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이후 내놓은 홍상수 감독의 신작
  • 허남웅 영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11 14:33
  • 호수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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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주변에 현혹되지 말고 둘만의 관계에 집중하며 더 좋은 관계로 나아가자는 메시지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한 장면 © ㈜영화제작전원사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다. 이 문장에서 방점은 ‘홍상수’다. 지금 세간의 관심은 홍상수의 신작보다 홍상수 자신에게 모인다. 얼마 전 여배우 김민희와의 스캔들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는 문제의 스캔들과 관련해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극 중 여주인공의 이름에 ‘민’이 들어간다는 정도. 그러니까, 별로 관련이 없다는 얘기다.

 

 

‘민’자 들어간 민정이란 이름 여주인공 등장

 

영수(김주혁)는 화가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근데 영수의 마음은 다른 데 가 있다. 친구 중행(김의성)으로부터 여자친구 민정(이유영)이 술을 마시다가 어떤 남자와 싸움에 연루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다. 영수는 술을 너무 좋아하는 민정에게 술 좀 줄이라며 약속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를 깬 그녀가 괘씸하다. 민정이 집에 들어오자 영수는 추궁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단호하다. 절대 술 마시지 않았고 부끄러운 일 한 적 없다며 영수와 대립각을 세운다. 그러다 민정은 선언한다. 우리 당분간 떨어져 지내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이 재미난 건 이 지점부터다. 영수와 헤어진 후, 우리가 민정으로 알고 있는 그녀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남자들이 차례로 접근한다. “민정씨 여기서 뭐하세요?” “저 민정이 아닌데요.” “민정씨 맞는데.” “민정이 아니라니까요.” 실랑이를 벌이다 그중 한 남자인 재영(권해효)에게 이렇게 실토한다. “사실 쌍둥이 언니가 있는데 저와 착각하신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러거나 말거나 민정으로 보이는 그녀는 카페에서 만난 남자들과 차례로 안면을 튼 후 술을 마시러 간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녀가 민정이라는 자신의 정체를 숨겨가며 여러 남자를 만나는 ‘문란한’ 연애 이력의 소유자라고? 안 그래도 영수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을 비난하며 영수의 처지를 안타까워한다. 다만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이 홍상수의 영화라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이런 식의 전개가 얼마나 게으른 것인지 ‘당신자신’의 빈약한 상상력을 거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홍상수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다.

 

지금 한창 뜨고 있는 연남동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 속 동선은 비교적 좁은 편이다. 영수의 집과 민정의 집이 위치한 골목과 민정이라는 이름의 여인으로 인식되는 그녀가 자주 찾는 카페와 술집, 그리고 ‘연트럴파크’로 불리는 연남동 경의선 숲길 일부가 전부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동네 사람들에게 시시각각 목격되고 종종 영수에게로 전달된다. 영수의 반응은?

 

지인의 얘기를 듣고 그 즉시 민정이 다른 남자와 만나는 현장을 습격할 법도 한데, 영화는 굳이 그런 장면에 상영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떠난 현장에 뒤늦게 찾아와 다시금 민정의 발자취를 찾아서 방황하는 식이다. 그러다가 영화의 말미에 그녀를 찾은 영수는 민정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과의 말을 전한다. 그녀의 반응은? “민정이가 누구예요?”

 

민정과의 문제에 앞서 영수를 괴롭히는 건 주변 사람들의 그녀에 대한 평가다. 중행이 대표적이다. 그는 영수에게 민정과 만나는 것이 의외라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과 만나 걱정스럽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전한다. 그러면서 “아, 뭐 나야 모르지. 내가 직접 본 건 아니니까”라고 말하며 다른 남자와 싸웠다는 민정의 소식을 전한다. 중행이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니 신빙성은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영수의 입장은 좀 다르다. 자신의 여자가 관계된 이야기이니 의심이 피어날 수밖에 없는 거다.

 

이에 대한 민정의 반응은 한결같다. “저 자신한테 수치스러운 짓 한 적 한 번도 없고요!” 그렇다면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민정으로 추정되는 여인이 영수가 아닌 다른 남자들과 술을 마시는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말로 그녀는 민정이 아닌 걸까? 도대체 영화 초반 영수와 다투던 민정이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어쩌면 민정 혹은 민정으로 오인하는 그녀는 상상의 존재가 아닐까?

 

민정과 헤어진 후 영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의 집을 찾는다. 그럴 때마다 민정은 영수를 반갑게 맞아주던가, 또는 집으로 들여 그간의 아쉬움을 털고 재회를 약속한다. 이 둘에게는 잘된 게 아닌가? 아니다. 이는 오로지 영수의 상상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다. 관객이 이와 같은 장면에서 잠시 착각에 빠지는 이유는, 영화가 현실과 상상의 톤을 전혀 구별하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까닭이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영수가 중행으로부터 민정의 부정적인 평가를 들은 후 이어지는 장면들의 편집이 예사롭지 않다. 민정으로 불렸던 그녀가 재영을 만난 에피소드 이후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영수의 모습이 곧바로 이어진다. 어쩌면 영수는 중행의 말을 듣고는 민정이 자신과 헤어진 후 다른 남자와 벌이는 최악의 상황을 비몽사몽간 상상했을지 모른다. 민정이 돌아오자 잠에서 깬 영수가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했던 배경이었을 터다. 요컨대, 영화 초반 민정을 놓고 벌인 영수와 중행의 논쟁 이후 민정이 다른 남자들과 갖는 술자리는 사실이 아닌 영수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심경이라고 이해해도 괜찮을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다른 남자들을 돌고 돌아 영수와 재회한 그녀는 영수의 집으로 향한다. 그때 둘이 함께 침대에 누운 구도는 영화 초반 영수와 민정이 말다툼하는 구도와 똑같다. 이번만큼은 싸우는 대신 서로에 대한 신뢰를 드러낸다. 영수는 말한다. “당신이 너무 좋아서 당신 믿을 겁니다.” 이에 그녀는 이렇게 화답한다. “고마워요, 당신이 당신인 게.” 주변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둘만의 관계에 집중하며 더 좋은 관계로 나아가자는 것. 영수와 민정(?)이 장고(長考) 끝에 내린 현명한 결론이다.

 

홍상수 감독 © 뉴스뱅크 이미지

우리가 사는 현실이 마냥 현실인 적이 있었던가. 우리의 삶은 늘 현실을 초월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마법이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처럼 홍상수의 영화는 현실의 여러 면을 재창조해 마법의 순간을 선사한다. 그래도 홍상수의 영화보다 홍상수의 스캔들에 더 관심이 있다면 한 가지 솔깃한 정보가 있다. 홍상수의 다음 영화에는 ‘그녀’가 출연한다. 이 정도면 조금 만족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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