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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마냥 ‘꽃길’일 줄 알았나

각종 의혹 장벽에 가로막힌 반기문의 대망

신수용 인턴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08(Wed) 14:27:40 | 14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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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레이스를 멈췄다. 그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제가 주도해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 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는 결정을 했다”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난해 12월20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임기 마지막 간담회를 열고 대선 출마를 시사한 지 44일 만이다. 가족들과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했던 반 전 총장의 ‘대선 항해’는 결국 막을 내렸다. 반 전 총장의 귀국 후 대선 행보를 되짚어봤다.

 

반 전 총장은 귀국 직후부터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시작은 귀국 환영행사였다. 1월12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반 전 총장은 ‘서민 행보’를 첫 메시지로 잡으며 공항철도를 이용해 귀가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동 중 들어간 공항편의점에서 국내산보다 비싼 프랑스산 생수를 구입하려 했던 것과 공항철도 승차권 발매기에 1만원짜리 지폐 두 장을 한꺼번에 넣는 장면이 보도되면서 ‘서민 시늉’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한겨레에 따르면, 반 총장 측은 12일 귀국을 앞두고 인천공항공사에 대통령 등 ‘3부 요인급’에게 제공되는 특별의전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 20여 일 만에 대권 레이스에서 하차했다. 반 전 총장이 1월17일 경남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려고 하자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진보적 보수주의자’ 반반(半半) 행보

 

공항철도를 통해 서울역으로 이동했지만, 여기서도 ‘민폐 행보’는 이어졌다. 반 총장이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에 도착하기 2시간 전부터 보안요원들은 노숙자들을 역 밖으로 내보냈다. 귀국 환영회가 퇴근시간대와 맞물리면서 서울역은 한때 반 전 총장 지지자와 취재진, 시민들이 뒤엉키는 극심한 혼란을 빚었다.

 

귀국 이틀 뒤에도 ‘사고 행보’는 계속됐다. 반 전 총장은 고향인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를 찾았다. 누워 있는 할머니에게 반 전 총장이 턱받이를 한 채 죽을 떠먹이는 장면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환자용 턱받이를 자신이 걸쳐 인터넷에서 ‘반기문 턱받이’로 불리며 조롱의 대상이 됐다.

 

영·호남 민심 행보도 순조롭지 않았다. 전남 진도 팽목항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는 반 전 총장을 비난하는 시위대와 조우했다. 반 전 총장이 국내에서 세월호와 관련된 공간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2014년 4월29일 뉴욕총영사관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에 조문을 갔다. 그 뒤 반 전 총장은 팽목항·안산·광화문 등지에 있는 세월호와 관련된 공간을 찾은 적이 없다. 자신의 당선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예의 논란’도 있었다. 반 전 총장이 봉하마을을 방문해 참배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2년6개월이 지나서였다.  이를 두고 참여정부 진영에서는 “인간적으로 실망했다”며 섭섭함을 드러냈다.

 

반 전 총장이 논란을 일으킨 것은 비단 행보만이 아니다. 현실 정치에 처음 몸담은 그는 처음부터 애매한 태도로 여론의 지적을 받았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듯한’ 태도로 비쳤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은 귀국 직전 중앙일보와 비행기 안에서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진보적 보수주의자’로 규정했다. 당장 모순 화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방 현안인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을 강조하면서 보수진영의 편에 섰다. 하지만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소녀상 철거와 관련된 것이라면 “일본에 10억 엔을 돌려줘야 한다”면서 진보진영의 편에 섰다. 위안부 협의와 관련해 유엔 사무총장 시절 찬성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1월25일 참석한 관훈토론회에서도 ‘반반 화법’은 이어졌다. 질문자가 “(과거에는) 진보적 보수, 이제는 확고한 보수라고 했는데 확고한 보수가 기존 보수와 어떻게 다른 것이냐. 여전히 반반씩 걸치고 있다는 말이 있다”고 지적하자 “진보주의적인 모습도 있는 보수주의다 한 거지, 제 정체성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같은 행보로 인해 정치 세력화도 여의치 않았다. 반 전 총장은 소위 ‘제3지대 빅텐트론 구축’을 위해 정의화 전 국회의장,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등을 잇달아 만났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반응은 여야 모두에 발을 걸치는 ‘반반 행보’라는 지적뿐이었다. 반(反)문재인 연대 구축에 매달렸지만 어느 누구와의 연대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지지율 역시 거듭 하락했다. 한때 오차범위 이내까지 문재인 전 대표를 추격했으나, 귀국 직후부터 지지율이 하락하더니 끝내 두 자릿수 이상으로 벌어졌다. 결국 반 전 총장은 ‘대선 레이스 하차’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반 전 총장이 1월14일 고향인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 행치마을 선친 묘소를 찾아 성묘를 마친 뒤 음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언론과의 관계 설정도 실패

 

언론과의 소통 역시 대선 주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을 친구로 만들어라’는 말은 반 전 총장의 명언으로 꼽히지만, 정작 반 전 총장 스스로가 이 말을 지키지 못한 셈이었다.

 

반 전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시절 했던 위안부 발언과 관련해 질문을 던진 오마이뉴스 기자를 ‘나쁜 놈들’이라 칭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2015년 12월28일 한·일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합의를 두고 “박 대통령이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질문한 것이었다. 이 발언은 당시에도 큰 논란을 몰고 왔고, 반 전 총장의 귀국 후에도 계속 논란거리였다. 이를 의식한 듯 반 전 총장 측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의 만남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대선 주자에 대해 검증하기 위한 기사를 ‘음해’로 몰기도 했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12월24일 [단독] “박연차, 반기문에 23만 달러 줬다 기사를 통해 반 전 총장의 부적절한 금품 수수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많은 매체가 후속 취재를 통해 반 전 총장 측에 의혹을 던졌다. 반 전 총장 측은 최초 보도한 본지를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고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냈다. 이후 법률대리인을 통해 해명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다. ‘꽃길’을 기대했던 반 전 총장의 대권 행보는 숱한 상처만 남긴 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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