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령’은 중국 민심(民心)이 아닌, 관심(官心)
  • 신수용 인턴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20 14:26
  • 호수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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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찾은 중국인들에게 ‘중국 정부의 한한령 조치’에 대해 물었더니…

“중국 브라운관에서 한류 스타가 사라졌는데,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기자는 1월9일, 12일 한국을 찾은 중국인들에게 물었다. 중국인의 ‘진짜 민심’이 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을 중국 민심에 따라 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월4일 민주당 방중 의원단과 만난 쿵쉬안유(孔鉉佑)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는 “중국 국민이 사드를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는데, TV에 한국 연예인 일색이면 좋아하겠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중국 민심이 한류를 거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실제 중국인은 ‘한한령’을 어떻게 체감하고, 또 어떻게 생각할까.

 

 

“정치적 보복을 문화로 돌리는 것 옳지 않다”

 

1월9일 저녁, 서울 명동에서 만난 중국인 관광객들은 “요즘 중국에선 한국 연예인을 보기 힘들다”면서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 정규 방송에 한국인들의 출연 빈도가 급격히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안방에서 한한령을 뚜렷하게 느낀다는 얘기다. 명동역사에 위치한 과자 가게에서 만난 리우한윈(중국·28)은 “한국인들이 나오는 방송이 사드 이후 반 이상 줄었다”면서 “한국 배우가 맡았던 배역도 중국 연예인으로 대체되는 등 사드 배치의 여파는 직간접적으로 대중문화계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광고 업계에서 일하는 한국인 이아무개씨(28)도 “광고 쪽이나 엔터테인먼트 업계 중국인 관계자들은 한한령을 체감한다”면서 “중국 연예인들이 한국 대기업인 삼성에서 (광고) 섭외가 들어와도 잘 응하지 않고 꺼려 하는 부분이 생겼다”고 말했다.

 

1월12일 서울 중구 명동 화장품 매장 앞의 중국인 관광객들 © 시사저널 박정훈

한한령이 한국 관광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개별관광을 선택한 중국인 관광객은 한국 여행에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지만, 단체관광을 주선하는 쪽은 달랐다. 중국 단체관광객 가이드를 하는 중국인 양아무개(34)는 “아무래도 정부와 정치적 갈등이 있으니 무작정 단체손님을 늘릴 순 없는 상황이다”면서 “한국 관광을 온 중국 관광객은 여전히 한국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정부의 지침도 있고 해서 단체관광은 한국보다는 일본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명동 중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국인 장린(가명·31)은 “내 친척이 경영하는 여행사에 중국 관리들이 서면이 아닌, 구두로 한한령에 협조할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명동의 롯데면세점 직원도 “1월에는 단체 고객이 많은 편인데, 예전보다 줄었다”고 말했다.

 

기자가 만난 중국인들은 자국 정부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물을 때 화제를 돌리거나 말을 아끼는 경우가 8할이었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말한 그들의 결론은 비슷했다. 한한령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린은 “이러한 중국 정부의 조치는 한두 번이 아니다”라면서 “공적 사안을 개인의 사적 영역인 대중문화와 동일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적 보복을 문화로 돌리는 것이 합리적인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사업차 한국을 찾았다는 중국인 왕아무개(45)는 “사드 배치 결정으로 인해 중국 정부가 그럴 수도 있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영상 쪽 사업을 하는 우리 같은 사람한테는 타격이 있다”라면서 “진행되던 계약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사업을 확장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한령도 좋지만, 사업적인 부분들에 대해 대책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한령 불구, 다양한 경로로 韓 드라마 본다”

 

냉각된 한·중 관계와 달리 한류 콘텐츠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은 여전했다. 가족과 명동에서 쇼핑을 즐기고 있던 주부 왕페이페이(28)는 “드라마 《도깨비》 본방사수를 위해 토요일 저녁에는 숙소에 머물렀다”며 “《푸른 바다의 전설》도 너무 재미있다”는 등 한국 최신 드라마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중국인들도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아이피를 우회하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스트리밍으로 매주 본다”며 “공식적으로 금지된 방송도 안방에서 볼 수 있는 어둠의 경로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명동 쇼핑몰에서 만난 풍린나(28)도 “한국의 대학교를 졸업했고, 한국에 관심이 있어 주기적으로 온다. 주변 중국인들을 보면, 한한령으로 인해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못 보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경로로 본다. 한류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중국인 중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한한령 조치가 좋은 방향으로 해결됐으면 좋겠다. 단체관광을 줄인다는 얘기도 있는데, 양국 간에 관광산업을 생각해서라도 잘 풀리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중국인들의 반응처럼, 최근 한한령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 한류의 여전한 인기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중국의 대표적인 포털검색 사이트 ‘바이두’가 드라마별로 언급량을 조사한 결과, 2016년 하반기 한국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4위)과 《도깨비》(7위)가 10위권 안에 들기도 했다. 이 두 드라마는 중국으로 정식 수출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중국 내 한류의 식지 않는 인기를 보여준다.

 

한류에 대한 반감보다는 사드 배치에 따른 정치적 고려 때문에 중국 정부의 한한령 조치는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중국인도 있었다.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에 다니는 장아무개(17)는 “중국 정부는 전 세계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길 원한다”며 “사드 문제가 없었다면, 한한령과 같은 한국을 겨냥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에 난색을 표했다. 그는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사드 배치를 한국 국민들이 원해서 선택했다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사드는 한국 정부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행동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3개월째 친구와 한국을 여행 중이라는 양씨아오샹(24)은 “온라인에서는 한국이 중국인들을 싫어한다며 아예 (한국에) 가지 말라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면서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국에 대한 인상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온라인에서는 격한 반응도 많다. 전에는 반일감정이 주를 이루었는데, 요즘에는 반한감정에 대한 것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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