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탱크병 출신이니 탱크도면 구해달라” 검찰의 공안 수사, 의문투성이 제보 논란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11.1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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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 근거 된 제보에 담긴 내용 의문 많아
ⓒ 시사저널 임준선·디지털뉴스팀 편집

 

“탱크병 출신이니 탱크도면을 구해 달라.”

군복무를 마친 지 수십 년 된 이에게 대뜸 이런 요청을 하는 북한 공작원이 있을까. 공안당국이 위와 같은 유형의 의문투성이 제보를 근거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를 기소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2016년 11월9일자 "[단독] 실체 없는 北 공작원...무리한 공안 수사 논란" 기사 바로가기)

 

사건은 2014년 말부터 시작된다. 한 사업가가 “사업가 두 사람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수사당국에 제보했다. 제보자가 지목한 이는 한국인 한아무개(59)씨와 김아무개(47)씨다. 수사당국은 “한씨와 김씨가 북한 공작원의 요청을 받고 기밀자료와 군용 타이어를 빼돌리려 했다”며 2016년 8월 한씨와 김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이 사건 수사의 근거가 된 제보 내용을 보면 북한 공작원으로 지목된 ‘윤아무개씨’의 행동은 의문이 많다. 윤씨는 피고인에게 “타이어와 군 기밀 자료를 달라”는 말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했다. 그가 피고인들과 ‘회합(會合)’하며 논의한 곳은 식당, 다방 등으로 돼 있다. 

 

또 윤씨는 피고인과 만나며 범행과 상관없는 인물의 동석을 허용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장경욱 변호사를 비롯한 변호인 측은 “해당 북한 공작원은 21년 간 활동했다는 베테랑 공작원의 행위로 보기에는 상식에 반한다”고 말했다. 제보자․한씨․김씨․북한 공작원 윤씨를 모두 아는 지인은 이 재판 2차 공판에 출석해 “피고인 한씨와 김씨가 그런 군 기밀자료를 취급한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윤씨가 한씨와 김씨에게 군 기밀 자료를 구해달라고 하게 된 이유도 상식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 그 이유가 ‘특정 군부대에 복무했다’는 이유에서다. 제보자는 10월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판사 심담)의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북한 공작원이 한씨에게 탱크병 출신이니 탱크도면을 구해달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또 제보자에 따르면, 북한 공작원은 제보자에게도 “‘해군출신’이니 ‘소냐음파탐지기’ 자료를 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제보자는 “피고인들이 미군부대를 출입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잘 구할 수 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변호인 측은 이 사건 제보자에게 “탱크병 출신이면 탱크 설계도면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피고인들은 윤씨(북한 공작원이라고 제보자가 주장하는 사람)의 ‘탱크도면’ 요청에 진지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정황이 있다. 제보자 본인이 녹취한 대화내용은 이렇다.

 

제보자: 전에 얘기한 거, 탱크자료 (윤씨에게)주려고 한 거 그거는 줬소?

한씨: 탱크자료가 있어야 주는 거죠. 

제보자: 김씨(또 다른 피고인)보고 그때 이야기했다며?

한씨:김씨에게도 얘기했는데, 김씨가 형님 무슨 탱크 이야기합니까. 알류미늄 탱크라고 하는데. 자기(윤씨)도 확실히 모르면서 자료를 내놓으라고….

 

설득력 떨어지는 제보…서둘러 수사 끝낸 당국

 

제보자는 2012년 또 다른 국가보안법 사건을 제보한 적이 있다. 이 사건 또한 이번 사건과 판박이였다. 제보자는 당시 “이아무개씨(74)가 중국 단둥에서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아 군사기밀을 입수해 전달하려 했다(국가보안법상 간첩혐의)”고 제보했다. 당시 제보자 본인도 이씨와 함께 2012년 6월 기소됐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도 지령을 내렸다는 ‘북한 공작원’의 실체가 불분명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제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제보자의 제보에 따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 대해 2016년 ‘무죄’를 확정했다. 장 변호사는 당시 사건에 대해 “사건 제보자가 북한을 드나들며 국가정보원이 요청하는 정보나 자료를 촬영해 제공했다는 취지로 당시 재판과정에서 주장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제보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스스로 국정원과의 관계를 인정한 셈이 된다.

 

게다가 사건 기록을 보면 제보자가 피고인들을 수사기관에 제보한 것은 2014년 12월이다. 하지만 제보자는 제보 후인 2015년에도 자신이 ‘북한 공작원’이라고 제보한 윤씨를 만났다. 또 제보자는 2014년 12월부터 약 9개월 간 최소 18차례 수사당국에 진술을 했다. 

 

앞서 시사저널은 이 사건에 등장하는 ‘북한 공작원’의 신분증이 위조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엉터리 제보․북한 정찰총국 간부의 불분명한 정체 등으로 인해 사건 수사 전반에 대한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사건을 맡은 검찰 관계자는 “재판 중인 사안이라 언급하기 곤란하다”면서도 “증명한 증거자료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제보자의 말대로 수사를 하고 검증했다”면서 “제보자가 이전에 제보한 내용도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지 혐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제보자도 “피고인 한씨가 윤씨를 (나에게) ‘북한 공작원’이라고 소개했다”면서 “(북한공작원) 윤씨는 한국 사람을 혼자서 스스럼없이 만나러 온다거나 한국 사람과 스스럼없이 마작을 하는 점에서 이전에 알고 있던 북한 사람들과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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