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박사모'의 심리
  • 이나미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26 14:26
  • 호수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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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朴 대통령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리 분석 “위로해 주고 돌봐야 하는 희생자”

사람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냐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심리 분석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유가 없는 감정 변화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5% 중에는 박근혜는 싫지만 헌법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제도가 감정으로 좌우되지 말아야 한다, 외국 보기 창피하다 등등의 이유를 드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는 박근혜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언론몰이·포퓰리즘·종북좌파 등등의 삿된 집단들의 농단으로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박근혜 사교의 교도라는 비난도 받지만, 나름대로 이들은 진심으로 박근혜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것 같다.

 

우선 박근혜의 개인사에 대한 연민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본인 자신이 횡액을 당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를 먼저 보낸다. 박근혜가 부모를 잃은 나이는 사실 마음의 근본부터 흔들릴 정도로 어린 나이는 아니었다. 다만 총성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비극적이었고, 오랜 시간 동안 슬픔에 잠긴 모습을 보여준 언론의 이미지들이 각인돼 있다. 아름다운 여성이 부모를 잃은 외로움을 딛고 독신으로 신비스럽게 살고 있다는 설정은 드라마의 소재가 될 만하다. 위로해 주고 돌봐야 하는 희생자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투사되는 것이다.

 

박사모를 포함한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12월17일 서울 광화문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이날 보수단체 회원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를 주장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숭앙하는 왕가 사람인 것처럼 착각

 

두 번째는 이른바 박근혜가 품고 있는 왕실 이미지다. 꽤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박근혜 부녀를 왕실과 연관 지어 생각한다. 보통 “자기가 공주인 줄 알아” 하며 흉을 보긴 해도 막상 진짜 왕실 사람들이 죽으면 많은 사람들이 슬퍼한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나 태국 왕이 죽었을 때 애도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부모 잘 만나 하는 일 없이 호화롭게 살다가 국민의 혈세로 온갖 사치를 다 부리다가 죽은 것뿐인데도, 왕가에 대해 적개심을 표현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모든 사람들의 무의식 혹은 환상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왕자와 공주였던 적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 동일시하는 지점이 있다. 세상 물정 모를 때는 자신이 왕자 혹은 공주 이상으로 중요한 사람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어떤 장점 때문에 특별한 사람 취급받았던 적이 있다면, 사람들이 숭앙하는 왕가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현실이 너무 아파도 환상 속에서 왕자나 공주를 꿈꿨을 것이다. 박근혜는 왕 같은 독재 대통령의 딸로 또 여왕 같은 대통령으로 살았으니 이런 왕실 투사(投射)가 가능하다.

 

세 번째는 박근혜의 성격과 화법에 친근감을 보이는 이들이다. 오랫동안 언론과 정치인들은 박근혜를 신중하고 말 아끼는 사람으로 포장해 왔다. 실상 박근혜의 정신세계는 평범한 동네 아주머니 수준도 되지 않는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특별히 존경하는 사상가도 철학자도, 심지어는 좋아하는 소설가 하나 언급한 적이 없다. 다만 연속극의 주인공이나 연예인은 확실히 좋아한다고 밝히고 있으니, 보통 사람들은 수준 높은 지식인들보다 훨씬 더 동질감을 느끼고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다. 어려운 경제용어를 쓴 대통령 후보 고어에 비해 맞춤법도 틀리고 말실수도 많이 한 부시가 결국 대통령이 된 사실, 똑똑한 자수성가형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 멍청하지만 부모 잘 만나 부자가 되고도 단순한 언어로 잘난 척을 하는 트럼프에게 빈민층이 더 편안한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네 번째는 박근혜의 반대쪽을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나마 안심이 된다고 믿는 이들이다. 이들은 진보·종북·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부패하거나 권위적인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을 비판하는 지식인 또는 언론에 대해 깊은 혐오감을 품고 있다. 친일파건, 일본 황실이건, 독재정권이건, 일단 무조건 윗분들을 지키는 것이 전통적인 가치라고 생각하고 그 어떤 체제도 붕괴되는 혼란을 반대하는 이들이다. 무지한 농민들의 동학혁명 때문에 조선 황실이 무너진 것이고, 광주항쟁은 철저하게 공동체의 안녕을 훼손하는 폭도들의 분란이라고 믿는 이들이다. 이들은 꼭 박근혜란 개인을 좋아하기보다는 그녀가 반대하는 세력에 대한 악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에 박근혜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공동의 적 앞에서 일치단결하는 이들의 심정이다.

 

다섯 번째는 공과 사를 구별하지 않는 박근혜의 생활방식,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거나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다른 어떤 가치보다 먼저 두는 사고방식 등등에 전적으로 찬성하고 믿는 이들이다. 연속극 대사처럼, 다른 모든 것은 포기해도 외모관리는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거나, 내 자식만은 상처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인생의 모든 지향점이 완벽한 외모, 값비싸고 우아한 소유물, 재산, 자녀의 학벌 등에 있다. 이들은 이런 조건을 맞춰주는 이들과만 어울릴 수 있다고 본다. 이른바 클래스가 다르게, 허접하게 쓰고 노는 이들과 어울리면 스스로가 싸구려가 되는 것 같아 불쾌하다.

 

 

내용보다는 포장이 중요

 

이들은 공무집행 시간에 필러를 넣고, 성형시술을 하고, 비선과 어울리는 일 따위를 문제 삼는 이들을 오히려 이해할 수가 없다. 가장 중요한 자기 관리(?)를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공인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 이들의 예의 없음(?)을 비난하기도 한다. 이들은 또 말과 행동의 내용보다는 스타일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컨대 청문회에 나와 위증을 하고, 말 바꾸기를 하고, 그 어떤 거짓말을 해도, ‘꼿꼿하고 흔들림 없는 자세’ ‘깔끔하고 아름다운 외모’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철한 진술’ 따위의 외피에 높은 점수를 준다. 내용보다는 포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미친 사람들, 비도덕적인 사람들, 모자란 사람들로 함부로 대하지는 말아야 한다. 특히 지금은 그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더 존중받아야 한다. 소수의 의견은 살인·강도·강간·사기·절도·테러 등등 중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사회에 꼭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헌재와 특검이 다투는 것은 박근혜라는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이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취하고, 거액의 돈을 외국으로 빼돌리고, 특정 비선의 부패를 방조 혹은 주도했느냐는 것이다. 박근혜라는 개인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애정 때문에 범죄마저 덮어버릴 수는 없다. 사랑하는 자식이라도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 진실로 좋은 부모다. 진심으로 박근혜를 사랑한다면 그녀가 이번에는 인간적으로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공과를 더욱 철저히 짚어 주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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