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천 前 청와대 행정관이 밝힌 ‘불통 청와대’ 실상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6.10.31 10:02
  • 호수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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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 위에 정윤회가 있다”

“절대군주제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로 현재 청와대 시스템은 조선시대만도 못하다.”

최순실씨 국정개입 의혹이 제기되면서 청와대 시스템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봐도 청와대를 비롯한 대한민국 정부 위에 최씨가 군림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씨는 대통령 연설문은 물론이고 인사자료, 외교·안보 기밀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된 온갖 보고서를 열람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부터 붕괴됐다. 대통령 연설문의 경우 초안을 각 실무부서에서 올리면 이를 취합해 비서실 또는 수석회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완성하게 된다. 그러나 최씨는 연설문을 사전 열람한 것은 물론이고 직접 수정까지 했다. 국정 철학과 비전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대통령 연설문이 한 ‘강남 아줌마’의 손에서 좌지우지된 것이다. 역대 어느 정권이나 비선 실세의 월권 논란은 있었지만, 청와대의 공적 시스템이 이처럼 붕괴된 것은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문건 등을 청와대에서 반출한 혐의로 기소된 박관천 전 경정(오른쪽 두 번째)은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로 최순실씨를 지목했다. © 연합뉴스

“최씨 국정농단, 핵심 참모들 도움 없이 불가능”

 

국가권력의 사유화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박 대통령의 개인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씨는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문고리 3인방’ ‘십상시’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몸통으로 여겨져 왔다.이 중 정호성 청와대 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은 최씨의 국정농단 사태에 깊숙이 관여돼 있을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들 3인방은 최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씨의 추천으로 박 대통령을 20여 년간 지근(至近)거리에서 보좌해 왔다.

 

이들을 감시해야 할 청와대 내부 감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정 시스템을 총괄하는 우병우 민정수석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씨가 우 수석의 발탁에 관여했고, 우 수석 역시 문고리 3인방과 막역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집권 초기부터 ‘불통’ 논란에 휩싸였던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이제 ‘구중궁궐’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베일에 싸인 청와대의 실상에 관해서는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경정)의 증언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박 전 경정은 2014년 말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이 터졌을 당시 보고서를 직접 작성한 인물이다. 박 전 경정은 2013년 4월부터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했으며,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 등으로 2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박 전 경정이 수사 과정에서 밝힌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은 최씨가 1위, 정씨가 2위이며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는 말은 현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시사저널은 지난 2014년 3월 최씨와 정씨의 비선 실세 논란이 처음 제기됐을 때 박 전 경정을 단독 인터뷰했다. 박 전 경정은 박근혜 정부 초기였던 2년 전 당시에 이미 “문고리 3인방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다음은 당시 박 전 경정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정호성 청와대 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우병우 민정수석​,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왼쪽부터) © 연합뉴스·뉴시스​·시사저널 이종현

 

문고리 권력이 어떻다는 말인가.

 

“권력은 양쪽에 추가 연결된 막대와 같다. 한쪽으로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문고리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 문고리들을 견제하는 것은 대통령 친인척들이 해 왔다. 예를 들어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육영수 여사가 비서진들을 한번씩 불러서 대통령을 똑바로 보좌하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그런데 현 대통령은 영부인이 해야 할 일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면에서 박지만 회장은 영부인과 맞먹는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박지만 회장이 전면에 나서서 문고리 권력들을 견제해야만 한다. 그런데 문고리들이 박지만 회장을 무척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이다. 굉장히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민정 내부에서도 문고리를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조응천 민정 공직기강비서관과 나밖에 없다. 민정은 옛날로 치면 사헌부와 같다. 문고리들이 사헌부까지 장악하려 들면서 청와대가 문고리에 놀아나고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있지 않은가.

 

“직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민정 내부감찰팀에 있었다. 알다시피 내부감찰은 매우 중요한 자리다. 그런데 민정 내부감찰팀의 직제가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속실 산하로 돼 있다. 그런데 내부감찰팀은 청와대의 권력을 감찰하는 것이다. 부속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직속상관이 부속실장인데 어떻게 제대로 된 감찰을 할 수 있겠는가.”

 

 

문고리 위에는 누가 있는가.

 

“정윤회로 방향을 잡았다면 취재 방향을 잘 잡은 것이다. 내가 민정에 있으면서 오히려 박지만 회장 관련한 얘기는 전혀 들은 바가 없다. 그러나 정윤회 얘기는 심심찮게 들었다. 첫 번째로 정윤회가 안봉근과 이재만을 통해 그림자 권력 행세를 한다고 들었다. 정호성 제1부속실장은 컨트롤이 잘 안 된다고 들었다.”

 

▶[단독 인터뷰] 청와대서 좌천된 박 경정, "정윤회, 이재만·안봉근 통해 그림자 권력 행세" 기사보러가기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월28일 박 대통령이 우병우 민정수석과 문고리 3인방의 경질을 확정하기 전까지 새누리당과 특검 협상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것이다. 또한 야당은 청와대 참모진은 물론 내각의 총사퇴, 대통령의 탈당과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국선언과 집회를 통해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10월25일 1분40초간 476글자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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