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에 비해 한국 전문가 턱없이 부족
  • 미국 워싱턴DC·뉴욕=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11.02 09:42
  • 호수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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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한국학 현장을 가다-③] 르포│한국학의 또 다른 지평 ‘정책연구소’

9월14일 미국 워싱턴DC 의회 하원 외교위원회 회의장 증언석에 회색 머리의 한 남성이 앉았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학 교수였다. 9월9일 북한이 단행한 5차 핵실험에 따른 한반도 정세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을 듣는 이 장소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워싱턴 외교·안보 라인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이 올라감에 따라 세계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 커져가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지역학으로서 한국학은 주로 학문적 영역에 국한돼 논의됐으며 대중에게도 그렇게 인식돼 왔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이해와 전문적 지식을 가진 학자들을 배출해 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한국학의 목표는 한국을 이해하는 대중의 저변을 넓히는 것이다.

 

정책연구소는 학문적 영역과 더불어 한국학의 주요 축을 이루며 역사의 궤도 속에서 한국이 경험한 것을 현실 영역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에 확대 적용하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학계와 현실 영역 잇는 징검다리

 

이 과정에서 정책연구소는 세계 각국 정부와 한국 정부의 관계 속에서 유의미한 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학계에서 한국에 대한 외부의 요구에 반응해 분석을 제시하고, 이를 현실 영역에서 정책으로까지 이어주는 것이다.

 

스캇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CFR) 아시아연구 소장은 “정부 관료들은 시간이 부족하고 국내 정치에 묶여 있기 때문에 그들이 말할 수 있는 것에 제약이 있다”며 “여론을 살피며 균형 잡힌 시각으로 공식적인 답변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정책적 접근과 학문적 접근의 차이는 한국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영역에 한국을 꾸준히 노출시키고 그 콘택트 포인트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역학으로서 한국을 다루는 정책연구소는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국내외에 산재해 있다. 한국 정부는 KF(한국국제교류재단)를 통해 한국학 정책연구를 지원한다. 2015년 현재 KF는 세계 26개국 총 116개 연구소의 한국 관련 정책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사람·돈 부족이 가장 큰 과제

 

“한국에 대해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정책적 제언을 해 줄 수 있는 ‘한국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애널리스트가 한반도와 관련한 거의 모든 영역을 커버해야 한다. 내가 여러 가지에 다 관심을 가지고 다 다뤄야 하는 상황이다.”

스나이더 소장의 이 같은 말은 현재 한국학이 겪는 어려움을 짚어내고 있다. 한국을 다루는 정책연구소에서 가장 큰 과제는 인력과 자금 두 가지다. 이 둘은 거시적인 한국학의 존속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오랜 투자와 재투자를 통해 지속 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에선 여전히 한국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한국의 최근 이슈를 다룰 전문가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이시연 KF 워싱턴DC지소장은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인문학 위주로 한국학을 지원해 왔다”며 “학문적 배경과 실무 경험을 겸비한 한국학 정책전문가군(群)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해외 학계의 한국학 연구는 문학·역사·철학 등 인문학 영역에 집중돼 왔다. 현실세계에서 한국에 대한 세계의 궁금증은 이런 영역과는 조금 다르다. 북한·핵·민주화·재벌 등 현대의 이슈에 대한 수요가 더 많다. 빅터 차 교수는 “한국학계와 현실세계의 수요 사이에 괴리가 존재한다”며 “학계와 정부 양측이 모두 이 부분에 대한 폭을 넓혀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같은 괴리는 지원 규모와 범위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부분이 많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한국 기업의 한국학 지원 늘려야

 

자금 해외 한국학 연구자들이 부딪히는 또 다른 어려움은 동아시아 지역학으로서 한국학은 늘 일본학과 중국학에 뒤처져 있다는 점이다. 박태균 서울대 교수는 “지역학으로서 한국학에 대한 수요는 ‘한국’이란 국가의 세계 경쟁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무엇이 먼저냐를 따지긴 힘들지만 한국학에 대한 외부의 수요에서 밀리기 때문에 한국학에 대한 대대적 지원이 이뤄지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또 애초에 지원이 약했기 때문에 한국학이 성장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스나이더 CFR 소장은 “정부의 지원만으론 한계가 있다”며 한국 기업의 한국학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자국 지역학 발전은 해당 국가에 대한 세계적 인지도와 이해도를 높이게 되고, 이는 결국 해당 국가에 기반을 둔 기업이 경제활동을 하는 데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조한다. 실제로 일본은 혼다·미쓰비시 등과 같은 일본에 뿌리를 둔 대기업 차원에서 일본학 연구 인프라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최근 일본 미디어와 애널리스트들이 입을 모아 ‘외교관계에 있어 한국이 친(親)중국으로 기울고 있다’며 대대적으로 우려를 쏟아낸 적이 있다. 당시 워싱턴DC에선 그들의 주장이 이곳 일본학 전문가들의 말과 글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며 한·미·일 관계에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의 정확한 상황을 설명해 줄 한국 전문가들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시적인 여론 조성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각국 정부 및 의회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전문가적 시각이 필요할 경우 가장 쉽게 찾는 곳이 해당 국가를 다루는 정책연구소다. 스나이더 소장은 “일본은 2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일본학 정책연구소의 발전에 투자해 왔다. 이로써 일본에 조금은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며 한국학 정책연구소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세계 한국학 현장을 가다-④] 인터뷰│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한국석좌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세계 한국학 현장을 가다-⑤] 미국 아시아정책연구소(NBR) 리처드 엘링스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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