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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가야사 편)] 《가락국기》는 단순 설화일까? (하)

상상에 고증을 더해 역사로 기록하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14(Tue) 11: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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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밝혀두고 싶다. “아유타국에서 공주가 와서 가락국 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는 가락국기의 기록이 과연 역사적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후세 사가들이 상상해낸 허구였는지 하는 시시비비를 바로잡는 것은 이 연재의 목적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미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나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대목에는 설화적인 요소는 있지만 상당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는 생각이 일반화돼 있는 것 같다. 

 

최근에 와서는 실증적인 근거도 계속 보강되고 있다. 2004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서정신 교수와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김종일 교수 팀이 가야유적지인 김해시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왕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에서 DNA를 추출, 분석한 결과 인도인의 DNA 염기서열과 가까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때로 부분적인 이견이 제시되기는 하지만, 어떻든 한반도 남부 및 서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커버하는 규모로 해양교류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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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유골의 DNA가 가리키는 ‘해상 역사’

 

이 연재는 그렇게 지난 40년 동안 이 가설에 관련되어 왔던 논란들을 훑어보다가 생긴 궁금증, 아니 차라리 갑갑함에서 출발한다. 한반도에 있었던 인간집단들이 분명히 활발한 해상활동을 했었으리라는 데 대해서는 점점 더 많은 근거들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여전히 수세적이다.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고 인정하는 담론에서조차, “인도에서 한반도에 왔다”, “유럽에서도 한반도에 왔을 가능성이 있다”라는 식의 논조가 일관돼 있다. 종교적인 부분에서 ‘불교의 전파’냐 ‘기독교의 전파’냐 하는 논쟁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서 다른 인간집단이 찾아온 것을 ‘당한’ 것으로 생각하는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배를 타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으면, 난파되어서 떠밀려온 것이 아닌 이상 다른 데서 온 사람들도 있고, 여기서 다른 곳으로 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냥 왔다 갔다 한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인도에서 공주가 붉은 돛을 달고 예를 갖추어 왔다는 것은 그 수행원들에게 넉넉한 포상을 주어 돌려보낼 정도의 국격이 되니까 일어난 일일 것이다. 설화적인 요소로 장식되어 있긴 해도, 그 공주는 분명히 수로왕의 얘기를 전해 듣고 멀고 험난한 바닷길을 무릅쓰고 왔었다. 별 볼 일 없는 시시한 나라였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앞서 1회차에서도 확인했지만 한반도는 해양 교류에 최적의 생태적·지리적 여건을 갖고 있다. 그리스와 로마가 위세를 떨쳤다면 그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것 없는 나라에서 그만한 위세를 누렸던 인간집단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상식으로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모든 정황 증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어떤 해양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서 판단하는 데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스스로를 세계의 바다를 누비던 멋진 인간집단의 후손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그동안 세월이 흘러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경관이 크게 변한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 연재에서 ‘환경역사학’적인 접근법으로 자주 다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리스와 로마는 오래 전 자신들이 해양대국이었다는 기억을 유지하면서 잘 활용하고 있다. 왜 유독 한반도만 그런 인식을 갖고 있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스스로를 아주 좁은 인식의 틀에 가두어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존 역사의 틀을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

 

이 연재의 의도는 우리 인식의 본 모습을 보고 이를 넘어서려는 것이다. 안으로는 우리 안에 내재된 집단기억을 되살리고, 밖으로는 더 당당하게 세계의 일원으로 함께 가자는 것이다. 이런 발상의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는 지금 결코 작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가 생겨 이를 극복할 전략을 짜려 할 때,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것이 기초가 된다. 그리고 되도록 자신에게 유리한, 즉 자신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정보를 찾게 된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전반적인 위기의식이 팽배해지면 역사에 대한 탐구가 새롭게 강화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우리 역사와 랩을 결합시키려는 시도를 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이때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바로 이전의 과거 경험에서 직접적인 정보를 구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가까운 과거 경험은 자칫 우리를 엄청난 한계 속에 가두어두기 쉽다. 누구나 알다시피 일본은 19세기 말부터 한국을 손에 넣기 위해 역사 왜곡의 공작을 시작해왔고, 일제 강점기 내내 조직적이고 강도 높은 역사 왜곡의 내러티브를 개발, 우리에게 주입해왔다. 지금까지도 그런 노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이 개방되어, 그 목소리가 밖으로 들리기 시작한 21세기 초, 벌써 ‘동북아 공정’ 등 억지 주장이 나와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우리나라가 포함된 동아시아 역사를 왜곡한 것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아무리 늦게 잡아도 기원전 1세기 나온 사마천의 『사기』부터는 확실히 역사 왜곡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 민족 입장에서의 역사기록은 서기 1세기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 때부터 시작해서 그 이후 오랜 세월을 거쳐 거의 사라졌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우리 조상의 과거는 그야말로 최대한 축소되고 왜곡된 것이라고 봐도 별로 과한 말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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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대가 달라져 역사를 고증하는 방법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땅 속, 혹은 산 속 깊이 묻혀 있던 유물 및 유적들이 드러나면서, 그 이후 외세에 의해 지워져 왔던 역사의 흔적들도 드러나고 있다. 이런 흔적들을 분석하는 과학기술적 방법으로 객관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훨씬 쉬워졌다. 앞서도 보았듯이, 과연 인도까지의 교류가 있었을 것인가 하는 데 대한 논란에서도 가야 왕족 유골의 DNA 분석으로 뒤집기 어려운 결론이 나왔다. 또한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법 등 고고학적 분석 기법이 발달하면서, 지금은 많이 바뀐 환경이 과거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고, 따라서 그 시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으리라 하는 점도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런 새로운 역사적 근거들이 말해주는 우리의 과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중국과 일본에 의해 부정적인 모습으로 변형되어 왔었던 만큼, 그런 시도들을 뛰어넘어 나타나는 증거들이 보여주는 우리의 과거 모습이 긍정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연재는 그런 더 넓은 시간과 공간 규모의 역사를 다시 보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이종기의 1977년 저서 《가락국탐사》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 한다. 왜곡 시점을 뛰어넘어 역사를 다시 보려고 한 최초의 선구적 저작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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