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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평양 Insight] 트럼프 당선에 고민하는 김정은

의기투합 또는 대충돌 갈림길…6차 핵실험 관측도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01(Thu) 08:40:30 | 14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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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을 바라보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악이라고 여겼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패한 미국 대선 결과에 안도했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이후 행보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북한에 우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트럼프의 유세 발언과 달리 한반도와 대북 이슈 관련 선거 공약에 상당한 기류변화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의 외교안보 진용 인선과 향후 대북정책 청사진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미 대선(11월8일)이 끝난 지 9일 만에 제네바에서 이뤄진 북·미 간 접촉에서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장 등 북한 당국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트럼프 진영의 대북정책 관련 정보였다는 후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 AP 연합


김정은, 트럼프 언급과 對美 발언 자제

 

김정은은 트럼프 당선에 대한 언급이나 대미 발언을 삼간 채 관망하는 모양새다. 서해 최전방 섬 방어대를 잇달아 찾아 대남 위협발언을 쏟아놓는 데 치중하고 있다.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관영 선전매체들도 대미 비난 등을 사실상 중단하고 초점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등 대남비방에 맞추고 있다. 9월 감행한 5차 핵실험을 계기로 “워싱턴 핵 타격”이나 “미군기지가 있는 괌을 지도에서 날려버리겠다”고 김정은이 직접 목소리를 높이던 것과는 달라진 분위기다.

 

북한은 미 대선 기간 중 트럼프 캠프 쪽에 줄을 서는 모습을 보였다. 대선 열기가 고조되기 시작한 지난 6월에는 선전매체를 동원해 “미국 국민이 선택해야 할 후보는 우둔한 힐러리가 아닌 현명한 트럼프 후보”라는 주장도 펼쳤다. 트럼프가 현명한 정치인이고 선견지명이 있는 대통령 후보감이란 요지였다. 돌출 발언과 괴팍스러운 행동으로 ‘막말 후보’나 ‘괴짜’로 여겨지던 트럼프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강한 기대가 깔려 있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런 분위기는 미 대선 결과에 대한 북한 당국의 첫 반응에서도 엿볼 수 있다. 노동신문은 트럼프의 당선 이튿날인 11월10일자 논평에서 ‘미국이 바라는 조선(북한)의 핵 포기는 흘러간 옛 시대의 망상’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 확보를 추가해 보겠다는 구상이 읽히는 대목이다.

 

당초 북한 당국의 기대를 부풀린 건 트럼프의 돌출 유세 발언이다. 가장 평양 측의 눈길을 끈 건 주한미군과 관련한 언급이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을 한국이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지난 5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 주둔 분담금 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트럼프는 “100%는 왜 안 되냐”고 반문했다.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카드까지 뽑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것으로 해석된 발언도 화제가 됐다. 지난 6월 조지아주 애틀랜타 유세 당시 트럼프는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만날 것”이라며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열어놓았다. “회의 탁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더 나은 핵 협상을 할 것”이란 말도 했다. ‘전략적 인내’를 기치로 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무시와 압박 정책에 시달려온 김정은으로서는 솔깃한 언급일 수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 조선중앙통신 연합


트럼프 “북한이 매우 불안정하다고 생각”

 

하지만 당선인 트럼프의 행보는 온도차가 났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직후 트럼프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미국은 한국과 100%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또 “북한이 매우 불안정하다고 생각한다”는 언급도 했다.

 

트럼프의 표변(豹變)은 이뿐만이 아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 측에 서서 자신을 괴롭혔던 뉴욕타임스(NYT)를 당선 후 전격 방문한 트럼프는 “나는 NYT에 엄청난 존경심을 갖고 있다”며 ‘미국의 보석’이라고 치켜세웠다. “세상에서 가장 못되고 부정직한 자들”이라거나 “NYT를 안 읽으면 20년은 더 살 것”이라고 독설을 퍼붓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경쟁자이던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을 기소하겠다던 입장도 철회하는 등 화해 제스처를 보이는 점도 눈길을 끈다.

 

사실 트럼프의 과거 발언을 꼼꼼히 살펴보면 그의 대북 인식이 상당히 비판적 성향임을 알 수 있다.  2000년 개혁당 후보 출마 때 펴낸 책 《우리에게 걸맞은 미국(The America We Deserve)》에서 트럼프는 북한의 원자로를 폭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또 “핵전쟁을 원치 않지만 협상이 실패한다면 북한이 (미국에) 실질적 위협을 주기 전에 무법자들을 겨냥한 정밀 타격을 하는 걸 지지한다”고 말했다. 미국에 명백한 위협이 된다면 대북 선제타격도 선택 가능한 옵션이란 얘기다. 김정은을 “미치광이 같다”고 비난하며 “빨리 사라지게 만들겠다”고 언급한 일도 있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행보를 주시하며 당분간 탐색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자칫 트럼프의 눈 밖에 나는 건 전략상 손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심기를 크게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관심을 돌릴 정도의 도발적 움직임을 보이거나 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들고나올 것이란 분석도 있다. 물론 김정은식 마이웨이를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려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통일전략연구실장은 “2017년 초반에 추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다양한 도발 행태를 구사하며 재차 핵 보유국 선언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12월17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5주기다. 최고지도자에 오른 지 5년을 맞는 김정은으로서는 자신만의 리더십을 북한 권력층과 주민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시점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좌충우돌하는 성격이나 거침없는 언사 등에서 유사점을 드러낸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할 경우 햄버거를 먹으며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일생을 사업가로 살아온 트럼프가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김정은에게 실망한다면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다. 핵·미사일을 거머쥔 북한 김정은이 미국 대통령 트럼프를 상대로 어떤 승부수를 띄워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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