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드라마? ‘참담한 다큐’로 막 내린 2016 K리그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16 13:26
  • 호수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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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中·日은 뛰는데 韓은 제자리걸음

2016 K리그 클래식 최종전인 38라운드가 열린 10월6일 전주월드컵경기장. 후반 13분 박주영의 오른발을 떠난 공이 전북 현대의 골망을 흔들었다. 이 골로 FC 서울은 1대0으로 승리해 161일 동안 1위 자리를 줄곧 유지했던 전북을 마지막 날 2위로 밀어내며 극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중 중국으로 떠난 최용수 감독의 뒤를 이어 서울의 지휘봉을 잡은 황선홍 감독은 역전 우승으로 다시 한 번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승점 삭감 우승, 감격을 반감시키다

 

하루 전날에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순위표상 가장 아래에 놓인 인천 유나이티드와 수원 FC가 맞대결을 펼쳤다. 1대0으로 승리한 인천은 11위에서 10위로 순위가 상승하며 극적으로 K리그 클래식에 잔류했다. 생존에 성공한 인천은 수백 명의 팬들이 그라운드로 뛰어들어 잔류의 기쁨을 표출했다. 반면 지난 시즌 겨울 드라마를 연출하며 1부 리그 승격에 성공했던 수원 FC는 1년 만에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됐다.

 

반전의 순간은 또 기다리고 있었다. 10월8일 열린 K리그 시상식에서는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MVP 선정에서 대이변이 벌어졌다. 1983년 프로축구 출범 이래 우승팀과 준우승팀에서만 나왔던 MVP는 8위를 기록한 광주 FC의 공격수 정조국에게 향했다. 지난해 FC 서울에서 11경기에 출전해 단 1골을 넣는 최악의 시즌을 보냈던 정조국은 광주로의 이적이라는 축구 인생을 건 도전에 나섰다. 이후 정조국은 20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올랐다. 그의 활약을 앞세운 광주는 지난 시즌보다 2계단 순위가 오른 8위를 기록했다. 만 32세에 꽃을 피운 정조국의 감동 드라마는 표심을 움직였고 오스마르(서울), 레오나르도(전북) 같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7월2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축구팬들이 K리그 심판 매수 사태를 비판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여기까지만 보면 2016년의 K리그는 스포츠의 가장 큰 명제인 순수하고 정직한 감동으로 포장되는 듯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부끄럽고 참담한 현실의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이슈는 심판 매수 사건이었다. 지난 5월 부산지방검찰청은 2013년에 다섯 차례 심판들에게 뒷돈을 건넨 혐의로 전북의 스카우트 A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결국 9월 부산지방법원은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이미 2015년에도 경남 FC가 수천만원의 금품을 제공하며 심판에게 청탁했던 사건이 터졌던 K리그는 6개월 만에 다시 도덕성 결여의 민낯을 드러냈다. 금액은 경남에 비해 적었지만 K리그 흥행과 경기력을 주도하는 대표 구단 전북의 부정이었기에 충격은 더 컸다.

 

팬들의 분노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프로축구연맹은 전북에 승점 9점 삭감과 벌금 1억원의 징계를 내렸다. 승점 삭감을 시즌 중 곧바로 적용하며 순위 경쟁을 인위적으로 치열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북은 징계 전까지 시즌 무패를 질주하며 2위 서울에 무려 승점 14점이나 앞서 있어 우승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2013년에 벌어진 문제에 대한 승점 삭감을 3년이 지나 진행 중인 시즌에 적용한 연맹의 무리수는 서울의 찜찜한 역전 우승으로 이어졌다.

 

K리그의 우울한 자화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주 유나이티드와 전남 드래곤즈는 정규 라운드 33경기 종료 후 상위 6개팀이 진출하는 스플릿 그룹A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독을 교체해야 했다. 조성환 제주 감독과 노상래 전남 감독은 갑자기 수석코치로 강등됐다. 상위 스플릿 진출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AFC가 요구하는 P급 지도자 자격증을 두 감독이 소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해당 구단들은 사실상 선수단 운영 권한을 전임 감독인 수석코치에게 맡기고, 이름만 감독인 지도자를 위에 앉히는 ‘바지 감독 사태’를 일으켰다.

 

구단 운영을 위한 재정 조달의 대부분을 지방자치단체에 의존하는 시민구단들의 임금 체불 사태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인천 유나이티드와 광주 FC는 시즌 중, 그리고 시즌 말미에 예산이 바닥나 지자체장과 지역 기업에 읍소해야 했다. 강원 FC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비리 문제가 잡음을 일으켰고 현직 직원을 배임·횡령 의혹으로 형사고발했다. 9월에는 상주종합운동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상주 상무와 인천의 경기가 그라운드 상태 불량으로 경기 시작 3시간을 남기고 연기되는 프로답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성적 부진에 팬들은 소속팀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고 감독과 선수를 힐난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전남·인천·포항·수원·울산 등 다수의 팀은 경기 후 고개를 숙여야 했다. 성남의 구상범 감독대행은 리그 최종전에서 패해 승강 플레이오프로 떨어지자 팬들 앞에서 무릎을 꿇기도 했다.

 

 

내우외환, 주변 리그 발전에 위축되는 K리그

 

문제는 리그 안에만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주변 국가 프로축구 리그의 빠른 성장은 K리그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대대적 관심 속에 ‘축구 굴기’를 국가 정책으로 격상시킨 중국 슈퍼리그는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거대한 내수 시장을 앞세운 중국은 올 시즌 중계권과 스폰서 수입으로 15억 위안(약 2540억원)을 벌었다. 슈퍼리그 각 구단은 평균 101억원가량의 배당금을 챙기며 다음 시즌 더 큰 투자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일본 J리그는 해외시장을 선점하며 슈퍼리그와의 경쟁에 나섰다. 영국의 미디어그룹 퍼퓸과 10년간 2100억 엔(약 2조3000억원)에 달하는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J리그는 2017년부터 우승상금을 현재 1억 엔에서 3억 엔(약 33억원)으로 올리고 각 구단에 대한 배당금도 늘릴 계획이다. 우승팀은 약 160억원의 수입을 거둘 수 있다.

 

K리그 클래식의 2016년 우승상금은 5억원에 불과했다. 내년에도 증대될 가능성은 요원하다. K리그 중계권은 수년째 60억원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각 팀들은 배당금은커녕 자신들이 중계사에 제작 지원금을 내며 중계를 유치하는 형국이다. K리그는 슈퍼리그와 J리그로 선수를 팔며 근근이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팬들은 국가대표팀 핵심 선수들의 중국 진출에 반대하며 강력히 비판하고 있지만 시장 규모 면에서 이미 쏠린 무게를 막을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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