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차르 잠에서 깨어난 제국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11 14:12
  • 호수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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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84%, 무소불위 권력 휘두르는 푸틴

러시아가 볼셰비키 혁명으로 전제 군주, 차르를 몰아낸 것이 꼭 100년 전인 1917년 일이다. 이제 러시아는 새로운 차르를 맞이하고 있다. 그는 스탈린 이후 그 어떤 러시아 지도자들보다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다.

 

2016년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4년 연속 푸틴을 꼽았다.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외교에서, 푸틴의 막강한 무력행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8년 그루지야 전쟁부터 2014년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과 2016년 시리아 공습까지, 그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이러한 푸틴의 강력한 행보를 뒷받침하는 것은 러시아 국민의 지지다. 그에 대한 지지도는 현재 84%에 이른다. 어떤 서방 선진국 지도자들보다 높은 수치다. 푸틴의 지지도는 대내적으로 민생고를 해결하고 대외적으로 러시아의 위상을 높인 데서 기인한다.

 

1991년 구(舊)소련 붕괴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과 옐친 시대의 극심한 경제 불황을 잠재운 것도 바로 푸틴이었다. 그는 1999년 집권 후 러시아의 핵심 산업인 유전과 가스를 국영화해 국고를 채워 나갔다. 2000년에서 2013년까지 러시아 국민총생산 증가폭은 9배에 이른다. 그 기간 하루 생계비 5달러 미만의 극빈층은 33%에서 11.9%로 낮아졌다. 또한 넉넉한 재정으로 국방 지출을 5배로 늘려 힘을 키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새해를 하루 앞둔 12월31일(현지 시각) 모스크바에서 2017년 신년사를 발표했다. © EPA 연합

“세계의 ‘푸틴化’ 진행 중”

 

국제무대에서 종횡무진하는 그의 모습은 러시아 국민의 이상을 현실화시켜줬다. 이것은 비단 국민만의 요구가 아닌 푸틴 자신의 염원이기도 했다.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의 대기자인 이자벨 라세르는 “푸틴은 20세기 정치사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으로 구소련의 붕괴를 꼽는다”며 “그는 러시아와 워싱턴이 대등한 관계에서 세계를 논하던 냉전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푸틴이 국제무대에 확고한 영향력을 과시한 사건은 시리아 내전이었다. 2013년 런던에서 열린 G8회담에서 그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의 퇴출을 요구하는 서방 선진국 수반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받아치며 독자 노선을 선언했다. 그리고 끝끝내 시리아 알레포를 함락시키고 말았다.

 

프랑스의 정세분석가 프랑수아 헤이스부르그는 시리아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이 미국 차기 정부가 들어서기 전 매듭을 짓겠다는 푸틴의 의도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그는 이번 사태를 거치며 “세계의 ‘푸틴화(化)’가 진행 중”이라고도 진단했다. 국가의 결정이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새로운 전제주의’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의 정치 형태에 대해 프랑스 언론사 올리비에 라바넬 모스크바 특파원은 “하나의 승인되고 합의된 독재국가로 봐야 한다”고 말했으며, 베르딘 위베르 전 프랑스 외무부 장관도 “푸틴은 기존 독재자와는 또 다른 유형”이라고 언급했다.

 

푸틴은 외교무대에서 종종 엽기적인 행각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자리에 매번 늦게 나타나 ‘지각대장’ 별명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2016년 12월 열린 일본 기자단과의 회담엔 커다란 개까지 대동하고 나오기도 했다. 한 프랑스 기자가 자국 공영방송을 통해 푸틴의 외교적 무례함을 폭로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2007년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푸틴이 첫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푸틴이 러시아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를 조목조목 따지던 사르코지를 향해 폭언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푸틴은 사르코지에게 “당신은 아주 작은 나라를 다스리고 있지만, 내가 다스리는 나라는 광활하다”며 “계속 그렇게 따진다면 당신을 뭉개버릴 것이며 그 반대로 한다면 당신을 유럽의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사르코지는 당황을 넘어 흥분된 모습이 역력했다는 후문도 있다.

 

2016년 12월13일 푸틴은 러시아 크렘린궁에서 열린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 자리에 큰 개를 데리고 나타났다. © AFP 연합

“푸틴을 꺾을 자는 푸틴 자신뿐”

 

반인권적 군사행동과 독단적 태도와 관련된 서구 언론의 비판에 대해 푸틴은 늘 자신의 방식대로 대응해 나갔다. 그는 최근 한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에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러시아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받는다면 그것이 곧 민주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푸틴을 향한 전폭적 지지는 러시아 국민에게 푸틴 외에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계는 물론, 입법부·사법부·언론 등에 대한 푸틴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막강하기 때문이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는 구소련 붕괴 직후인 1991년 자유지수 13.3점(20점 만점)을 얻어 ‘비교적 자유로운 국가’에 속했지만 2016년엔 3.3점으로 주저앉으며 ‘자유롭지 못한 나라’로 분류됐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언론 자유 순위에서도 러시아는 180개국 중 148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푸틴의 언론 장악은 1999년 취임한 지 3일 만에 최대 민영 방송사 NTV를 압수수색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350여 명에 이르는 언론인이 해직됐다. NTV 간판 앵커였던 스베틀라나 소로니카는 “몇 달 만에 방송이 구소련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과연 이러한 푸틴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한때 푸틴의 친구이자 측근으로 현재 프랑스에 망명 중인 세르게이 푸가체프는 “푸틴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푸틴 자신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심각한 경제 위기나 정책적 실수로 내부에서 무너지지 않는 한 푸틴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며 “푸틴은 ‘강한 러시아’를 원하는 국민의 욕구를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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