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가면, 인도법을 따르라”
  • 인도 구르가온=배동주 시사저널e.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08 14:07
  • 호수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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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성장 속 낙후 공존하는 기회의 땅 인도 공략법…“인도인 특성 파아샤바술 이해해야”

꽉 막힌 도로의 차들이 이익을 탐했다. 차선을 무시하고 밀집된 차량 사이로 독일산 승용차가 빈틈을 따라 역주행했다. 육교 공사 자재가 3년째 같은 자리에 널브러져 차량 흐름을 방해했다. 도로 옆 빌딩에서 나온 고급 승용차에는 부랑자가 붙어 차창을 두드렸다. 빌딩 꼭대기에선 마이크로소프트나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 간판이 반짝였다. 도로에서 빌딩 끝은 보이지 않았고 빌딩을 채운 세력은 도로를 보지 않았다.

 

세계 경제 구원투수로 주목받는 인도의 현재는 도로 위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세계 경제 회복이 늦어지고 글로벌 금융 리스크가 증가하는 가운데 인도는 빛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빛은 그러나 하늘에만 있고 땅에는 없었다. 인도의 현실은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크게 변하지 않았다. 7%가 넘는 연평균 경제 성장률을 딛고 빌딩은 하늘로 치솟고 있지만, 부랑자는 여전히 길거리에서 차창을 두드리며 “카나(음식)”를 외치고 있다.

 

1월31일 인도 뉴델리 인드라 간디 국제공항에서 20㎞가량 떨어진 하리아나주(州) 구르가온으로 이동했다. 건설 붐으로 쇠가 쇠를 때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구르가온은 인도 수도 뉴델리와 인접한 산업도시다. 구르가온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이 늘어나면서 고층빌딩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다만 낙후는 낙후대로 여전했다. 이에 대해 한 인도 시장 전문가는 “파이샤바술의 폐해”라고 설명했다.

 

인도인이 말하는 ‘파이샤바술’은 자신이 원하는 가치만 충족할 수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개인의 이익이라는 가치 앞에서 공공성이라는 가치가 무너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낙후는 여기에서 출발했다. 구르가온 내 글로벌 기업 사무실 임대료는 비싼 경우 월 1500만원을 넘어선다. 반면 빌딩 사이 도로는 패고 꺼진 채 방치돼 출·퇴근 시간에는 10분 동안 10m 이동이 어려웠다. 공공 인프라는 개인의 이익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파이샤바술은 교통체증을 역주행으로 극복한다.

 

© 시사저널 배동주·시사저널 미술팀

“칼을 들고 일단 찔러보는 느낌”

 

박한수 코트라 서남아지역 본부장은 “인도인이 살아가는 방식에 뿌리내린 파이샤바술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결국 인도 시장 진출에 대한 성공 혹은 실패를 판가름할 것”이라면서 “인도인들이 반드시 저렴한 가격의 제품만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한다. 그는 “수단과 방법의 적절성보다 이익이 앞에 있다. 인도 기업이 국내 기업과 가격 협상을 진행할 때 보여주는 파이샤바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인도 시장에 진출한 국내 500여 개 기업은 파이샤바술에 최선을 다해 맞서고 있다. 가격 협상에 나선 인도인은 시장 가격을 반영한 한국 기업의 제안에 일단 50% 인하할 것을 요구한다. 2012년 인도 시장에 진출한 한 국내 기업 관계자는 “5년 사이 초기 납품가격에서 40% 넘게 가격이 내려갔다”면서 “시장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인도 기업의 지나친 자기 이익 우선은 가격 협상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도 시장에 진출한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인도인의 파이샤바술에 대해 “칼을 들고 일단 찔러보는 느낌”이라며 “인도인들은 협상이나 계약과 관련한 국제적 상식선을 가볍게 무시한다. 무례를 넘어 무식해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는 “자신의 이익 외에 고려하는 부분은 전혀 없다”면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나서도 계약을 파기하기 일쑤”라고 했다.

 

인도 건설 부문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고 시장 진출을 결정한 국내 한 제조기업은 매년 전년보다 200% 넘게 성장하고 있지만, 인도 시장은 매일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고 말한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인도인은 공들여 잡은 면담 일정을 당일 취소하는가 하면, 계약 이후 공사를 진행하는 중에도 납품 가격을 인하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면서 “초기엔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인도인의 마음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물건을 팔기도 어렵다. 인도 소비자는 가치만 있다면 물건 구매에 돈을 아끼지 않지만,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그만큼 깐깐하다. 구르가온에 새로 올라간 빌딩 사이로는 30년도 넘은 자동차가 돌아다닌다. 운전사는 화면이 흐릿해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낡은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삼성전자 인도법인 관계자는 “인도인은 10년을 사용한 고장 난 휴대전화를 버리지 않고 판다. 그러면 그걸 누군가 사서 고쳐 쓰다가 고장 나면 다시 버리지 않고 판다”고 말했다.

 

이에 국내 기업은 품질 보증과 무상 수리 서비스 같은 사후관리체계를 강화해 인도인 사로잡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인도 가전업체가 제품 판매 이후 사후관리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24시간 이내 수리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비싸지만 확실한 고급제품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인도법인 관계자는 “6000여 곳에 달하는 탈루카(도서벽지)로 제품 수리를 나가기 위해 약 400대에 달하는 서비스 밴(VAN)도 갖췄다”고 말했다.

 

 

“인도 시장은 크고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LG전자는 중소 도시와 농촌에 있는 기존 유통망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촘촘한 제품 수리망을 갖췄다. LG전자는 지역거점 46개소, 지역사무소 124개소, 간접딜러 8700개소를 이용한 유통망으로 지난해 상반기 순이익 140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벌어들인 순이익이 1283억원을 넘어섰다. 인도 뉴델리에 거주하는 딜좃 싱은 “LG는 믿을 수 있는 제품”이라며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주요 가전제품 시장에서 LG의 위상은 이미 높다”고 말했다.

 

인도 상인 경전에는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하면서 도덕적으로 힘들어하지 말라는 금언이 담겨 있다. 아마존(Amazon)과 스냅딜(Snapdeal) 같은 온라인 유통 공룡들이 대대적으로 투자해 인도 온라인 구매 비중은 늘었지만, 지역 배달은 정작 자전거로 이뤄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효성은 인도 시장 진출 이후 지난해까지 4억 달러(약 4672억원) 매출을 올렸다. 박동성 효성 인도법인장은 “시장이 어렵다는 말을 호재로 봐야 한다. 내가 어려우면 모두가 어렵다”면서 “인도 시장은 크고 할 수 있는 것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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