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종섭의 정치 풍향계] 삼성이 박근혜 대통령 잡는다
  • 소종섭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26 15:06
  • 호수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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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삼성-최순실-박근혜’ 뇌물죄 고리 집중 수사

박영수 특별검사는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다. 수사의 촉이 남다르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열쇠는 삼성이 쥐고 있다는 것! 수사의 성패는 삼성에 달렸다는 것을!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에 돈을 출연한 대기업들은 여럿이다. 그러나 최순실에게 직접 돈을 건넨 기업은 삼성이 유일하다. 특검은 생각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12월21일 본격 수사에 들어간 첫날 특검은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등을 압수수색했다.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출국금지했다. 특검은 병법에 나오는 ‘뱀을 잡는 전략’을 쓰고 있다. ‘풀숲에 숨어 있는 뱀을 잡으려면 풀을 두드려라’는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을 압박해 삼성을 끌어내고 삼성을 압박해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는 것을 노린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국민연금공단-삼성-최순실-박 대통령이 ‘뇌물’이라는 고리로 묶이게 된다. 즉 권력이 국민연금공단에 영향력을 행사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는 과정에서 삼성에 특혜를 줬고 삼성은 이에 돈으로 보답했다는 시나리오다.

 

특검 수사는 실제로 이 시나리오대로 작동됐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삼성은 합병 직후 최순실 측과 220억원대 승마 훈련 지원 계약을 맺었다. 실제 지원액은 80억원 정도다. K스포츠재단·미르재단에 204억원,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원을 지원했다. 총 440억원 중 300억원이 나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월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삼성, 이재용 살리기 위해 실토 가능성

 

이와 관련해 특검은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출국 금지하고 정조준했다. 12월22일 《KBS 9시 뉴스》의 보도는 상징적이다. ‘2015년 7월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직후, 승마협회장인 삼성물산 박상진 사장에게 ‘빨리 들어오시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또 이 문자가 전달된 직후 박 사장은 또 다른 삼성 관계자로부터 ‘승마협회 관련 회의를 빨리 준비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도 받았다. 그런 뒤 이 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사장, 박 사장 등이 참석한 긴급회의가 열렸다. 그런 뒤 7월27일 박 사장은 정유라씨가 있는 독일로 출국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과 박 사장 등 사이에 오간 문자메시지와 회의 등 추후 정황을 분석한 결과,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의 최순실씨 지원을 주도했다는 심증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이다.

 

검찰이 삼성의 대관 업무를 총괄한 장충기 미래전략실 사장의 휴대전화를 확보한 것은 11월23일. 비슷한 시기에 박상진 사장의 휴대전화도 검찰 손에 들어갔다. 특검은 이들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분석 등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을 추궁할 수 있는 유력한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TV조선은 12월22일 ‘삼성물산 박상진 사장은 지난 20일 특검의 비공개 조사에서 ‘올해 초쯤 최순실씨가 직접 연락 와 독일 자금 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jtbc는 ‘삼성 합병 직후, 승마 사업 본격 지원’ 문건을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대가로 최순실 측에 돈을 지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게다가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이 삼성과 관련한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삼성이 막으려고 한다고 막을 수 있는 단계를 지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삼성으로서는 어떤 선에서, 어떤 모양으로 정리하느냐 하는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영수 특검은 이번 수사에 있어 내심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와 관련 있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이 가장 약한 고리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이 부분을 강하게 압박하면 이 부회장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삼성에서 일정한 내용을 토해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듯하다. 벌써부터 재계 주변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몰라도 장충기 사장 등은 특검의 칼날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용 살리기’를 위해 국민연금공단-삼성-최순실-박 대통령 고리가 삼성의 실토로 현실화할 가능성이다. 이렇게 된다면 결국 박 대통령의 혐의와 관련해 삼성이 화룡점정을 찍게 되는 셈이다. 물론 ‘이재용 살리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상황이 그만큼 엄중하기 때문이다.

 

특검의 의도대로 수사가 진행된다면 정치권 변화도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은 이미 의원 35명이 당을 나왔다. 중도적 입장인 의원들 30여 명은 향방을 주시하고 있다. 특검 수사가 진행되면서 박 대통령이 뇌물죄 공범이 되는 쪽으로 흐름이 잡힌다면 1월 설을 앞두고 이탈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중앙일보가 삼성 잡는다?

 

12월21일자 중앙일보 1면
12월21일자 중앙일보 1면의 제목은 ‘최순실, 삼성 돈으로 강아지 패드까지 샀다’였다. 최씨 모녀가 애완견용 패드, 아기 목욕통 등 7개월 동안 독일에서 체류하며 쓴 경비 10억원을 삼성에 청구했고, 삼성은 질문 한 번 없이 최씨 회사인 코어스포츠를 통해 비용을 모두 지급했다는 내용이었다.

 

‘강아지 패드’는 인터넷을 달궜다. ‘최순실과 삼성’도 다시 입방아에 올랐다. 삼성으로서는 뼈아픈 보도였다. 그렇잖아도 삼성은 중앙일보 자매 회사인 jtbc에 의해 터져 나온 ‘최순실 태블릿PC’ 보도로 인해 최순실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곤혹스러운 상태였다.

 

삼성은 즉각 해명자료를 냈다. “삼성이 받아본 적조차 없는 일종의 가계부를 근거로 마치 삼성이 모든 생활비를 지원한 것처럼 표현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 코어스포츠가 삼성에 제출한 결산보고서에는 해당 내용이 전혀 없다.”

 

이날 보도가 화제가 된 것은 다른 신문이 아닌 중앙일보가 보도했다는 것 때문이다. 중앙일보와 jtbc를 양대 축으로 하는 중앙미디어네트워크는 홍석현 회장이 이끌고 있다. 홍 회장의 누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다. 혼맥도 혼맥이지만 중앙일보는 삼성 창업자인 故 이병철 회장이 1965년 창간한 신문이다.

 

이병철은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당시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보다 더 강한 힘으로 사회의 조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한 끝에 종합매스컴의 창설을 결심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과도 협의했더니 찬성하는 뜻을 표하면서 그 자리에서 홍종철 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도록 지시했다.’ 이병철은 기본 방침을 정하고 나머지는 홍라희씨의 아버지인 홍진기 전 내무장관에게 일임했다. 이승만 정권 때 법무·내무 장관을 지낸 홍진기는 4·19 당시 내무장관으로 있었다. 4·19 이후 사형을 언도받고 옥에 있을 때 이병철이 몇 번 찾아간 적이 있다.

 

중앙일보사가 펴낸 《유민 홍진기 전기》는 이렇게 전한다. ‘홍진기가 이병철로부터 매스컴 사업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은 것은 1964년 늦가을이다. 매스컴 사업은 뜻밖의 제안이었다. 이병철은 일본에 가 마이니치, 아사히 등 일본 유력지의 경영과 편집 시설 등 신문 제작 전반을 시찰했다. 한국 신문들이 갖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이미 검토를 끝내고 있었다. 유민은 이 회장의 매스컴 구상이 치밀하고 전문적인 데 놀랐다.’

 

1999년 4월1일 중앙일보는 삼성으로부터 분리했다. 그러나 이러한 태생적인 관계 때문에 아직도 중앙일보와 삼성을 연결해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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