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역사인식 배양 어려워…기존 교과서와 다를 게 없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12.06 15:58
  • 호수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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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태진 前 국사편찬위원장 “1948년 대한민국 수립 표현은 무리수”

교육부가 11월28일 공개한 국정교과서와 관련한 논란이 들끓고 있다. 애초 교육부가 자신해 온 것과 달리 반대 여론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전국 시·도 교육감은 물론 교원 단체, 제주 4·3희생자유족회 등은 해당 교과서에 대한 거부감을 강하게 표출하는 상황이다.

 

현행 검·인정 역사교과서 진행 업무를 관장했던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국정교과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쏟아냈다. 중도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그는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해 “무색무취·사실 나열주의 교과서”라고 혹평했다. 그는 국정교과서에 대해 “이념적 논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도 때문인지 사실들만 줄줄 나열돼 ‘혼(魂)’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국편위원장을 맡았을 당시 좌편향 논란이 불거져 현행 검·인정 교과서를 중도 또는 중도우파적 성향으로 바꿨다”며 “괜히 현 교과서가 좌편향적이라고 트집을 잡아 급히 수정하다 보니 시간이 부족했다”고 했다.

 

이태진 前 국사편찬위원장 © 시사저널 최준필

 

새롭게 공개된 국정교과서를 어떻게 보는가.

 

미안한 소리지만 또 하나의 검·인정 교과서를 만들어놓은 것밖에 안 된다는 느낌이 강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대통령이 ‘혼이 담긴 역사책’을 주장했는데, 해당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반적으로 내용을 살펴보면 기존의 검·인정 교과서들이 갖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지 못했다. 사실 위주로 나열된 교과서는 역사를 암기하게 한다. 학생들이 흥미를 갖고 지속적으로 읽을 수 있게 만들어야 했는데 그 부분은 소홀했던 것 같다. 차라리 검·인정 교과서의 문제점을 전문가들이 파악한 뒤 각 출판사에 수정 기간을 주고 개선하는 쪽으로 했다면 오히려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기존 검·인정 교과서와 다른 점은 없나.

 

누가 시비를 걸지 못하도록 흠이 없는 문장을 만들려고 한 현상이 뚜렷하다. 덕분에 평이한 서술이 됐다. 사회적 지탄을 의식해서 그런 듯하다. 굳이 현행 검·인정 교과서와 차이점을 찾자면 사진을 참 많이 넣은 점이 눈에 띈다. 집필팀을 크게 만들어서 특별히 배려를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서양사를 막론하고 사진을 많이 넣었고, 디자인 기술도 이전에 비해 상당히 눈에 띄는 점은 있었다.

 

 

왜 기존 문제를 개선하지 못했다고 보는가.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다. 교과서를 서술할 때엔 기존 연구 성과와 현장의 목소리를 조화롭게 담기 위해 의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뒤 1년 안에 국정교과서가 나왔다. 집필자들이 모여 쓸 수 있는 시간은 6~7개월밖에 안 됐을 것이다. 한 시대 집필자를 복수로 해서 3~4년을 줘야 한다. 이 시간 동안 어떻게 재밌게 읽히도록 만들지 연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감스럽게도 정권 초 방침에 따라 진행한다.

 

 

근·현대사 부분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 같다.

 

전반적으로 문제가 될 부분은 전부 간략하게 서술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살짝 지나가다시피 서술해 버렸다. 의미를 부여하는 용어를 피했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서술이 대표적인 예다. 좋게 말하면 담백하고, 나쁘게 말하면 ‘드라이’하다. 뭔가 담아야 할 내용을 담지 않은 느낌이다.

 

 

대표적으로 어떤 부분이 문제라고 보는가.

 

1948년 대한민국 건국과 관련된 문제다. 역사학계 통설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의 힘으로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세우면서 대한민국 국호를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백한 건국이다. 항일 독립운동의 힘이 임시정부를 통해 규합돼 나갔다. 하지만 국정교과서에는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서술했다. 1919년이든 1948년이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건국을 서술하지 못하는 꼴이 됐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쳐버린 꼴이다. 특정한 의도를 가진 1948년 건국 주장파들을 의식한 결과다.

 

 

친일파와 관련된 서술도 줄었다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친일파와 관련된 내용뿐 아니라 ‘민족 영웅’으로 불리는 안중근이나 유관순 열사에 대한 서술이 줄었다. 친일파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대한 내용도 쓰긴 썼지만 내용 면에서 자세하지 않다. 특이점은 식민지 근대화론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학교 교과서에는 1920~30년대 경제 관계가 거의 없다. 문제가 될 것 같으니 아예 뺐다. 수탈경제론이 고등학교에서 나와서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식민지 근대화론과 함께 근대 맹아론, 대한제국기 자력근대화 성과 등도 빠지거나 소략됐다.

 

 

다른 문제는 없나.

 

일부 근현대사 부분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새로운 연구 성과 반영에 인색했다.

 

 

집필진이 편향됐다는 지적도 있다.

 

역사학계에서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태반이다 보니 그런 현상이 벌어진 것 같다. 현대사의 경우 학계에 업적을 낸 전공자들은 대부분 국정 자체를 거부했다. 현대사 부분에선 역사학자를 집필진에 초청하긴 어려웠던 상황이다. 실제 역사를 전공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국정화 자체에 무리가 있었다. 집필진 구성보다 내용을 갖고 평가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국정교과서 서술 과정에서 국사편찬위원회의 개입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전임 국편위원장으로서 어떻게 보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거 검·인정 교과서와 관련해 제주 4·3사건과 같이 특별히 논란이 됐던 부분도 간신히 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외부에 공개하기 전까진 위원장도 못 본다. 국정교과서의 경우 다를 수 있지만 위원회에서 손을 대는 것이 정상적이진 않다고 본다.

 

 

국정교과서를 폐기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공개된 국정교과서는 검·인정 교과서와 근본적 차이가 없다. 그게 그거다. ‘대한민국 수립’ 문제와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성과 측면 외에는 기존 교과서들하고 별 차별성을 못 느끼겠다. 기존 검·인정 교과서에 국정교과서를 하나 더 추가해서 학교 선택에 맡기자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애초부터 국정화를 시도한 것이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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