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꾼’ 트럼프 중국의 허를 찌르다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12 16:22
  • 호수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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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트럼프-대만 총통 통화에 발끈…“트럼프의 중국 기선제압용”

“트럼프만이 할 수 있는 노련한 전략이다. 중국의 허를 찌른 거다.” 12월2일 미국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와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전격적으로 통화한 사실을 두고 미국의 한 정치 분석가가 내놓은 말이다. 1979년 미국은 중국과 수교를 시작하면서 대만과는 수교를 끊고 이른바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해 왔다. 그런데 37년 만에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이 원칙을 깨고 대만 총통과 전화회담을 했다. 그것도 대만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차이 총통과 전화통화를 했으니 중국 정부가 노발대발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중국은 즉각 “중국은 이번 사안에 관해 이미 미국 측 당국자에게 엄중히 항의했다”며 “세계에 ‘하나의 중국’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표명해야 하며 대만은 중국 영토의 불가분한 일부”라고 강력히 항의했다.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환구시보가 12월7일 사설에서 ‘대만해협은 군사적으로 병풍막이 될 수 없다. 중국은 평화통일을 원하지만, 무력통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며 ‘인민해방군은 몇 시간이면 대만군을 궤멸시키고 전(全) 대만섬을 탈취할 능력이 있다. 대만을 돕는 미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전투는 끝날 것이다’고 군사력 사용까지 언급했다. 

 

© 일러스트 정찬동

트럼프의 對中 ‘채찍과 당근’ 전략

 

중국의 반발을 뻔히 알면서도 트럼프가 강공책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트럼프는 대만 총통과 통화한 후 자신의 트위터에 “중국은 우리에게 그들의 화폐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에 대해 괜찮은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중국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 경쟁을 어렵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묻지 않았다”며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언제 너희(중국)들이 우리와 협의를 했느냐”며 자신이 중국과 상의도 없이 대만 총통과 통화한 사실은 무역 갈등에 관한 전초전일 뿐이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중국은 남중국해의 중심부에 자신들의 군사 기지를 세운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이런 것들에 대해 우리의 의견을 물었다고 보지 않는다”며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까지 거론하며 중국을 강력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트럼프 당선인과 차이 총통의 통화는 트럼프의 튀는 행동이 아니라, 고도로 계산된 전략적인 행동이라는 평가가 많다. 미국이 대만과 수교는 끊었지만, 실제로 공화당 내에는 대만을 전통적 우방으로 여기는 인사가 부지기수다. 특히 이번 전화통화에서 대표적인 친(親)대만 로비스트로 활동 중인 밥 돌 전 공화당 대선후보가 대만과 트럼프 측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밥 돌은 지난 5월 공화당 대선후보 출신 유력인사 중 유일하게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올해 초부터 그는 스탠리 카오 대만특사를 트럼프 측 외교안보 참모인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과 만나도록 주선했고, 대만 외교관들과 트럼프 인수위원 간 회동도 마련하면서 물밑 작업을 해 왔다. 하지만 단순히 이러한 물밑 작업이 트럼프와 대만 총통의 통화를 가능하게 했다기보다는 트럼프가 직접 판단해 움직였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트럼프는 이에 더해 새해 1월 남미 3개국을 방문하는 차이 총통이 미국을 경유하는 과정에서 그와 회담을 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의 반발이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중국이 최근 대만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강력히 항의하고 있는 것도 개의치 않겠다는 심산이다.

 

 

트럼프, 대만 이용해 실익 챙기려는 듯

 

일부 분석가들은 트럼프의 이러한 행보는 그가 취임하고 나면 미·중 간의 무역 갈등뿐만 아니라 자칫 군사적 충돌의 신(新)냉전이 도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만과 접촉하면서 중국 때리기에 나선 것은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정책의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취임 후 펼쳐질 무역 갈등에서 기선을 잡기 위한 것이라는 데 방점이 찍힌다.

 

당장 트럼프는 대만을 이용해 중국에 채찍을 들면서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30년 넘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테리 브랜스테드(70) 아이오와 주지사를 주중 미국대사로 내정했다. 화가 난 중국을 달래기 위한 ‘당근’도 함께 제시한 셈이다. 대선 기간 트럼프 당선인을 지지한 브랜스테드 주지사는 시 주석이 1985년 축산 대표단을 이끌고 아이오와주를 방문했을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미국의 대표적 친중(親中) 인사다. 시 주석은 취임 직전인 2012년 2월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도 27년 전 방문했던 아이오와 시골 마을을 다시 찾았고, 같은 해 6월 브랜스테드 주지사의 중국 방문을 크게 환대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중국 정부가 가장 원하고 있는 인사를 주중 대사에 내정해 미·중 관계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다시 중국 정부에 던졌다. 즉 자신은 ‘싸움’보다는 ‘협상’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중국에 알린 셈이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공약한 대로 중국에 대해 강경책을 펴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무역 문제에 있어서는 중국 때리기 기조를 그대로 유지할 전망이다. 특히 취임 직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첫 ‘싸움’을 시작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는 중국에 얼마든지 ‘협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트럼프가 대만을 이용해 중국 때리기에 나서면서 대만에만 불똥이 튈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으로부턴 보복 조치 등으로 당장 관광객 감소는 물론 중국으로 향하는 수출에도 치명타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미·중 간의 무역전쟁이 발생한다면, 대만의 경제적 타격도 우려해야 할 상황에 빠질 수 있다. 트럼프가 대만에 친근한 미소를 보내는 것이 어찌 보면 하나도 실익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대만 총통과 통화하며 중국 때리기에 나서면서, 한편으론 한반도에 대해 어떤 전략을 들고나올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당장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재협상을 공약한 트럼프가 한국과의 무역 문제 등에서 어떠한 정책을 내놓을지가 관심사다. 그가 대선 기간 내내 언급한 북한 문제에 어떠한 입장으로 대응할지도 주목된다. 다만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는 평소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 책임론’을 강력하게 주장해 온 터라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즉 중국을 통한 우회적인 북한 압박에 우선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북한이 다시 핵실험 등 고강도 행동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를 떠보려고 할 때 트럼프가 어떠한 반응을 내놓을지는 알 수 없다. 기존 오바마 행정부의 이른바 ‘전략적 인내’가 아니고 무엇이라도 미국 국민한테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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