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23만 달러 수수 의혹’ 일파만파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7.01.02 10:59
  • 호수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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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박연차 해명’ 반박하는 구체적 정황·증언 잇따라

‘반기문 23만 달러 수수 의혹’ 파문이 거세다. 시사저널은 2016년 12월24일 오전 10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23만 달러를 줬다”고 보도했다. 반 총장이 외교통상부 장관이던 2005년과 유엔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직후인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20만 달러와 3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 제기였다. 

 

2009년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던 대검 중수부가 ‘반 총장에게 거액을 전달했다’는 박 회장 진술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채 덮었다는 증언도 공개했다. 이에 대해 반 총장 측은 “이런 주장이 황당무계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부인했다. 박 회장 쪽도 “돈을 건넨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 총장은 12월31일 10년간의 사무총장 임기를 마쳤다.

 

‘반기문 23만 달러 수수 의혹’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정황과 증언은 여러 언론 매체 보도를 통해서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향신문은 12월29일자 1면과 3면을 통해 ‘박연차 회장이 2009년 검찰수사 당시 ‘반기문 총장에게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으나 검찰이 이를 덮으며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압박했다’고 보도했다. 박 회장과 가까운 법조계 인사의 증언이었다는 것이다.

 

‘박 회장과 가까운 법조계 인사’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 회장이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를 받을 때 측근들에게 ‘반기문까지 덮어버리고 나에게만 압박수사를 한다’는 취지로 얘기했다”며 “박 회장이 이 사실을 공개하려 했지만 ‘기획수사’ 의혹 언론보도가 나면서 검찰이 외부에 흘리지 말라고 압박해 알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검찰이 외부에 발설 말라고 압박한 이유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수사에서 검찰이 반 총장까지 공격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2007년 취임해 3년 차를 맞이하는 반 총장이 뇌물 수수 논란에 얽히면 국가적 차원의 불명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는 게 이 인사의 주장이다.

 

‘23만 달러 수수’에 대한 반 총장 측 해명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반 총장 측은 2005년 5월 서울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에서의 베트남 외교장관 방한 만찬 당시 박 회장이 20만 달러를 건넸다는 의혹을 제기한 본지 보도에 대해 “박 회장은 이날 만찬에 늦게 도착했으며 반 총장은 이날 행사 중 박 회장과 따로 만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이 만찬에 한 시간 늦게 도착했을 뿐 아니라 만취한 상태여서 돈을 주고받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만찬 참석자 주장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 인사는 “박 회장은 그날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만찬에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며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명예총영사인 박 회장이 베트남 외교장관이 참석하는 자리에 만취한 채로 갔을 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2007년 초 박 회장이 뉴욕의 단골 식당 주인을 통해 ‘사무총장 취임 축하 선물’로 반 총장에게 3만 달러를 건넸다는 본지 보도에 대해서도 반 총장 측은 부인했다. 하지만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가진 인사는 “뉴욕에는 박 회장의 고향 후배가 경영하는 대형 한식당이 있고 여기서 정치인 여럿이 박 회장의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 제1419호에 실린 ‘반기문 23만 달러 수수 의혹’ 기사


“‘반기문에 돈 줬다’ 진술, 검찰이 덮었다”

 

이보다 앞선 12월24일 SBS 《8시 뉴스》에 따르면,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수사 관련자들은 박연차 회장의 여비서 이 아무개씨의 다이어리에 ‘반기문’이라는 이름이 두 차례 등장하는데 옆에 각각 돈의 액수가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 관련자들은 다이어리에 기재된 돈을 합하면 모두 5만 달러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도 12월26일자에서 ‘반 총장에게 돈 줬다는 박연차 서면·구두 진술 있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박연차 게이트에 관련됐던 전·현직 검사 및 청와대 인사 등이 그동안 한 설명을 바탕으로 당시 사건을 재구성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딸들도 처벌하겠다”는 검찰의 압박에 박씨(박연차 회장)는 돈을 준 정치인과 관료들의 명단을 작성해 제출했다. 2009년 3월을 전후해 작성된 리스트엔 반 총장의 이름도 포함됐다. 일부는 구체적 액수까지 적시됐다. 검찰 관계자는 “30명 이상이 명단에 들어있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검찰은 리스트에 들어 있는 인사들의 명단을 조금씩 흘렸다. 반 총장의 이름이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에서 나왔다. 박씨는 반 총장이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있던 2005년 돈을 준 이유에 대해 ‘베트남 주석을 국빈 자격으로 한국에 초청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며 ‘하지만 검찰은 진술 조서에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또한 ‘박 회장의 여비서에게서 압수한 ‘회장님 일정관리표’에도 반 총장 이름이 두 번 기록돼 있었다’며 ‘검찰은 계좌추적과 외화출금자료를 들이밀며 반 총장에게 2만~4만 달러를 준 사실이 있는지 박 회장에게 물었다. 박 회장은 ‘2007년 유엔 사무총장 취임을 축하하는 의미로 성의를 표시했다’고 진술했다’고 중앙일보는 밝혔다. 하지만 검찰은 반 총장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소환이 불가능한 반 총장을 상대로 조사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데다 국가 위신만 손상시킬 뿐 실익도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고 한다. 이 신문은 ‘검찰 고위 관계자는 ‘박연차씨의 공식적 수사 기록에는 반 총장과 관련된 진술은 없었다’고 말했다’면서 ‘박씨의 진술은 내사기록보고서 형식으로 보관돼 있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고 밝혔다. 내사기록보고서가 ‘검찰 캐비닛’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TV조선도 12월26일, 2009년 수사팀 관계자 증언을 인용하며 “3억원 가까운 돈이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건너간 정황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이 금품수수 혐의를 받는 건 국가적 망신이다”는 쪽으로 수사팀 의견이 모아져 흐지부지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의 발언도 주목된다. 이 전 부장은 12월2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반 총장이 박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시사저널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애매한 입장을 밝혔다. 당시 수사 책임자로서 사실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틀 뒤인 12월26일 노컷뉴스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은 반 총장의 대선 출마설이 나돌자 “반기문 웃긴다. 돈 받은 사실이 드러날 텐데 어쩌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저런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겠나?”라는 말까지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부장으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다는 한 관계자는 “이 전 부장이 자신의 입으로 ‘박 회장이 반 총장에게 3억원을 줬다’는 얘길 했다”고 전했다. 이 보도 내용에 대해 이 전 부장은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정황과 증언이 나오면서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 야권에선 연일 대변인 브리핑 등을 통해 검찰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2월29일 “반 총장과 박 회장 간에 검은돈이 오고 갔다는 의혹이 연일 사실성을 더해 가며 구체화되고 있다”며 “검찰은 언제까지 두 눈 감은 채 외면할 것인가. 이 사건 역시 특검으로 가야만 진상을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인가”라며 검찰수사를 재차 촉구했다.

 

정의당도 같은 날 한창민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만일 반 총장의 금품 수수를 덮은 것이 사실이라면 검찰은 드러난 표적을 취사선택해서 정권에 부역했다는 말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정치공작”이라며 “반 총장도 드러나는 의혹들을 이런저런 핑계로 회피하지 말고 정확한 사실관계를 모두 밝혀야 한다”고 압박했다. 

 

 

‘반기문·박연차 해명’을 반박하는 정황과 증언을 담은 언론 보도들. 12월29일자 경향신문, 12월26일자 중앙일보, 12월24일 SBS <8시 뉴스> 보도.

야권 “반기문, 떳떳하면 시사저널 고소해라”

 

하지만 반기문-박연차 두 당사자는 직접 나서지 않고 있다. 유엔 대변인이나 측근들 해명을 통해 ‘23만 달러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12월24일 오전 본지 보도가 처음 나간 후인 12월27일 새벽 1시37분 스테판 듀자릭(Stephane Dujarric) 유엔 대변인은 자신 명의로 ‘시사저널의 최근 보도’라는 제목의 입장을 밝혀왔다. 이메일을 통해 밝힌 반 총장 측 주장은 이렇다. ‘반 총장은 그의 전체 인생, 특히 대한민국과 유엔 공무원으로서 보내는 기간 동안 흠결 없는 정직과 진실성을 갖고 살아왔다. 시사저널의 보도는 완전 거짓이며 근거 없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우리 측은 기사를 즉시 철회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를 요구한다. 만약 요구된 행동을 곧장 취하지 않을 시 우리는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추가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국내에도 알려지면서 파문은 증폭됐다. “반 총장이 돈 받은 사실이 없다면 시사저널을 고소해서 의혹을 해명하라”는 목소리가 정치권 등에서 나왔다. 송현섭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12월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반 총장을 향해 “시사저널을 통해 반 총장이 박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의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알려졌다. 반 총장이 금품 수수한 사실이 없다는 주장과 함께 시사저널 측에 기사 삭제와 사과를 요구했다”며 “언론사 상대의 사과 요구나 기사 삭제만으로는 결코 이번 의혹의 진실을 밝힐 수 없다. 반 총장이 떳떳하고 사실무근이라면 의혹을 제기한 시사저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법적 대응을 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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