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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미신 믿지 말고 노동당 믿어라”

김정은 체제 北 주민들 사이에 번지는 미신과 주술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01(화) 08:42:40 | 14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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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최근 점(占)을 치거나 사주팔자를 보는 등 미신 행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일반 주민뿐 아니라 고위 당 간부까지 깊이 빠져들고 있고, 색출을 맡은 공안기관 책임자들까지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는 전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대로 된 단속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 지도부가 애를 태우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북한 권력 핵심부에서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반감 표출로 이어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8월말~9월초 터진 큰 수해로 민심이 흉흉한 함경북도 북부 두만강 유역에서는 얼마 전 미신 행위에 대한 대대적 단속이 벌어졌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폭압정치로 인해 조만간 대량학살이 일어날 것이란 예언을 한 역술인이 체포되는 등 홍역을 치르고 있다는 게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의 보도다. 이에 따르면, 함북 무산에서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보위성(옛 보위부) 요원들이 점쟁이 4명과 주민 40여 명을 불순분자로 간주해 체포했다. 이들은 “2017년은 붉은 닭띠 해로, 김정은이 피의 숙청을 벌일 것”이라며 큰 인명피해를 예고했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왼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1년 2월14일 밤 평양 목란관 만찬에서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문 서명에 앞서 맞잡은 손을 들어올려 참석자들의 박수에 답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국가안전보위성, 점쟁이 4명 체포”

 

탈북자 단체인 NK지식인연대는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북한 내부 실태에 대해 주기적으로 공개 브리핑을 해 온 이 단체는 북한의 미신 행위가 도를 넘고 있다고 진단한다. 주민들은 결혼이나 이사 날짜를 잡을 때 이른바 손이 없는 날을 따진다. 또 장사를 시작하거나 자녀를 대학이나 군대에 보낼 때도 점을 친다. 노동당이나 군부 간부들이 승진이나 보직 변경을 할 때도 점집을 찾는다. 심지어 인민보안성(경찰)이 도둑을 잡는 데도 점을 쳐서 범인을 가려내거나 추적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진다는 것이다.

 

탈북자와 관련 단체의 주장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도 북한 내에서 미신 행위가 성행하고 있다는 첩보를 수시로 접하고 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도 국회 정보위 보고 등을 통해 이런 동향을 알리고 있다. 평양의 식당에는 ‘福(복)’자 모양을 한 조명등이 등장하고, 장사가 잘되게 한다면서 부적을 곳곳에 붙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미신 행위는 엄격히 단속된다. 마약이나 성매매와 함께 부르주아 황색바람의 3대 악(惡)으로까지 간주될 정도다. 공안기관에서는 ‘전 사회적으로 미신 행위를 없애기 위한 투쟁을 강도 높게 벌여나가자’는 등의 군중 강연 자료를 발간해 사상교육을 대대적으로 벌인다. 또 주민들에게 “미신을 믿지 말고 노동당을 믿으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미신 행위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 속에 주술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조선 왕정과 일제 식민지를 거친 뒤 곧바로 봉건적 수령제 사회로 접어들면서 미신 행위에 의존하는 관습이 좀체 사라지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종교를 철저히 탄압하다 보니 주술 쪽으로 관심이 쏠린 게 아니냐는 진단도 있다. 한 탈북인사는 “김정일 집권 시기 노동당 중앙위에 점을 보는 70대 할머니가 상주한 적도 있었다”고 귀띔한다. 관상을 본 뒤 불만을 품거나 배반을 할 것 같다고 판단되는 간부들을 색출하는 일을 맡았다는 것이다.

 

권력 핵심부가 중대한 택일을 미신에 의존해 결정한 사례도 있어 관심을 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한 노동당의 김용순 대남 비서는 “북쪽에서는 ‘죽을 사’(死) 자를 싫어하니까 14일이 아닌 15일자로 하자”며 6·15 공동선언 날짜를 실제보다 하루 뒤로 기록하자는 제안을 했다. 회담에 깊이 관여했던 정부 당국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문에 서명한 시각은 6월14일 오후 11시30분이지만, 김용순이 ‘30분만 있으면 15일인 데다 숫자(4)가 마음에 걸리니 피하자’고 주장해 6·15 공동선언이 됐다”고 설명했다. 숫자 ‘4’를 곧 ‘죽을 사(死)’로 불길하게 여기는 미신이 작용한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공개처형이나 숙청·강등 등으로 노동당과 군부의 간부들이 자리 보전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도 미신이 성행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조카에 의해 무참히 처형되는 걸 지켜본 뒤에는 관운이나 생명줄을 궁금해하는 일이 늘었다고 한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커졌고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 당국은 올해 9월초 발생한 수해 지역에서 대대적인 미신 단속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AP 연합


권력 핵심부, 중대한 택일 미신 의존 결정 

 

최근 들어서는 자식 교육이나 직장배치·혼사 등과 관련해 미래를 점치려는 쪽으로 트렌드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경우 점쟁이들은 “말로 먹고살지, 글로 살아갈지, 아니면 손재주로 생활해 나갈지 들여다보자”며 점괘를 내놓는다고 한다. 복채는 대개 3달러 안팎을 받는다고 한다. 농촌에서는 쌀이나 보리·콩 같은 곡물로 대신 내는 경우가 있다. 올해 초 청진시에서는 함북도당 간부가 무당에게 300달러를 주고 점을 본 사실이 발각돼 철직(파면)과 함께 추방 조치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미신 행위에도 한류 바람이 불어 닥쳤다는 탈북자 증언도 있다. 남한의 TV드라마나 영화 등을 접한 젊은 층이나 신세대들은 직업이나 연애운, 궁합을 보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최근에는 남한에서 발간된 점괘 관련 서적이나 주역·명리학 책을 북한에 몰래 들여가 표지를 뜯어내고 내용만 공부해 인기를 끄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남한에서도 김정은과 북한체제의 명운을 관상학이나 점술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한 전문가는 김정은 얼굴이 사자상을 하고 있어 권력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코 아랫부분이 전형적인 복어상을 하고 있어 불운한 결과를 맞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또 ‘평양 김씨 정권의 명운은 72년 정도’란 결론이 나온다는 걸 토대로 북한 체제의 종착점이 다가왔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올해 벽두부터 무모한 핵·미사일 도발 행보를 해 온 김정은을 두고 평양은 물론 서울에서도 흉흉한 예언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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