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진용 왜 외면하는가? 일본의 양식에 묻지 않을 수 없다”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28 14:29
  • 호수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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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의 진실 다룬 소설 《군함도》 27년 만에 완성한 한수산

지난해 8월 한수산 작가는 일본 나가사키(長崎) 평화공원에 갔다. 그곳에서 ‘나가사키 원폭 사몰자(死沒者) 16만8767명’이라는 공식적인 숫자와 마주한다. 한 작가는 “이 숫자는 해를 거듭하며 늘어날 것이고, 언젠가 그 숫자가 멈출 때 나가사키 피폭자의 비극도 역사와 망각 속으로 침잠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1년이 지난 시점, 한 작가는 일제강점기 시절 하시마섬(端島) 조선인 강제징용과 나가사키 피폭의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군함도》를 완성해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1989년이었다. 거의 30년 동안 이 문제를 파헤치고 골몰해 온 그는 오랜 세월 개작에 개작을 거친 소설을 내놓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한국인 피폭자들이 살아야 했던 비참한 실상과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대두하고 있는 피폭 2·3세의 문제까지, 수면 아래 도사린 얼음덩어리에는 단순하지 않은 수많은 문제점들이 난마처럼 도사리고 있다. 그 배경에 국제질서와 강대국의 논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이 때문에 어떤 주도적인 의사결정도 박탈당한 채 조선인 징용자들과 피폭자들은 야만의 시대를 살아야 했다. 이들은 광복 70년이 지난 오늘까지 모래 위로 내동댕이쳐진 물고기처럼 입을 벌름거리며 여전히 버려져 있다. 젊은 독자들이 이 ‘과거의 진실’에 눈뜨고 그것을 기억하면서 ‘내일의 삶과 역사’를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뎌주신다면,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은 후에 이전의 삶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각성과 성찰을 시작하신다면, 이 작품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영광이 될 것이다.”

한수산 지음창비 펴냄484쪽1만4000원

숱한 자료조사와 현장취재, 수정작업 거쳐

 

1989년 일본에 체류하던 한수산 작가는 도쿄의 한 서점에서 오카 마사하루(岡正治) 목사가 쓴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작은 책 한 권을 만난다. 강제징용과 피폭이 뒤얽힌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감과 함께 취재를 시작한 그는 1990년 여름 나가사키를 거쳐 히로시마(廣島)로 올라가며 다양한 원폭 피해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 후 오카 목사를 만나고 ‘나가사키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멤버들을 만나면서 현장을 샅샅이 뒤지는 취재 여정을 이어갔다. 특히 피해 생존자 서정우씨를 만나 그와 동행 취재하면서 참혹했던 군함도의 숨겨진 역사와 맞닥뜨린다. 군함도 현장을 함께 걸으며 서씨는 ‘여기서 매를 맞고 쓰러졌다’ ‘저기서 너무 배가 고파 울었다’ ‘저 절벽에서 떨어져 죽으려고 했다’고 증언했다. 

 

"나는 저 사람이 열다섯 살에 끌려왔다고 하는데,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인데 그 소년이 그곳까지 끌려가서 그 고생을 하다가 원폭까지 맞고. 저 사람을 누가 저렇게 만들었느냐,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부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멍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한 작가는 소설의 무대인 군함도와 나가사키에만 십여 차례 방문하고, 일본 전역을 비롯해 원폭 실험장소인 미국 캘리포니아·네바다주까지 다녀왔으며, 수많은 관련자들을 인터뷰하는 등 치밀한 현장취재를 거쳤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2003년 대하소설 《까마귀》를 펴냈다. 그 후 작품의 부실을 스스로 통감하고 작품을 보완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 그는 2009년 일본어판 《군함도》를 출간한 뒤 다시 한·일 동시 출간을 목표로 전폭적인 수정작업을 했다.

 

 

“유네스코 등재 군함도, 치부 감추지 말아야”

 

그렇다면 원폭 당시 징용 한국인은 무엇을 했을까? 한수산 작가는 이것이 소설을 완성하는 데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는 아사히신문이 펴낸 《원폭전후》라는 책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원폭전후》는 피폭자들이 증언한 당시 상황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 책을 어렵게 구했는데, 여기서 놀라운 걸 발견했다. 미쓰비시(三菱) 조선소의 간부가 징용 조선인들이 피폭 후에 어떤 일을 했는지 말한 대목이 나온다. 징용 조선인들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구분해서 죽은 사람은 싸놓고, 산 사람 중에 병원에 보낼 사람과 집으로 보낼 사람을 또 구분했다고 한다. 놀라운 얘기다. 주체가 되었다는 것, 이게 내가 소설을 쓰면서 가장 힘이 된 증언이었다. 일본인은 조선인을 버렸다. 그런데 조선인은 마지막까지 인간의 길을 걸었구나, 하는 기쁨이 있었다.”

《군함도》 저자 한수산 작가 © 창비 제공

지난해 일본은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하시마 탄광의 유구(遺構)’라는 이름으로 ‘메이지(明治) 산업혁명 유산’의 하나로 등재했다. 비극 또는 치욕의 현장이 아니라 일본의 자랑거리로 올라간 것이다. 이에 한 작가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인류의 비극도 직시해야 평화를 위한 역사의 교훈을 얻는다’는 선정 정신에 따라 치욕의 역사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인류의 반성과 교훈의 재료가 되어 왔다.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세네갈의 고래섬, 넬슨 만델라 등 수많은 흑인 정치범을 가뒀던 남아공 로벤섬도 그렇다. 이곳들은 그 치부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군함도는 달랐다. 일본은 군함도에서 강제징용 조선인에 대한 ‘가혹한 강제노동이 있었음’을 밝혀야 한다. 이 같은 사실을 명기하고 하시마의 조선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것이 가톨릭 기도문의 구절처럼 ‘마땅하고 옳은 일’임에도 왜 일본은 눈을 돌리는가, 일본의 양식에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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