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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김정은-트럼프 대결 시간표 빨리 온다”

미사일 도발에 김정남 살해說까지…美·北 파국으로 치닫나

김지영 기자·이영종 중앙일보 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20(Mon) 14:27:25 | 14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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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중국 상하이 공항. 한 사내가 공항 내에서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한국 경찰 간부 A씨 눈에 포착됐다. A씨는 당시 상하이 총영사관 영사들이 연루된 희대의 성추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한국에서 급파됐다가 귀국하는 중이었다. A씨는 공항에서 두리번거리는 사내가 누군지 단박에 알아챘다고 한다. 바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었다. A씨는 김정남에게 다가가 “저희가 아는 그분 아닙니까?”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김정남은 “맞습니다”라며 인정했다. A씨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사인 좀 부탁해도 될까요?”라고 하자, 김정남은 흔쾌히 사인해 줬다. 사인은 영어로 단 한 단어, ‘PEACE’.

 

평화를 뜻하는 PEACE를 사인해 줬던 김정남이 2월13일 오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살해당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권을 소지한 두 명의 여성에 의해 독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 피살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시선이 평양 김정은에게 쏠렸다. 김정은이 김정남 살해를 지시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2월17일 현재 김정남 살해 배후 세력이 누군지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국제 암살단의 소행이라는 등 갖가지 소문과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진짜 배후가 김정은인지는 수사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 일러스트 신춘성


 

김정남이 살해된 지 이틀이 지난 2월15일 낮 평양 보통강변에 자리한 평양체육관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2만 명 수용 규모인 이곳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사망) 75회 생일을 하루 앞두고 중앙보고대회가 열렸다. 김정일 초상화가 그려진 붉은 깃발이 등장한 주석단에는 김정은과 당 및 군부의 핵심실세들이 자리했다.

 

이 자리는 이복형 김정남이 2월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살해당한 이후 처음으로 김정은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김정은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행사 내내 굳은 표정을 보인 김정은은 초점을 잃은 듯한 눈으로 허공을 자주 응시했다. 아버지의 생일 행사에 좀체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퇴장 때는 청중들의 박수갈채에도 불구하고 손조차 흔들지 않고 빠져나갔다.

 

김정은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 아니다.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을 ‘반혁명죄’ 등으로 몰아 전격 처형한 직후 열린 행사에도 김정은은 초췌한 얼굴로 등장했다. 헤어스타일도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권력을 넘겨받을 어린 막내아들 김정은을 위해 후견인으로 지목해 준 고모부를 제거하고, 고모인 김경희도 사실상 권력전면에서 퇴출시킨 ‘거사’의 일그러진 잔상(殘像)인 듯했다.

 

2월17일 현재 김정남 살해 배후 세력이 밝혀지진 않았다. 다만 이복동생 김정은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중국 당국은 그동안 김정남과 그의 가족을 보호해 왔다. 향후 김정은 체제가 흔들리거나 붕괴됐을 때를 대비한 조치였다는 관측이다. 여차하면 중국과 껄끄러운 ‘김정은 체제’를 중국과 우호적인 ‘김정남 체제’로 교체하려 했다는 시나리오다. 김정은 입장에선 잠재적인 반란 세력인 김정남을 제거해야 했고, 이번에 실행했다는 분석이다.

 

만약 김정은이 실제 배후로 드러난다면 김정남 살해는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지 3년여 만에 김정은이 벌인 또 하나의 막장드라마라 할 수 있다. 절대 권력을 다지기 위해선 혈육마저도 무참히 살해하는 냉혹한 독재자 모습을 생생히 드러냈다는 점에서다.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진 3대 세습 권력을 구축하기 위해 봉건왕조 시대에나 있었을 법한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김정남 “김정은, 도량 큰 인물” 관계회복 시도

 

사망한 아버지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피를 나눈 이복형을 살해했다는 건 패륜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태를 지켜본 정부 당국자는 “후계자로 낙점한 막내가 혈육을 상대로 이처럼 무자비한 권력투쟁의 칼날을 휘두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저승의 김정일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카의 손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위 장성택을 보는 김일성 주석의 심정도 착잡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란 말도 나온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이 심장병으로 급사한 직후부터 이복형을 제거하기 위한 본격적인 채비를 했다는 게 국가정보원의 분석이다.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 집권 이후 일종의 ‘스탠딩 오더’였다는 것이다. 특수공작요원의 세계에서 이 용어는 한 번 하달하면 성공하거나 별도의 취소조치가 있을 때까지 계속 유효한 명령이란 의미다. 신변 위협을 느낀 김정남이 ‘저와 제 가족을 살려 달라’는 서신을 김정은에게 발송한 적도 있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이 서신에서 김정남은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응징명령을 취소하기 바란다. 저희는 갈 곳도 피할 곳도 없다. 도망갈 길은 자살뿐임을 잘 알고 있다”고 호소한 것으로 파악됐다는 것이다.

 

김정남 피살의 배후가 김정은이라면 이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다. 그만큼 이복형에 대한 반감이 컸다는 얘기다. 한때 후계권력을 두고 다퉜던 관계인 데다, 중국의 후견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남을 두고 “김정은 유고 시 친중 정권을 수립하는 데 중국 지도부가 김정남을 내세워 활용할 것”이란 말까지 나오는 데 대해 불쾌감을 가졌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한때 김정남은 북한이 3대 세습을 강행할 경우 후계 1순위로 꼽혔다. 세 아들 중 맏이인 데다 김정일이 각별한 애정을 쏟은 때문이었다. 김정남은 김정일과 여배우 성혜림 사이에 첫 아들로 태어났다. 성혜림은 영화 《분계선에서》 등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린 은막의 스타였다. 프놈펜 국제영화제에 북한 대표로 참석할 정도였다. 첫눈에 반한 김정일은 유부녀이던 성혜림을 강제로 이혼시켜 함께 살았다. 김정남이 출생한 당일인 1971년 5월10일의 상황을 성혜림의 언니 혜랑씨는 서방 망명 후 쓴 자서전 《등나무집》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혜랑씨는 “잠결에 ‘빵~ 빠앙~’ 하는 수상쩍은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렸다. 4층이던 우리 집 창턱으로 다가가자 어둠 속에 덩치가 큰 시커먼 승용차가 보였다. 김정일 비서였다. ‘이제 방금 혜림이가 아들을 낳았어!’라고 그는 툭 반말을 던졌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흐르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5돌 생일(광명성절)인 2월16일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트럼프 “매우 강하게 북한 다룰 것”

 

하지만 김정남은 김일성으로부터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최고위층 치료시설인 봉화진료소도 뒷문으로 몰래 드나들어야 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일은 김정남을 낳은 지 몇 년이 안 돼 북송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 고용희에게 빠져 성혜림을 버렸다. 성혜림은 모스크바에서 심장병 등으로 우울한 말년을 보내다 2002년 쓸쓸하게 숨졌다. 북한은 성혜림의 시신을 평양으로 운구하지 않았고 무덤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암 치료차 머물던 프랑스 파리에서 숨진 고용희를 전용기까지 보내 평양 대성산에 특별묘역까지 조성해 놓은 것과 비교된다.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지던 상황을 김정남은 일본 언론인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밝히고 있다. 김정남은 “제가 유학을 떠난 뒤로 저의 이복형제들인 정철·정은·여정이 태어나면서 부친의 애정도 그들에게 쏠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완전 자본주의 청년으로 성장해 북한에 돌아간 때부터 부친께서는 저를 경계하신 것 같다. 아마도 부친의 기대 밖이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결정타를 가한 건 일본 밀입국 사건이다. 김정남은 2001년 5월 일본 디즈니랜드를 구경하려고 아들 한솔과 보모 등을 데리고 도미니카 가짜여권으로 입국하려다 나리타공항에서 체포됐다. 그의 얼굴이 공개되면서 국제적 망신을 샀고 이를 계기로 김정일 눈 밖으로 완전히 밀려났다는 관측이 나왔다. 마카오의 카지노를 전전하는 김정남을 목격했다는 전언이 들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2008년 여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가까스로 복귀한 김정일은 후계 작업을 서둘렀다. 고용희의 소생인 정철과 정은 두 아들이 후계 1순위에 올랐다. 선택은 막내아들 김정은이었다. 후계자로서 공안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를 장악한 김정은은 2009년 4월 평양의 김정남 거점인 우암각을 습격하는 등 거세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김정남은 외신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중국에선 마오쩌둥(毛澤東)조차 세습을 하지 않았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중국과 오스트리아 등에서 암살 시도가 포착됐다는 소문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김정남이 한국 등으로 망명할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김정은의 공세가 예상보다 거칠고 심각해지자 김정남은 관계회복에도 나섰다. 2011년 1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동생이 후계자로서 북한 주민을 윤택하게 해 주길 진심으로 바란다”며 “동생이 제 진심을 이해할 수 있는 도량 큰 인물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남은 “제 동생이 이 말을 오해하거나 이 말을 듣고 좋지 않은 감정을 품는다면 도량이 작은 사람인 셈이고, 저는 무척 안타까울 것입니다”란 언급도 했다. 하지만 이미 돌아서버린 김정은을 돌려세울 수는 없었다. 결국 ‘비운의 왕세자’ 김정남은 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북핵·미사일과 인권문제 도마에 오를 듯

 

문제는 국제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김정남 암살 사태의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 것이냐 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을 공개처형 방식으로 잔혹하게 살해함으로써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우려와 제재를 자초했다. 그런데도 몇 년 지나지 않아 만약 이복형을 제3국의 국제공항에서 공격해 숨지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면 자칫 ‘테러지원국’이란 멍에를 다시 써야 할지 모른다는 말까지 나온다.

 

김정은의 이런 막가파식 행동은 미사일 도발과 맞물리면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김정남 피살 하루 전인 2월12일에는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일대에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인 ‘북극성 2호’의 시험발사를 감행했다.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2016년 1월과 9월 두 차례의 핵실험을 한 데 이어 올 들어서는 미사일 능력 향상에 매달리는 분위기다.

 

이런 모습은 김정은이 올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단계”라고 밝힌 것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최고지도자가 공개적으로 언급한 ICBM의 조속한 시험발사를 위해 다양한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고, 압박감도 실무진에 작용하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김정은의 신년사 열흘 뒤 북한은 “임의의 시각과 장소에서 ICBM을 쏘아 올릴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또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조선(북한)의 ‘북극성 2호’의 시험발사는 ICBM의 예고탄”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월20일 취임 이후 김정은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2월 초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서울을 찾아 한·미 공조를 과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자 워싱턴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해 “분명히 북한은 크고 큰 문제”라며 “매우 강하게 북한을 다룰 것”이란 말을 했다.

 

김정남 피살 사태로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 다루기’는 한결 거칠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핵·미사일과 함께 북한 인권문제가 도마에 오를 가능성도 크다. 이럴 경우 김정은은 반발 차원에서 ICBM 시험발사 등을 통한 도발 수위 올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대결 시간표는 예상보다 꽤 빨리 닥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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