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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최순실은 ‘뻔뻔’했고 방청인은 ‘답답’했다

1월16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 참관기

구민주 기자 ㅣ mjooo@sisapress.com | 승인 2017.01.17(Tue) 15: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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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보러 첫차 타고 왔다.”

 

1월16일 아직 해도 채 뜨지 않은 오전 6시40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 앞엔 이미 몇몇 시민들이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줄을 서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을 방청하기 위해서다. 이틀 전인 14일, 최순실씨가 증인으로 출석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시민들은 이전 변론 때보다 더 이른 시간부터 줄을 섰다. 그 중에는 전북 진안에서 올라온 시민도 있었다. 박정균씨(50)는 1월10일 있던 3차 변론에 왔다가 핵심 증인 불출석으로 허무하게 돌아간 것에 화가 나 다시 왔다고 말했다. 6시30분에 도착해 선두에 선 고등학생 김인서군(17)은 “3차 변론부터 해서 세 번째 방문인데 최순실이 나오는 오늘이 가장 기대된다”고 밝혔다.

 

2시간 가량 남은 방청권 배부 시간까지 이들은 최씨의 답변을 함께 예상해보고 탄핵 인용 후 열릴 조기 대선을 전망하며 지루함을 이겨냈다. 서로 자리를 맡아주며 화장실과 근처 카페를 번갈아 오가기도 했다. 한편 뒷줄에선 또 다른 대기자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박 대통령 지지자들로 탄핵 기각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매주 부산에서 올라와 탄핵 기각 1인 시위를 해왔다는 김영희씨(52)는 “아는 사람들이 방청하고서는 헌재의 증인 신문 수준이 아주 낮다고 하더라”면서 “오늘은 헌재 앞 시위가 아닌 직접 들어가 확인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8시 이후부터 빠른 속도로 줄이 길어지더니, 방청권이 배부되는 9시엔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헌재 벽을 따라 줄을 섰다. 하지만 방청권은 단 30장. 34번째로 줄은 선 이아무개씨는 “4차 변론 땐 9시에 도착해 여유롭게 들어갔다”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려보겠다”고 얘기했다. 이씨는 결국 오후 12시 휴정까지 기다린 후에야 빈자리가 나 재판정에 입장할 수 있었다.

 

1월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에서 박한철 헌재소장과 재판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최순실의 무성의한 답변에 분위기 싸늘

 

이전 변론처럼 증인 불출석으로 허무하게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방청석의 우려와 달리, 증인 최순실씨는 예정대로 재판정에 들어섰다. 최씨의 입장과 동시에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려는 일부 방청인들과 이를 제재하려는 직원들로 한동안 어수선했다. 하지만 그 뜨거운 열기도 잠시, 증인 신문 시작부터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만 반복하는 최씨로 인해 이내 방청석의 분위기는 급속히 싸늘해졌다. 이따금씩 곳곳에서 갑갑함을 토로하는 낮은 한숨도 새어나왔다.

 

신문이 시작된 오전 10시부터 변호인들은 최씨를 향해 약 250개의 질문을 던졌다. 최씨는 그 중 100개 이상에 모르쇠로 답변했고, 나머지 질문에도 대부분 혐의에 대해 부인했다.

 

최씨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 단호하게 모른다고 답했으며,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한 질문에도 “어제 일도 기억 안 나는데 2014년 일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장 최근 청와대에 출입한 날은 언제이며 그때 당시 누구의 차량을 타고 들어갔는지 묻는 물음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변호인이 대통령을 ‘피청구인’으로 지칭하며 신문할 땐 “피청구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몇 차례 반복해 방청석에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모르쇠를 주장하던 최씨도 이따금 변호인을 향해 언성을 높일 때가 있었다. 자신이 국정을 이끌어갔다는 의혹에 대한 질문이었다. 최씨는 “대통령님은 자신만의 국정 철학이 분명한 분이었다”며 “제가 무슨 문화 사업을 끌고 갔다는데 정말 억울하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답변이 곤란하다 생각되는 질문에 대해선 “그런 유도신문에는 답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히며 입을 다물기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권성동 국회 법사위원장은 답답함에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신문 중 이름이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은 다름 아닌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였다. 최씨는 고씨와 관련된 대부분의 질문에 “고영태의 진술은 완전히 조작이며 진실성이 없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이 “고영태를 묻는 게 아니라 객관적 사실을 묻는 것”이라며 소리치자 최씨 역시 “기억이 안 난다”고 맞받아치며 순간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1월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피해자 모드로 전환…흐느끼기도

 

오후 12시부터 휴정한 후 2시에 다시 변론이 시작됐다. 방청석 빈자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점심시간 직후였기 때문에 재판관들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방청석에서도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오전과 유사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던 순간, 많은 이들의 졸음을 깨운 최씨의 답변이 나왔다. 오전만 해도 고영태씨와 관련해 답변 자체를 거부하던 최씨는 오후 들어 자신은 고씨와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 등의 돈벌이에 이용당했다며, 그들로 인해 모든 죄를 뒤집어쓴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최씨는 고씨 등을 ‘걔네들’로 지칭해가며 억울함을 토로했으며, 고씨가 2014년 무렵부터 ‘최순실 게이트’를 터뜨리겠다 경고하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고도 주장했다.

 

최씨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새벽까지 수사를 강행한 검찰과 폭언을 일삼는 특검에 자살하고 싶었다”며 흐느끼자 방청석에서 황당하다는 듯한 실소가 새어나왔다. 청구인 측 변호인이 추가 신문을 통해 특검이 가한 폭언과 모욕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자 최씨는 “지금은 입에 담기 힘들다”고만 답했다. 신문이 막바지로 갈수록 최씨는 모든 질문에 “이미 다 말했으니 답변하지 않겠다”고만 반복했다. 지친 기색을 드러내며 수차례 한숨과 신음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방청석의 한숨 역시 함께 늘어갔다. 온라인 방청 신청에 당첨돼 현장을 찾은 김아무개씨는 “최순실의 뻔뻔함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탄핵소추위원으로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예상했던 방향대로 대응한 답변들이었다”며 “출석을 한번 미루면서 시간을 벌었는데 그때 어떤 부분을 인정하고 어떤 부분을 부인할지 미리 다 정하고 나온 것 같다”고 평가했다.

 

변론은 오후 6시가 한참 지나고서야 끝이 났다. 해가 뜨기 전 도착한 헌재 밖엔 또다시 어둠이 깔려 있었다. 그 시간까지 정문 앞에선 대통령 탄핵 기각 피켓을 든 친박 단체 회원들의 시위가 열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최씨는 장장 8시간 쌓인 갑갑함만 현장에 남긴 채 서둘러 호송차량에 타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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