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운명의 날은 이제 2분30초 남았습니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7.02.1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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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북핵이 움직인 ‘운명의 날 시계’

2011년 3월11일, 일본 동북부 지방을 관통한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로 일본 후쿠시마현에 위치해 있던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됐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이 지역 일대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 ‘죽음의 땅’이 됐다. 그러자 ‘운명의 날 시계(Doosday Clock)’가 분침을 움직였다. 2012년 이 시계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지구에서 일어난 재해 등을 이유로 지구 종말을 향해 분침을 1분 앞당겼다. 1년 전 자정 6분 전이었던 지구 종말의 시간은 5분 전으로 수정됐다. 지구 종말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아니다. 2011년은 그랬지만 지금은 2분30초 전으로 더욱 앞당겨진 상태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이 세상은 ‘운명의 날’에 더욱 가까워졌다는 얘기다. 

 


☞ 운명의 날 시계란?

 

이 ‘운명의 날 시계’는 핵물리학회지인 ‘The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표지에 1947년부터 게재돼 왔다. 시작을 꾀했던 이들은 ‘맨해튼 프로젝트’, 즉 원자폭탄을 만들었던 과학자들이었다. 이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면 인류는 핵전쟁으로 멸망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핵 멸망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는지를 따지는 시계다. 시간의 변경은 과학자들로 구성된 학회지 운영이사회가 협의 후 결정한다. 노벨상 수상자 19명이 포함돼 있다. 분침은 때로는 자정을 향해 다가가지만, 위협이 줄어들면 과거로 물러선다. 이전에는 핵 위험만을 기준으로 삼았지만 지금은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 등 좀 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시간을 정하고 있다.

 

 

☞ 시계가 자정을 향해 움직이는 경우는?

 

올해 시계는 2년 만에 30초를 움직였다. 지난해까지 분침은 자정 3분 전에 자리잡았지만 이제는 2분30초 전으로 변경됐다. 과학자들은 여러 이유를 들었다. 첫 손에 꼽힌 게 일본과 한국에 핵무장 용인을 시사하며 핵무기 증강을 주장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두 번째는 두 차례나 실시한 북한의 핵 실험이었다. 지구 온난화 이슈도 무겁게 다루어졌다.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질수록 핵전쟁의 가능성도 커지고 시계는 움직인다.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문제 등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진 점도 30초를 앞당기는데 한몫했다. 

 

학회지 의장을 맡고 있는 로렌스 크라우스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우주물리학)는 “세계 지도자들은 핵전쟁과 기후 변화의 위기에 충분히 대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의 도발적인 발언과 행동은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정세가 불안정할수록,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재앙이 커질수록, 그리고 지도자들의 대처가 미흡할수록 ‘운명의 날 시계’는 자정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운명의 날' 시계는 2년 만에 30초가 당겨졌다. © EPA 연합

☞ 2분전~17분전, 지구 위험의 역사

 

인류 최초의 핵실험은 194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45년 7월16일 미국 뉴멕시코 주 앨라모고르도의 사막지역에서 거대한 섬광과 함께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시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다. 1947년 ‘운명의 날 시계’가 자정 7분 전에 분침을 고정하고 등장한 뒤 지구가 가장 위협받았던 때는 1953년으로 이때는 2분 전이었다. 

 

2분 전이었던 이 시기는 미국과 소련이 경쟁적으로 수소폭탄 실험에 착수했던 때다.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은 1952년 미국이 습식으로 성공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53년엔 소련이 건식으로 실험을 완료했다. 액체 상태의 수소를 사용하는 것을 습식이라고 하는데, 습식은 냉각장치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부피가 커 실용에는 적합하지 못하다. 이런 단점을 보완해 소련은 리튬과 수소의 화합물(고체) 등을 사용하는 건식을 개발했다. 당시 미국이 실험했던 수소폭탄은 TNT 1040만톤과 맞먹는 폭발력을 보였다고 한다. 이해를 위해 비교하자면 1945년 미국이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은 TNT 2만톤에 해당했다.

 

반면 17분전까지 물러났던 때도 있었다. 1990년 냉전 해체 후 미국과 러시아는 핵 군축을 위한 일명 ‘대통령 핵 구상’(PNIs)을 체결했다. 핵군축 협상이 결실을 맺은 건데, 이 합의에 따라 1991년 9월27일 부시 미 대통령은 해외에 배치된 전술핵을 파기 및 감축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핵전쟁의 위험이 희석되자 시계의 바늘도 17분 전까지 물러났다. 당시 한국도 이에 맞춰 1991년 11월18일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했고 한반도에 배치됐던 미국의 전술핵도 이때 철수됐다. 이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한반도는 ‘운명의 날 시계’의 분침을 움직이는 주요 원인이다. 이 말은 우리가 꽤 위험한 땅에 산다는 의미기도 하다. 

 

ⓒ 시사저널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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