행 중인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전략은 향후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가능케 한다. 마블 코믹스에서는 아이언맨의 바통을 이어받은 흑인 여성 아이언맨 ‘아이언하트’마저 등장한 상황. 머지않아 MCU 안에서도 흑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DC 코믹스도 비슷한 전략을 펴고 있다. 지난해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배트맨과 슈퍼맨을 누르는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한 캐릭터 원더우먼은 연내 단독 영화로 돌아온다.도적 존재감을 발휘한 캐릭터 원더우먼은 연내 단독 영화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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