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종섭의 정치 풍향계] 문재인의 전략적 침묵, 어물쩍 넘어가나
  • 소종섭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25 13:12
  • 호수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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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송민순 회고록’에 모호한 자세…위기관리 능력에 의문 제기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와 관련해서는 ‘대세론’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 대선 주자 중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친(親)문재인’ 후보들이 다수 당선되면서 당내 세력 판도도 문 전 대표에게 더 유리해졌다. 이렇다 보니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대문(이대로 가면 문재인이 후보 된다)’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는 문 전 대표에게 뼈아픈 일격을 가했다. 판도 변화를 말하기는 이르지만 유권자들의 머릿속에 ‘리더로서 문재인의 약점’을 다시금 깊이 각인시켰다. 문 전 대표에 대해 보이지 않는 불안감과 불신이 싹트는 이유다.

 

 

‘리더로서 문재인의 약점’ 다시 각인

 

회고록 파문 정국에서 문 전 대표와 관련해 주목되는 포인트는 세 가지다. 우선 송 전 장관의 기록처럼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북한의 의사를 타진해 보는 것을 실제로 문 전 대표가 결정했느냐다. 만약 문 전 대표가 그런 결정을 했다면 리더로서 그의 판단력에 대해 심각한 문제 제기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당장 대선 가도에 빨간불이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선 당시 참석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 송 전 장관 외 나머지 참석자들은 “이미 기권하기로 결정을 한 상황에서 북한에 통보한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당분간 논란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송 전 장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북한에서 보냈다는 답신, 이른바 ‘쪽지’가 공개된다고 해도 ‘북한에 통보한 것에 대한 반응’이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야당들은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한다며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두 번째는 이번 사안에 대처하는 문 전 대표의 태도다. ‘북한에 물었는가, 통보했는가’ 여부도 중요하지만 국민은 이 부분을 더 주의 깊게 보고 있다. 한마디로 모호하기 그지없다. 문 전 대표는 10월17일 “나는 솔직히 그 사실조차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말했다. 그 다음 날에는 “(회고록과 관련해서) 사실 관계는 지금 나올 만큼 나왔으니까 더 말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결국 나 문재인이 가장 앞서 가니깐, 나 문재인이 두려워서 일어나는 일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기억이 좋은 분들에게 들으세요”라고 말했다.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하지 않았다.

 

당장 새누리당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무책임한 말이다. 당시의 진실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문재인 전 대표는 대통령 후보로 나선 분이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이다. 본인의 입장을 분명히 말씀하셔야 한다”는 나경원 의원의 말이 대표적이다. 새누리당에서만이 아니라 국민의당, 나아가 민주당 내에서도 유력 대선 주자인 문 전 대표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으로서 가부간에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 전 대표가 ‘전략적인 침묵’을 취하고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침묵하면서 새누리당을 강하게 비판함으로써 여권 후보로 나올 것으로 보이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맞서는 야권 대표주자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월20일 서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방문해 발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4월8일 총선을 앞두고 문 전 대표가 광주를 방문해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둔다면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후에 문 전 대표의 행보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총선에서 참패했지만 문 전 대표는 당시에도 자신의 말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 이전에도 문 전 대표의 모호함이 정치권에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2014년 9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현 국민의당 의원)를 영입하려고 할 때다. 영입을 공식 발표하기 하루 전에 박 원내대표와 이 교수, 문재인 의원은 3자 회동을 했다. 박 원내대표 측은 “문 의원이 동의했기 때문에 이 교수 영입을 추진했는데 문 의원이 뒤늦게 ‘반대한다’고 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밝혔다. 반면 문 의원 측은 이 교수를 “비대위원으로 영입하는 것에 찬성했지만 비대위원장으로 영입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같이 만났는데 서로 해석이 달랐던 것이다.

 

이런 사안들은 회고록 파문과 결합되면서 전반적으로 문 전 대표의 위기관리 능력과 메시지 관리 능력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된다면 위기 상황 속에서 과연 제대로 현장을 장악하고 분명하게 정리해 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신이다. 리더로서의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회고록 파문’으로 당장 문 전 대표의 지지층에 큰 변화가 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충성도 높은 지지층을 바탕으로 대선 본선에서 ‘확장성’을 보여줘야 하는 문 전 대표로서는 이번에 분명한 한계를 또 한 번 드러냈다는 점에서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심리학자인 황상민 박사(전 연세대 교수)의 분석이 눈에 띈다. 2012년 펴낸 《정치심리극장》에서 황 박사는 문 전 대표가 대중의 마음속에 ‘남자 박근혜’ 같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을 입은 박근혜 대통령처럼 문 전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광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썼다. ‘문재인·박근혜 모두 후광을 받을 수 있는 뚜렷한 배경은 있지만, 대중이 공감할 만한 뚜렷한 정치적 목표나 입장은 없다는 데에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정치지도자로 활동한다고 해도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또 할 수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떤 주어진 정치적 과제나 시대적 소명이 있다면 그것을 운명처럼 잘 따를 것 같다. 하지만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내서 어떤 일을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문재인, ‘남자 박근혜’ 같다”

 

마지막으로 문 전 대표는 이번 국면을 ‘색깔론’으로 방어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국민 분노는 거의 폭발 지경인데, 새누리당만 과거 10년 전 일에 매달려 색깔론, 종북놀음에 빠져서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면서 “새누리당의 못된 버릇, 이번에 꼭 고쳐놓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를 통해 지지층 결집을 도모하는 것이다. 동시에 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표가 북한과 내통·모의했다”는 식의 발언을 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박명재 사무총장,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을 10월20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모욕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발단은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고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낸 송 전 장관의 회고록에서 시작됐다. 극단적 용어를 써서 공격하는 등에 대해선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새누리당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이른바 ‘NLL 파문(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주장. 나중에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과는 기본 축이 다르다.

 

문 전 대표는 자신에게 쏠리는 눈길을 외면하면서 민생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현안에서 비껴서 대선 행보를 하겠다는 노림수이다. 얼마 전 발표한 ‘국민성장론’에서 보듯 앞으로 ‘경제’를 자신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회고록 파문’ 정국에서 문 전 대표에게 제기된 판단력, 위기관리 능력 등에 대한 의문은 앞으로도 그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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