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자살’로 막 내린 ‘건국 이래 최대 게이트’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6.12.26 16:12
  • 호수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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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거액 수수 의혹’으로 재조명 받는 ‘박연차 게이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돈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상당히 익숙한 인물이다. 바로 ‘박연차 게이트’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2009년 초 당시 이 사건은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게이트’로 꼽혔다. 특히 이 사건 이후에 터지는 굵직한 정·관계 로비 사건에는 ‘제2의 박연차’ ‘OO의 박연차’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정도였다. ‘박연차’란 이름은 ‘로비의 대명사’처럼 쓰여 왔다.

 

‘박연차 게이트’는 또 다른 비극적인 사건과도 연결돼 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다.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에 대한 수사로 시작된 이 사건이 정·관계 로비 사건으로 확대되면서 노무현 정권 인사들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덩치를 키우던 수사는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인인 권양숙 여사에게까지 닿았다. 수사가 진행되던 중 노 전 대통령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에 2000년대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큰 상처를 남긴 사건이기도 한 셈이다.

 

 

‘박연차 게이트’ 당시의 검찰 수뇌부. 임채진 검찰총장(가운데)과 문성우 대검차장(왼쪽),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 © 시사저널 박은숙

농협 비리 의혹 사건에서 게이트로 비화

 

사건의 시작은 농협이었다. 2008년 7월, 국세청은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농협 로비 사건이 수면 위에 떠오르게 됐다.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돈이 오갔고, 세종증권 주식투자를 통해 시세차익을 크게 남긴 박 회장이 로비에 관여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또 농협의 자회사인 휴켐스를 시세보다 헐값에 인수하는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나왔다. 국세청은 결국 검찰에 박 회장을 고발했다.

 

사건을 접수한 검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검찰 조사 결과,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해 주는 대가로 홍기옥 세종캐피탈 대표가 정대근 전 농협 회장에게 50억원의 뇌물을 전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세종 측이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기인 정화삼씨 형제와 노 전 대통령의 둘째 형인 노건평씨에게도 접근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전방위적 로비 의혹’이 불거졌다. 결국 정대근·홍기옥·정화삼씨는 그해 11월 구속된다. 노건평씨 역시 12월4일 구속됐으며, 박 회장은 세종증권과 휴켐스 매각과 관련해 탈세를 저지른 혐의로 12월12일 구속됐다. 이때부터 광범위한 정·관계 로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조세포탈은 인정하지만 뇌물이나 로비 의혹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듬해인 2009년 1월, 검찰은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을 수사 책임자로 임명하면서 수사의 고삐를 당겼다. 3월부터 박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자 노무현 정권 관련 인사들이 무더기로 수사선상에 올랐다. 먼저 검찰은 노건평씨를 통해 박 회장으로부터 5억원을 받은 혐의로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을 3월19일 구속했다. 이어 송은복 전 김해시장을 구속했으며 3월23일에는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을 구속했다. 이와 함께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노무현의 오른팔’로 불린 이광재 전 민주당 의원도 조사했다. 3월25일에는 박 전 수석이, 3월26일에는 이광재 전 의원이 구속됐다. 이외에도 박진 전 한나라당 의원, 서갑원 민주당 의원 등이 줄줄이 수사를 받았다.

 

 

피의자 21명 중 19명 혐의 확정

 

검찰수사는 정점을 향해 가파르게 달렸다. 당시 목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본인에 대한 의혹이었다. 검찰은 3월31일 태광실업의 홍콩 현지법인인 홍콩 APC의 비자금 계좌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이 법인에서 500만 달러가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씨에게 흘러들어갔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여기에는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서 노 전 대통령에게 100만 달러가 흘러들어갔다는 정황도 포함됐다. 검찰은 4월10일 연씨를 체포하고, 추 전 비서관을 구속기소했다. 이어 4월11일에는 권양숙 여사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조사하고, 노 전 대통령 장남 노건호씨를 4월12일 조사했다. 이제 남은 것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였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4월30일 검찰에 출석했다. 주요한 쟁점은 노 전 대통령이 돈의 존재를 알고 있었냐는 점이었다. 하지만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돈 문제에 대해서 퇴임 후에 인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분은 검찰수사의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조사에서도 자신과 관련된 혐의를 부인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에게 “노무현씨 당신은 더 이상 대통령도 사법고시 선배도 아닌 뇌물수수 혐의자로 앉아 있는 거다”라고 말한 사람이 최근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쓴 책 《운명이다》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검찰에 도착했다.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 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중수1과장(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조사를 시작했다. 대통령은 차분하게 최선을 다해 꼬박꼬박 답변했다. 대통령의 절제력이 놀라웠다. 검찰의 조사를 지켜보면서 검찰이 아무 증거가 없다는 걸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소환조사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의 딸인 노정연씨뿐만 아니라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택순 전 경찰청장, 최철국 민주당 의원 등에 대한 수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 같은 강한 수사 드라이브는 결국 파국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고야 만 것이다. “검찰이 정권에 붙어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다”는 비난이 몰아쳤다. ‘정치적 타살’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로부터 20일가량 지난 6월12일 대검 중수부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 알선수재 혐의 등으로 20여 명을 구속하거나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2009년 검찰수사가 끝난 뒤부터 약 2년간의 재판이 시작돼 2011년 1월27일 대법원 판결을 끝으로 사실상 대부분 마무리됐다. 이날 판결로 주요 피의자 21명 중 19명의 혐의가 확정됐다.

 

당시 강원지사를 역임하고 있었던 이광재 지사는 대법원에서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1년, 추징금 1억1417만원을 선고받으면서 도지사직을 박탈당했다. 이 전 지사는 현재까지도 사면을 받지 못해 정치권에 들어올 수 없는 처지다. 서갑원 의원 역시 유죄가 확정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반면 박진 의원은 유죄는 인정됐지만 벌금 80만원에 그치면서 의원직을 지킬 수 있었다. 최철국 전 의원과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김정권 의원과 이상철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만이 무죄판결을 얻어냈다. 박 회장은 2011년 12월 징역 2년6개월과 벌금 291억원이 확정돼 복역 후 2014년 2월 만기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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