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같아서는 김종인을 찍어주고 싶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김종인’이란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가리킵니다. ‘찍어주고’ 앞에는 ‘대통령선거에서’가 생략됐습니다. 4월 총선 당시 지리멸렬(支離滅裂)한 민주당을 구해 낸 공이 있고 하니 그런 소리가 나올 법합니다. 물론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죽 쒀준’ 데 따른 반사이익이라는 평가가 압도적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비상대책위 대표로서 기여가 컸다는 데는 이의가 없으니까요.
아무튼 특이한 것은 여기에 보수 지지층이 상당수 끼어 있다는 점입니다. “정략적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껏 한다”는 게 공통된 이유입니다. “그런 ‘야당’이라면 지지할 수 있다”는 ‘꼴보수’까지 있습니다. 그가 후한 점수를 받는 데는 사드(THADD)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국익을 위한 불가피성을 논리적으로 설파한 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듯합니다. 특정인을 치켜세우기 위한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저 세상이 어수룩한 듯해도 똑바로 지켜보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실은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진정한 리더’론이 김 의원 거명의 직접적 배경입니다.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방한 중인 슈뢰더 전 총리는 주최 측인 매경과의 인터뷰에서 “리더는 선거 승리보다 국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누누이 역설했습니다. ‘실업급여 축소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핵심으로 하는 개혁안을 놓고 고뇌하다가 그래도 인기 없는 이 방안을 선택했던 까닭이 국익이었다는 겁니다. 사회민주당 총리였던 그는 때문에 우파 기독민주당의 메르켈 총리에게 정권을 내줬는데 지금 다시 하더라도 같은 결정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뭐 새삼스럽지도 않은 ‘선거 승리보다~’라는 원론적 멘트에 ‘감동 먹는’ 제 자신이 쑥스럽습니다. 하나 이기고 보자며 세계 온갖 곳의 좋다는 정책·제도를 죄다 끌어모아 표 장사를 하는 게 우리 정치판이니 이해가 갈 겁니다. 요즘엔 안보 중시를 표방하면서 사드 반대에 앞장서는 정당이 있질 않나,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중립을 지켜야 할 국회의장이 안 해도 될 얘기로 분란을 일으키더니 9월13일엔 국회 외교위원장이라는 사람이 한 술 더 떴습니다. 이 지경이니 ‘선거에 지더라도 국익을 우선 생각해야~’라는 슈뢰더 유의 충고가 먹힐 리 없을 겁니다. 쇠귀에 경을 읽지. 그래서 더 딱합니다. 사드 얘기가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할까요. “반미 좀 하면 어떠냐”던 노무현 대통령이 서두른 일 가운데 하나가 한·칠레 FTA 비준안과 이라크 파병 동의안 처리였습니다. 왜 그랬는지 짐작하실 겁니다. 뒤늦게 소속 의원과 지지자들 설득하느라 고생이 많았지요.
대선후보들께 당부하고픈 게 있습니다. 정책 개발한다고 교수·전문가 끌어오느라 요란 떨 게 아니라 본인의 국가관부터 다듬었으면 합니다. 어떤 분은 일천 명이나 모았다던데 세 과시용으로 쓰면 되니 그냥 두시면 됩니다. 포퓰리즘인지 ‘표퓰리즘’인지 나라 장래 걱정은 뒷전으로 밀쳐두고 ‘국민 현혹’에 열심인 ‘지도자 아닌 지도자들’의 행보에 질렸었는데 남이라도 그런(국익 우선) 질타를 해 주니 반가워 사설(辭說)이 더 늘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