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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최순실 게이트 이후 ‘말 폭탄’ 쏟아내는 김정은

“남조선 것들 쓸어버려라!”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16(Fri) 09:50:56 | 14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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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의 입이 거칠어졌다. 최전방 군부대와 특수전 부대를 잇달아 방문하면서 고강도 대남 위협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공개 활동을 본격 재개한 이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군부대 방문이나 훈련 참관은 벌써 10차례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9월초 5차 핵실험 도발 직후 한반도에 B1-B 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 핵잠수함 등 대북 응징 전력이 전개되자 김정은은 노출을 중단하고 잠행에 들어갔었다. 그러던 그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남한 정국의 혼란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대남 공세 쪽으로 돌아섰다는 게 우리 당국의 판단이다.

 

김정은의 대남 언급은 거의 ‘말 폭탄’ 수준이다. 12월1일 포병부대 화력 타격훈련 참관 때는 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발언까지 던졌다. 강원도 원산 해안지역에서 벌어진 포격 장면을 참관한 김정은은 “첫 타격에 남조선 것들의 대응 의지를 완전히 꺾어놓으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단말마적으로 발악하는 놈들이 있다면 아우성칠 놈, 비명 지를 놈도 없이 모조리 쓸어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게 이튿날 노동신문 보도다. 이 훈련에는 유사시 연평도 타격을 담당할 서해 최전방 ‘섬 방어대’ 포병부대와 서울의 군사 시설물과 ‘반동 통치기관’을 타격할 중장거리 포병 구분대(북한군의 대대급 이상 부대)들이 참가했다는 게 북한 설명이다. 북한 매체들이 공개한 사진에는 152mm 자주포와 240mm 방사포 등 장사정포 100여 문이 해안가에 늘어선 게 드러난다.

 

이런 자리에서 김정은이 직접 “남조선 것들”이란 표현을 쓴 건 전례 없는 일이다. 김정일 집권 시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장면이다. 북한은 통상 대남 비난을 펼칠 때에도 ‘남조선 호전광’이나 ‘남조선의 군부세력들’같이 자신들이 껄끄러워하는 일부를 타깃으로 하는 문구를 써왔다. 하지만 김정은은 남한을 뭉뚱그려 제거해 버려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12월1일 강원도 원산 해안지역에서 실시된 북한 포병부대 화력 타격훈련 장면 ©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정일보다 한층 더 호전적인 표현

 

우리 군 당국은 김정은이 ‘남진(南進)’이란 말을 꺼낸 대목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남한 진격이나 남침을 의미하는 표현을 북한 최고지도자가 썼다는 건 그만큼 위기지수가 올라갔음을 드러내는 단서라는 설명이다. 군 당국자는 “김정은이 과거 북한군이 새로 만든 군가 악보를 보고받고 ‘남진의 길을 가자’는 격려 친필을 내린 영상이 조선중앙TV에 보도된 적은 있지만, 대남 타격 훈련장에서 직접 입에 담았다는 건 차원이 다른 얘기”라고 말했다.

 

북한군은 12월 들어 ‘2017년도 전투정치훈련’을 시작했다. 2017년 4월까지 이어질 동계 군사훈련 가운데 우선 정치사상 교육부터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의 언급은 이런 시점에 맞춰 북한군의 사기를 진작시키려는 선동 공세 차원일 수도 있다. 특히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6주기를 계기로 11월29일 우리 군이 백령도와 연평도 일대에서 실시한 해상사격훈련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으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우리 군 당국은 북한 김정은의 언급내용이나 군부 동향이 지나치게 긴장 수위를 끌어올리는 쪽으로 치닫는 게 심상치 않다며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적이 도발할 경우 강력하고 단호한 응징에 직면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주한미군 측도 김정은의 강도 높은 대남 도발 발언의 배경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발 가능성을 경고하는 고위 관계자의 언급도 나와 눈길을 끌었다. 토머스 밴달 주한 미 8군사령관(육군 중장)은 12월6일 “북한이 30일에서 60일 이내에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밴달 사령관은 카투사 출신 한국 언론사 간부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구체적인 조짐이 있는 건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새로 출범할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북한은 잘 모르고 있으며, 도발을 통해 이를 확인하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순실 사태를 염두에 둔 듯 “한국도 정치적인 전환기란 점에서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정부 안보부처와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호전적 성향이 불러올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악화에 우려를 제기한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김정은의 경우 거침없는 대남 위협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물론, 구체적인 도발 시나리오까지 마련한 듯한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는 점에서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이른바 ‘통일 대전’ 또는 ‘통일 성전(聖戰)’이란 표현까지 동원해 대남 공세를 펼쳐왔다. 핵과 미사일 개발과 관련해서는 ‘서울 불바다’는 물론 “핵 뇌성을 적의 머리 위에 터치라”는 식의 주장도 속속 내놓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2월1일 조선인민군 전선 포병부대들의 포병 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우리 정부 “‘북풍 조작’ 제기될까 조심스럽다”

 

이를 두고 10대 시절 스위스 베른에서 수년간 조기유학하고 인터넷 등을 통해 남한 사정에 누구보다 밝은 김정은이 대남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 제기된다. 남북 간 45배의 소득격차와 북한이 처한 국제 고립과 꼬일 대로 꼬인 경제난 등을 절감하고 있을 김정은이 열패감에 사로잡혀 과장된 대남 발언과 호전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대북 압박 공세를 이어가던 박근혜 정부가 ‘최순실 사태’라는 메가톤급 충격파에 좌초하고 있는 상황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마침 미국의 대선 결과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는 등 북한으로선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현재로선 북한이 6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적 행보를 당분간 자제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트럼프 당선인과 필요 이상의 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김정은으로선 당분간 최순실 사태를 적극 활용한 대남 공세와 남한 흔들기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이 연장선상에서 북한이 서해 최전방 수역에서의 제한적 도발이나 국지전 수준의 군사분계선 인근 충돌을 감행할 우려가 있다고 우리 당국은 보고 있다. 또 사이버 전력을 총동원한 해킹으로 남한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거나 ‘북한 소행’ 여부를 둘러싼 남한 내 여론 분열을 꾀할 공산도 크다는 판단이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최순실 사태가 대북·안보 문제의 거대한 블랙홀이 돼버려 북한의 도발 행보에 집중력 있게 대응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자칫하면 우리 내부에서 ‘북풍 조작’ 논란까지 제기할 가능성이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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