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파문’ 바라보는 중국의 시선과 속내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08 15:47
  • 호수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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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 지연될까 바다 건너 불구경
중국 언론은 한국의 ‘최순실 파문’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만 바라보고 국가와 결혼했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부정비리를 저질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중국 충칭(重慶)시에 사는 런징(여·28)은 ‘박 큰언니(朴大姐)’의 열성팬이다. 런은 필자에게 “최순실이라는 여자 절친(閨蜜)이 박 큰언니를 지배하고 조정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박 대통령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2013년 2월. 당시 박 대통령의 취임을 전후해 중국 인터넷에서는 ‘박근혜는 왜 결혼하지 않았는가’라는 글이 나돌았다. 그 글은 한 중국 네티즌이 박 대통령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絶望鍛鍊了我》(이하 《절망은…》)의 내용과 2012년 후보 경선 및 대통령선거의 상황을 축약해 묘사했다. 특히 경선에서 박 대통령이 했던 말이 런의 마음을 울렸다.

 

‘나는 부모가 없고, 남편이 없으며, 자녀도 없다. 국가는 내가 유일하게 희망을 갖고 봉사하는 대상이다.’ 

런은 “그 구절에 감동받아 자서전을 사서 봤다”고 밝혔다. 

 

 

중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한국 대통령

 

중국에는 런 이외에도 박 대통령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이는 한국 정치인들 가운데에서 박 대통령의 자서전과 관련 서적이 가장 많이 출판됐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2013년 3월 《박근혜의 인생(絶望創造希望)》, 5월 《절망은…》, 6월 《박근혜 일기》, 2014년 3월 《나는 독신을 꿈꾸지 않았다(孤獨的領導力)》 등 6권이 출간됐다. 이중 《절망은…》은 출판된 이래 전기(傳記) 분야에서 꾸준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켜왔다. 중국 최대 온라인서점인 당당(當當)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2014년 전기 서적 판매에서 2위를 기록했다. 2015년 3월 이린(譯林)출판사는 “61만 권이 판매됐다”고 밝혔다. 《절망은…》의 인기는 사드(THAAD) 배치 문제로 한·중 관계가 냉각된 최근까지 계속됐다. 11월2일까지 당당에 달린 독자 댓글은 12만1780건. 그중 12만1219건이 호평으로 무려 99.5%에 달한다. 10월13일에는 한 네티즌이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겼다.

 

‘강인함과 검소함, 부지런함과 자율. 박근혜의 어머니는 진정한 귀족교육을 가르쳤다. 양친이 돌아가신 뒤 자신의 민족에게서 냉대를 당했지만, 의연하게 정계로 되돌아왔다. 또한 일생을 자신의 국가를 위해서 헌신했다. 한국인들은 정말 복 받았다. 이 책은 모든 중국 여성들이 읽어야 하고, 그의 숭고한 품격을 본받아야 한다.’

 

작년 9월 중국이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념해 거행한 전승절에 박 대통령을 모시려고 공을 들인 것은 이런 중국 내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 당시 박 대통령은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위 망루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및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지켜봤다. 한·중 관계의 친밀도가 최고조에 달한 순간이었다. 이 전승절을 전후해 중국 SNS에서는 ‘박 큰언니’ ‘박 큰누나’를 칭송하는 글과 문장이 넘쳐났다.

 

이 시기 중국인들이 무엇보다 주목했던 점은 시 주석과 박 대통령의 인생역정이다. 시 주석은 중국공산당 8대 원로 중 한 명인 시중쉰(習仲勳)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으나, 1962년 시중쉰이 반당분자로 몰리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오랜 세월 동안 농촌을 전전하다가 문혁이 끝날 무렵에야 칭화(淸華)대학에 입학했다. 박 대통령이 유신 시절 공주와 영부인처럼 지내다, 아버지가 시해당한 뒤 청와대에서 나와야 했던 과거가 시 주석의 행적과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베이징 외교가의 전언에 따르면, 시 주석은 자신과 같은 태자당(太子黨) 출신에 나이가 한 살 많은 박 대통령에게 깊은 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한·중 관계는 시들해졌고, 사드 배치 이후에는 냉랭해졌다. 최근 중국 정부가 취해 온 일련의 보복조치는 시 주석의 지시로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바라보는 태도는 남다르다. 10월26일부터 환구시보(環球時報), 신경보(新京報) 등 주요 신문은 국제면 톱뉴스로 최순실 사태를 보도했다. 중국 국영 CCTV도 최순실 사태를 주요 뉴스로 다루며 한국 정치제도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인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청와대를 관광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 대통령 호칭 ‘큰 언니’서 ‘아줌마’로

 

특히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환구시보는 한 자국 학자의 발언을 빌려 “박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최근 2년간 충동적이고 감정에 좌우되는 경향을 보였는데 최순실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또한 영화 《광해》 《내부자들》과 드라마 《밀회》가 최순실의 행위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과 유사하다고 소개했다. 언론매체의 보도 덕분에 중국인들도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자세히 알게 됐다. 이에 런징처럼 극도의 실망감을 표출하는가 하면, 박 대통령의 호칭이 ‘큰언니’에서 ‘아줌마(大媽)’로 바뀌었다.

중국 언론의 이런 적극적인 보도 행태는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의 탄핵 정국과 대비된다. 중국 언론은 호세프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 상황을 단신으로 짧게 보도했다. 이는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촉발돼 중동 및 북아프리카로 확산된 ‘아랍의 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반해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분노한 한국인들의 촛불시위와 시국선언에 대해서는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외국의 반정부 시위 양상을 최대한 축소 보도했던 중국 언론의 전례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한국 정국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언론의 기사 문맥에 그 해답이 있다. 지난 1일 인터넷매체 펑파이(澎湃)는 한 전문가의 말을 빌려 “한국이 최순실 사태를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사드 배치를 지연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하루 전날 관찰자망(觀察者網)도 루인(鹿音) 국방대학 부교수의 분석을 인용해 “이 사건이 사드 배치를 철회할 순 없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국 정부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런 기류를 등에 업어 중국은 도발적인 자세로 나오고 있다. 1일 저녁 우리 해경은 인천 해역에서 불법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 2척을 나포하면서 M60 기관총 600여 발을 발사했다. 다른 중국 어선 30척이 몰려들어 선체를 충돌하는 등 방해했기 때문이다. 이튿날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이 무력을 사용해 폭력적인 법 집행을 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한다”고 말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중국의 바람대로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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