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리려고 나왔다” 분노 가득한 ‘맞불집회’ 현장
  • 구민주 기자 (mjooo@sisapress.com)
  • 승인 2016.12.17 19: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탄핵 기각” 외치며 헌재 앞으로 모여···“100만 참가” 주최측 주장 불구, 경찰 추산은 3만명

 ‘누구를 위한 촛불인가, 촛불 대신 태극기를 들라.’ 12월17일 헌법재판소 100m 앞 안국역 사거리는 오전부터 태극기로 가득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해 반대하는 보수단체 주도의 이른바 ‘맞불집회’ 시위 현장에서는 장미꽃이 등장하기도 했다. 차분하고 평화로운 집회의 상징으로 장미꽃을 들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나눠주​​는 피켓의 문구와 집회 차량에서 나오는 발언의 내용들은 결코 차분하지만은 않았다. 광화문 촛불을 두고 ‘악마의 불꽃’이라고 쓴 자보가 거리에 붙어있는가 하면, 반대 세력을 향해 ‘한판 뜨자’고 외치기도 했다. 반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포함된 현수막엔 ‘사랑합니다’,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등의 문구가 새겨 있었다.

참가자들의 분노는 언론을 향할 때 가장 날카로웠다. 안국역 4번 출구 서울노인복지센터 옆에 세워진 집회 차량에선 1분 자유발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들의 발언에는 현 사태를 보도하는 언론의 편파성을 비난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광화문 촛불만 주목하고, 자신들의 집회는 전혀 보도하지 않거나 참가자수를 터무니없이 축소해 전한다는 것이다.

집회 도중 차량에 오른 진행자가 현장을 찍고 있던 모 방송사 카메라를 향해 “저들이 방금 우리 집회 참가자 수를 1만 명으로 보도했다”며 “제대로 보도하라”고 외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분노한 일부 시민들이 해당 방송사 카메라를 밀치고 욕설을 하는 등 과격한 행동을 보였다.

다수 참가자들은 적게는 10만, 많게는 200만명까지 현장에 모였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대사모)’ 장민성 회장은 “대사모 회원들만 전국 각지에서 11만 명 이상 왔다”고 확신했다. 이날 보수단체 집회 참석자 수를 놓고 주최측인 박사모에서는 100만명으로 추산했지만, 경찰 추산은 3만명에 불과해 상당한 차이를 나타냈다.



박사모를 포함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12월1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이날 보수단체 회원들은 박근혜 탄핵 반대를 주장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언론이 가장 문제…조작 의심 짙어”

다수의 집회 참가자들은 언론이 박근혜 대통령을 마녀사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지방에서 올라온 이아무개씨(24)는 “처음에는 언론보도를 고스란히 믿었는데, 어느 순간 모든 언론이 좌우할 것 없이 대통령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고 고의로 몰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스스로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의 일원이라고 소개한 최아무개군(21)은 “국회가 언론의 추측성 보도에 휩쓸려 탄핵 가결을 해버렸다”며 분노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회고록 문제가 터지자마자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 데 대한 의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12월15일 열린 세월호 7시간 관련 청문회에 대해서도 울분을 터뜨렸다. 대구에서 올라온 최은환씨(51)는 박 대통령의 미용·시술 의혹에 대해 “나도 어디 나갈 때 1~2시간 화장하고 머리를 한다. 대통령도 여자이지 않나”면서 “역대 대통령 중 화장이나 시술 안 한 사람 누가 있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뇌물죄 등 중대 범죄에 대한 증거가 없으니 시술 문제로 트집 잡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헌법재판소를 향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오아무개씨(33)는 “헌법재판관들이 어떤 압박도 받지 않고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면, 무조건 기각될 것”이라면서 “지금 나온 탄핵 사유들을 보면 탄핵 사유 같지도 않다”고 밝혔다. 대구에서 올라온 이아무개씨(24) 역시 “지금으로선 증거불충분 상태”라며 “헌재가 정정당당하다면 기각으로 결정되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60대 이상 다수…2030 참가자도 일부 눈에 띄어

촛불집회에 대한 ‘맞불집회’ 참가자의 대부분은 60대 이상 연령층들이었다. 주최 측 역시 이들의 건강을 위해 늦지 않게 집회를 해산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이로 10~40대의 젊은 층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부모를 따라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혼자 참석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거리 한복판에서 커다란 태극기를 흔들던 한 10대 여고생은 “나라를 망치려는 자들의 생각을 바꿔주고 싶어 나왔다”며 “죄다 허위보도와 거짓뿐인 뉴스도 어느 순간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온 40대 대학 교수 윤채원씨는 “편향된 언론에 저항하고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왔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법과 원칙, 진실이 존재하는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하얀 종이 상자로 만든 모금함을 들고 집회 현장 곳곳을 다니는 이들도 있었다. 스스로 자원봉사자라고 밝힌 이들은 “모금한 돈은 최종적으로 주최측인 박사모에게 모두 전해진다”고 말했다. 다음 집회에 필요한 차량, 태극기 등을 구입하고 신문광고를 싣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참가 시민들은 모금함 앞에서 주저 없이 지갑을 열었고, 커다란 상자는 금세 가득 찼다. 현장에서 모금함을 관리하는 한 참가자는 “우리는 광화문 집회 세력처럼 누구의 지원을 받아 움직이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