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반하장' 중국, 서해가 요동친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6.10.19 10:42
  • 호수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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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법 어선 단속, 경찰 아닌 군 투입해야”

“한국 여론이 충동적인 데다 ‘포격’ 허가령까지 내렸다. 이는 한 국가 전체의 민족주의적 집단 발작이다.”

중국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10월7일 중국 불법 조업 어선이 한국 해경정을 들이받아 침몰시킨 사건이 발생한 후 우리 정부가 함포사격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대책을 내놓자, 중국 측에선 오히려 “과잉 단속을 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중국의 몰염치한 대응에 시민사회를 비롯한 정치권에서는 해양주권을 지키기 위해 해양경찰을 부활시키는 등 강력한 공권력 발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중국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중국의 유력 언론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한국 정부 미쳤나’라는 원색적인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환구시보는 한국의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결정 이후 가장 먼저 경제보복을 주장한 매체다.

 

10월7일 서해상에서 불법 조업을 단속하던 인천해양경비안전본부 소속 고속단정이 중국 어선과 충돌해 침몰했다. 사진은 4월 서해상에서 중국 어선을 단속하고 있는 고속단정 ⓒ 연합뉴스

 

中 외교부 “한국 이성적으로 문제 처리해야”

 

‘한국 정부가 중국 어선에 무력을 행사하려 하다니 미친 것이 아니냐. 황해에서 물고기를 잡고 가끔 경계를 넘어가는 중국어민들은 군대가 아니다. 어민들이 경계를 넘어서 어획할 때 중국 사회도 그들을 지지해 주지 않는다. 중국이 어민들을 부추겨 한국을 괴롭히라고 한 적은 없다. 한국 여론은 너무 민감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 우연한 충돌로 보이는데도 한국 언론은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중국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한국 해경이 난폭하게 법을 집행하면 중국 어민은 두려움 때문에 반항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중국 외교부의 겅솽(耿爽) 대변인은 “한국이 양자 관계와 지역 안정의 대국적인 측면에서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관련 문제를 처리하기 바란다”면서 한국 측의 ‘과잉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는 형법 119조에 따라 경찰 선박을 침몰시키면 최고 사형에까지 처하도록 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 사건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2008년 9월 목포해경의 고(故) 박경조 경위는 전남 신안군 해역에서 검문검색을 위해 중국 어선에 올라타는 순간 중국 선원이 휘두른 삽에 맞아 바다에 떨어져 숨졌다. 2011년 12월에는 인천해경 고(故) 이청호 경사가 인천 소청도 해역에서 불법 조업 중국 어선 2척을 단속하던 중 중국 선원이 휘두른 유리 조각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당시 중국 선원은 필로폰을 투약한 상태였다. 올해 6월에는 필로폰을 투약한 중국 선장이 연평도 해상에서 단속을 위해 배에 오른 해경 14명을 태운 채로 북한 해역을 향해 도주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이때마다 유감을 표명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현재 중국 어선은 연평도뿐만 아니라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강화도 교동도 인근까지 몰려와 불법 조업을 일삼고 있다. 중부 해양경비안전본부에 따르면, 서해 북방한계선과 배타적경제수역(EEZ) 인근에 출몰한 중국 어선은 2012년 5만3359척에서 지난해 처음으로 10만 척을 넘어섰다. 올해는 9월까지 5022척이 출몰했는데, 그중 43척을 나포하는 데 그쳤다.

 

중국 측은 한국 언론이 편향된 보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언론 양스왕(央視網)은 “한국 주류 언론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며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후 한국 매체는 “한국 해경의 공권력이 짓밟힌 것”이라며 “중국 어민에 대한 무기 사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매체들이 분노하며 성토하는 이번 사건은 한국 쪽 사상자를 발생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매체들은 9월29일 발생한 3명의 중국 어민이 한국 해경이 투척한 탄약에 의한 화재로 죽은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후속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중국 어선 불법 조업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연평도와 대청도 해역 © 연합뉴스

 

“중국 불법 어선은 해적 수준”

 

중국의 이와 같은 태도는 과거 사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2년 10월 중국 선원이 단속을 하던 해경 대원에게 톱을 휘두르다 해경의 고무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4년 10월에도 극렬히 저항하던 중국 선원이 해경이 쏜 실탄에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때마다 중국 측은 “한국 해경의 폭력적인 법 집행으로 우리 어민이 사망했다”며 강력히 항의한 바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중국 측은 한국 정부가 중국 어선에 함포사격을 할 경우 보복에 나설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중국은 2013년 3월 국무원 기구를 개혁하면서 공안부가 맡던 해경 임무와 농업부 관할의 어업지도 임무, 해관총서의 해상 밀수 단속 등을 해경국에 편입했다. 해경국이 설치되면서 배에 무기를 배치할 수 있어 해상법 집행 능력이 강화됐다. 환구시보는 이를 지적하면서 “함포사격으로 한국은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중국 측은 대등한 반격 권리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한국 해경이 중국 어선을 포격하기 전에 중국 해경의 실력을 가늠해야 할 것이다. 해상법 집행기구가 통합을 거쳐 해경국을 설립한 뒤 중국 해경은 법 집행 효율이 대폭 상승됐다. 한국 정부가 중국 어선에 함포사격을 허락한다면 어업 분쟁을 양국 간 정치적 충돌로 비화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한국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를지 생각을 하고 내린 결정인가.’

그러나 중국 측의 이런 반응은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됐다. 현재 한국은 허가가 없는 어선의 경우 몰수·폐선하고 무허가 어선의 담보금도 최고 2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 조정했으며, 불법 조업한 선박의 선장은 구속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시 외국의 사례처럼 강력한 공권력을 행사해 해양주권을 지켜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인도네시아 해군은 올해 8월 자국의 남중국해 EEZ에서 불법 조업 행위로 나포된 중국 어선 3척 등 외국 어선 71척을 바다에 침몰시켰다. 아르헨티나 해군 역시 지난 3월 불법 조업하는 중국 저인망 어선을 격침했고, 러시아는 2012년 도주하는 중국 어선에 함포와 총기를 발사했다. 정치권에서는 “중국 불법 어선은 해적 수준”이라며 경찰이 아닌 군(軍)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 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이 결국 헛된 말에 그칠 것이라고 코웃음치고 있다. 다음은 환구시보가 중국 해양발전연구센터 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것이다. 

 

9월29일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에서 화재가 발생해 중국 어민 3명이 숨졌다. © 연합뉴스

 

한·중 어업협정 폐기 움직임도 나타나

 

‘한국 해경이 함포를 중국 어선에 대한 대응으로 사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이는 아마 일종의 ‘허장성세(虛張聲勢)’의 발산일 뿐일 것이다. 중·한은 적대국가가 아니므로 외교적 경로로 어업 분쟁을 해결할 것이다.’

중국이 이처럼 강경 일변도의 자세를 보이는 것은 “서해를 분쟁지역화해 매듭짓지 못한 한·중 EEZ 획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1996년 유엔해양법협약에 가입하면서 자국 연안에서 200해리까지 EEZ를 선포했다. 그러나 서해의 폭이 협소해 한·중은 다시 2001년 어업협정을 발효하면서 EEZ가 겹치는 구역을 잠정조치 수역으로 남겨 뒀다. 한·중 양국은 결국 잠정조치 수역에 대한 정확한 영해 획정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중국이 이번 사건을 그 전초전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 측은 “중·한 어업협정의 관련 규정에 따르면, 사건 발생 지점은 어업 활동이 허용된 곳”이라며 “한국 해경이 사건 발생 해역에서 법을 집행하는 활동을 하는 것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중국 어선은 우리나라 관할권 안에서 적발됐고 우리 해경이 사용한 추적권은 유엔 해양법상 허용된 권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이 한·중 어업협정을 파기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환구시보는 “중·한이 해상에 경계선을 긋고 전통 어장을 가른 것이 끊임없는 어업 분쟁을 발생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중 어업협정의 ‘자동 파기 조항’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중 어업협정 16조 3항에는 “2001년 협정을 체결한 지 5년이 지나면 언제라도 1년 전에 서로 통보해 협정을 종료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즉, 중국이 협정을 파기하겠다고 통보하면 협정이 자동 폐기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이 협정을 폐기하면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해양굴기(海洋崛起)’를 주창하고 있는 중국으로 인해 서해가 요동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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