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투자’ 미끼, 갈수록 교묘해지는 불법 다단계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12.13 13:41
  • 호수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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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도 손해 고작 수십만원, 잘되면 대박”…다국적 불법 여행 다단계 ‘월드벤처스’ 피해 속출

인천시 부평구 삼산동에 사는 진준섭씨(가명)는 한 달 전 고교 동창의 소개로 인천시 남구 간석동의 한 사무실을 방문했다. “○○씨랑 친하다면서요? 잘 오셨습니다. 해외여행 좋아하시죠? ‘드림트립스’라는 이 상품은 시중에서 파는 여행상품보다 훨씬 쌉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요즘 같은 불황에 ‘투잡’(Two Job)을 꿈꾸신다면, 주위에다 이거 한번 소개해 보세요. 제 아는 분은 두 달 동안 사람을 모아 ‘DIR’(Director 약칭)이라는 직급에 올랐는데, 벌써 월 200만원씩 부수입을 올리고 있어요.”

 

그가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주위에는 진씨처럼 상품 설명을 듣는 사람들이 4~5명 정도 있었다. 진씨는 ‘월 200만원 보장’이라는 말에 솔깃했지만, 너무 쉽게 돈을 번다고 생각, 관계 당국에 관련 사실을 문의했다. 그 결과, 서비스가 불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진씨는 불법 다단계 피해자 모임인 네이버 카페 ‘백두산’(cafe.naver.com/notouch7 )에 관련 내용 일체를 올렸다.

 

© 일러스트 김세중

‘최고 월 1억8000만원씩 가져갈 수 있다’ 홍보

 

진씨가 소개받은 것은 ‘월드벤처스’라는 여행 다단계 상품이다. 구성은 전형적인 다단계(피라미드) 판매 방식이다. 개요부터 설명하면, 월드벤처스 상품은 순수하게 여행만 가는 골드 회원(드림트립 라이프)과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는 플래티넘 회원(대표사업자 시스템) 등 두 가지다. 골드 회원은 가입비 20만원에 월 회비로 5만원을, 플래티넘 회원은 가입비 30만원에 월 6만원씩을 회비로 낸다. 월드벤처스는 “4명을 모으면 월 회비를 면제받으며, 이후부터 인센티브(수당)가 제공된다”고 홍보하고 있다. 또, 이렇게 해서 자기 아래 회원이 10명으로 불어나면 100만원, 30명이면 수당이 250만원으로 불어난다고 설명한다.

 

겉으로 나타난 수익구조는 단순하지만 한 단계 들어가면 방식은 다소 복잡하다.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다. 월드벤처스에 따르면, 자신이 데리고 온 4명 중 3명은 의무가입자다. 이들이 아무리 투자자를 많이 끌고 와도 수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대신 나머지 1명이 데리고 온 사람이 수입과 연결된다. 1명이면 월 회비가 면제되지만, 추가로 2명을 데리고 와 3명씩 균형(기본 인원 3명)을 이루면 인센티브를 받는다. 이를 가리켜 다단계 업계에서는 ‘혼합형 바이너리 방식’(Hybrid Binary System)이라 부른다. 일반적인 바이너리 방식이 모집 고객을 양쪽으로 나눠, 둘 가운데 가입자 수가 적은 쪽을 인센티브 지급 기준으로 삼는다면, 혼합형은 이를 변형한 방식이다. 월드벤처스는 최고 자리인 IMD에 오르면 월 1억8000만원씩을 가져갈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재 네이버·다음 등 주요 포털에서 검색 키워드로 ‘월벤’ ‘월드벤처스’ ‘드림트립스’ 등을 치면 월드벤처스를 홍보하는 블로그를 쉽게 볼 수 있다. 내용은 칭찬·홍보 일색이다. 싸게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부터 사업자 서비스로 활동해 큰돈을 만졌다는 것까지 각양각색이다. 크루즈를 타고 해외 유명 여행지를 다녀온 사진을 보고 있다 보면 솔깃해지기 쉽다. 관련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고자 블로그나 사이트 전화번호를 검색했는데 한결같이 휴대전화번호만 기재돼 있다. 사무실로 추정되는 일반전화번호는 모두 발신전용 번호이다.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곳치고는 지나치게 음성적이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경우에는 ‘대리점’에서 사전 예약제로 교육이 실시된다. 실제로 시사저널이 월드벤처스 판매 대리점에 상담 요청을 해 봤는데, 돌아온 대답은 “상대방의 신원을 파악한 뒤 서비스를 소개하겠다”는 것이었다. 대리점 측은 아울러 “단순 상담을 원한다면 카카오톡 등 온라인 메신저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보안 유지에 민감한 이유는 해당 서비스가 국내법상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어서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방판법) 제24조에 따르면, 다단계 판매업체는 판매원에게 가입비·판매 보조 물품·개인 할당 판매액·교육비 등 그 명칭이나 형태에 상관없이 연간 5만원을 초과한 비용 또는 그 밖의 금품을 징수하는 등 의무를 부과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쉽게 말해, 회원 가입을 명목으로 5만원 이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판매원에게 지급되는 수당을 매출액의 35%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국내 규정과는 달리, 월드벤처스는 매출액의 65%를 회원들에게 돌려준다. 단시간 내 빨리 투자자를 늘리기 위해서다. 이 또한 엄연히 불법이다.

 

더욱이 월드벤처스는 현재 공적 기관인 직접판매(직판)공제조합 회원사가 아니다. 공제조합에 가입돼 있느냐는 다단계 판매사에게는 굉장히 중요하다. 공제조합에 가입돼 있어야만 만일의 상황에도 피해 구조(救助)를 받는다. 이는 사실상 합법과 불법을 판가름하는 기준이다. 월드벤처스가 직판공제조합에 가입할 수 없는 이유 역시 현행 방판법이 정한 금액 이상으로 돈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한경희 직판공제조합 팀장은 “월드벤처스와 같은 불법 다단계는 피해 발생 시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월드벤처스와 같은 불법 다단계에 피해자들이 몰리는 이유는 개인사업자들이 관련 서비스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법인이 아니어서 조사 및 처벌도 쉽지 않다. 개인 간 사적 거래인 데다 거래 방식도 음성적이다. 현재 월드벤처스는 국내에 법인을 두지 않고 있다. 월드벤처스는 2년 전부터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소비자들에게 “조만간 한국 사무소를 낼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법인 설립은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다. 수사 당국은 현재 월드벤처스가 서울·인천·부산 등 전국 60~70곳에 교육장 목적으로 대리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 대리점은 법인 형태가 아닌 개인사업 형태다.

 

인천시 남구에 위치한 한 월드벤처스 대리점 © 시사저널 박정훈

“국내 법인 두지 않고 있어 처벌 힘들다”

 

실제로 시사저널은 지난 12월6일 관련 제보를 받고 인천시 남구 간석동 V빌딩을 방문했으나, 한 달 전 사무실을 다른 곳으로 이전한 상태였다. 이틀 뒤 추가 제보를 받고 간 곳은 간석동에서 2km 떨어진 S빌딩 3층이었다. ‘드림트립스(Dream Trips)’라는 간판을 내걸고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주로 플래티넘 회원을 위한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개인사업자로 운영되다 보니 정확한 매출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단적으로 정확하게 얼마씩 세금을 내는지조차 불분명하다. 탈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관계 당국의 조사는 미진하다. 한 관련 업계 관계자는 “국내 법인을 두지 않고 있어 사법·행정 처벌을 내리기조차 힘들며, 예약 관련 홈페이지도 서버가 해외에 있다”고 말했다. 대금 결제에는 신용카드가 사용된다. 또 플래티넘 회원으로 가입하‘월드벤처스 전자지갑’(worldventures.globalwallet.com)이라는 자체 결제 시스템을 통해 주급·월급을 지급받는다.

 

 

‘소액투자’, 투자자 유혹하는 좋은 수단으로

 

월드벤처스는 2005년 12월 미국 텍사스에서 웨인 뉴젠트와 마이크 아즈큐가 설립한 여행 다단계 회사로 알려져 있다. 회사 홈페이지에는 전 세계 25개국에 진출해 있다고 소개돼 있다. 하지만 여행 업계에 알려진 바로는 미국·홍콩·싱가포르에서만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나머지 지역에서는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국내에 소개된 시점은 2년 전인 2014년 무렵이다.

 

월드벤처스는 초창기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피해자가 급증했지만, 최근 1~2년간 관심이 시들해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경기 불황 속에서도 해외여행 수지가 나날이 급증하면서 최근 다시 가입자 수가 늘고 있다. 네이버카페 ‘백두산’ 운영자 ‘대마불사’(필명)는 “국내 회원 수만 10만여 명에 달하며, 특히 50대 이상 중년 여성 가입자 비율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일반 소비자들이 월드벤처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는 저렴하게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는 점에 끌려서다. 관련 사이트에 가면 익스피디아·아고다 등 다국적 여행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숙박시설과 월드벤처스 상품을 비교한 자료가 뜬다. ‘7박8일 마우이 여행, 1인당 $750(약 80만원), 익스피디아보다 $2105(약 224만원) 저렴한 가격’. 월드벤처스 홍보사이트에 올라온 내용이다.

 


여기에는 맹점이 숨어 있다. 월드벤처스에 올라온 상품은 대부분 미국·유럽 고객을 위해 구성된 상품들이다. 만약 국내 고객이 월드벤처스를 통해 여행을 다녀올 경우, 비행기표는 별도 구입해야 한다. 최근 월드벤처스를 통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한 제보자는 “별도로 가이드가 없어 영어로 현지인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별도의 여행자보험도 제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산술적으로 가입비를 빼고 1년간 낸 60만원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어 보이지만, 한꺼번에 60만원어치 포인트를 다 사용할 수 없다. 상품마다 쓸 수 있는 포인트가 정해져 있다. 최소 두 번 이상 해외에 나가야 한다. 이때마다 별도로 비행기 값을 내야 한다. 또 주말이 아닌 평일에만 관련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모든 패키지 상품은 2인 이상 이용이 기준이다. 국내 직판 업계 관계자는 “막상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이것저것 제약이 많아, 업체가 홍보한 것처럼 서비스를 100%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탈퇴 과정도 복잡하다. 월드벤처스 측은 가입 후 15일 이내 서비스 취소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영어로 된 홈페이지에 자신의 인적사항을 기록해야 하며, 이마저도 2주 후 결과를 통보받는다. 사고·질병·개인 사정으로 여행을 갈 수 없을 경우, 명확한 환불 규정이 없다. 포인트는 연간 단위로 모두 소멸된다. 낸 돈을 무조건 1년 안에 써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월드벤처스로 손해 본 금액이 전체 3000억~4000억원일 것으로 추정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관련 서비스가 사회문제로 비화되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한 다단계 판매 전문가는 “투자금액이 50만~60만원으로 비교적 크지 않아서 문제가 돼도 ‘없는 돈인 셈 치자’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상당수며, 이들은 지금까지도 월드벤처스가 무등록 불법 다단계 업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월드벤처스 교육 자료에 보면 ‘3개월이면 이 사업의 비전을 판단한다. 손해가 나면 50만원이며 투자 리스크가 적다’고 명시돼 있다. 소액 투자라는 점이 월드벤처스에게는 투자자를 유혹하는 좋은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월드벤처스 회원은 “하나의 ‘여행사’라기보다는 거대한 ‘여행 동호회’ 정도로 이해해야 하며, 큰돈을 벌 수 있다기보다는 여행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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