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의 생생토크] 추신수, “내 야구 인생은 등반하는 과정…높은 산 절대 한 번에 오를 수 없다”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10 16:22
  • 호수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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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에서 돌아온 ‘추추트레인’ 추신수 인터뷰… “어떤 시련 찾아와도 포기라는 단어 모를 것”

미국 시간으로 10월6일 오전 9시쯤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34)는 소속팀 감독인 제프 배니스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내용은 단순했다. 야구장에서 잠시 미팅을 갖자는 얘기였다. 그로부터 1시간 후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파크 경기장 감독실에서 배니스터 감독과 추신수가 마주 앉았다.

 

이날은 텍사스 레인저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ALDS(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이 펼쳐지는 상황. 포스트시즌 로스터를 경기 전날까지 발표하지 않았던 배니스터 감독은 추신수에게 1차전에서 9번 자리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고 대부분 팀의 1번 타자로 나섰던 추신수가 6, 7번도 아닌 9번에 배치된 이유가 무엇일까. 또 감독은 왜 추신수에게 9번 타순에 세운 걸 따로 설명하려 들었을까. 이번 호에는 추신수 얘기다.

 

손목 골절수술을 받고 정규시즌 막판 복귀를 위해 연습 중인 추신수 © 이영미 제공

 

“부상으로 시즌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8월16일 상대팀 투수의 공에 왼 손목 골절을 당했던 추신수는 이틀 후 수술을 받았고, 9월 초 실밥을 푼 다음 9월8일 시애틀 원정 동안 수술 후 첫 캐치볼을 시작했다. 부상당한 직후 현지 언론에선 시즌 아웃을 예상했을 정도로 추신수의 손목 상태는 심각했다. 그러나 추신수는 “올 시즌 내 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재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다졌고, 캐치볼을 시작한 이후부턴 재활 과정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급기야 추신수는 정규시즌 막판에 애리조나로 혼자 이동했다.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참가하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경기에 출전해서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이때 기자도 애리조나를 찾았고, 3일 동안 세 차례 경기에 나섰던 추신수를 가까이 지켜볼 수 있었다. 추신수는 매 경기에서 7이닝을 소화했고, 매 이닝 타석에 들어섰다. 정규시즌 경기가 아닌 교육리그였고, 재활을 목적으로 경기에 나선 터라 매 이닝 타석에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3경기에서 15이닝 7안타(1홈런) 4볼넷 1도루를 기록하며 타격감을 회복해 나가던 추신수. 재활 3경기를 마치고 텍사스로 돌아가기 전 추신수는 기자와 많은 얘기를 나누며 속마음을 꺼내 보였다.

 

먼저 그는 자신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재활을 서두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포스트시즌에 뛰고 싶어 재활을 굉장히 빨리 진행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부상 직후 전 이런 생각을 했어요. 2016 시즌을 부상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고요. 즉 부상자 명단에 오른 채 한 시즌을 끝내고 싶지 않았어요. 수술한 부위의 실밥을 풀고 캐치볼을 하면서 느낌이 좋았어요. 가볍게 타격을 하고 송구할 때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더라고요. 잘하면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재활을 더 서둘렀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 모든 건 몸 상태가 괜찮았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에요. 몸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면 이렇게 속도를 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부상당한 선수들은 또 다시 부상을 당하는 데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있다고 한다. 그동안 여러 차례 수술대에 올랐던 추신수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만약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닐까요? 그 또한 경기의 일부분이니까요. 부상당하는 걸 두려워한 나머지 타석에서 내가 해야 할 것을 못한다면 그 또한 문제가 되겠죠.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당해야 하는 거라면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일 것 같아요.”

 

추신수는 부상 이후부터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자신의 목표가 성사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수술받을 당시 담당 의사가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는 데 최소한 8~10주가 걸린다고 했거든요. 그에 비해 지금 2주 정도 회복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저 자신도 놀랐을 정도입니다. 몸은 정신이 지배한다고 하잖아요. 수술 이후부터 계속 마인드 컨트롤을 해준 덕분인지 몸이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텍사스 레인저스는 지난 9월24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확정지었다. 2년 연속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스러운 현장에서 추신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추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 이영미 제공

 

“로스터에 들어가지 못해도 불만 없다”

 

“지난 시즌에는 정규시즌부터 팀 동료들과 함께 땀 흘려 이룬 결과를 만끽한 터라 우승 직후 클럽하우스에서 샴페인 세리머니를 할 때 정말 신나게 춤도 추고 샴페인을 뿌리고 맞으며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한 게 없잖아요. 선수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축하를 주고받는데 그 속에 있는 제 모습이 무척 낯설어 보이더라고요. 어떤 얼굴로 그 파티를 즐겨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정쩡한 모습으로 정신없는 분위기를 지켜보는데 존 대니얼스 단장을 비롯해 코칭스태프, 선수들이 제게 다가와서 ‘포스트시즌에서 함께 뛰길 바란다’는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아, 팀에선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구나 하는 걸 느꼈고, 그들의 반응 속에서 새로운 자신감을 얻기도 했어요.”

추신수는 애리조나 재활 경기를 무사히 마치고 텍사스 홈으로 돌아갔다. 이미 지구 우승을 확정지은 텍사스 레인저스는 탬파베이 레이스와 홈 3연전을 끝으로 정규시즌을 마무리 짓는 상황. 부상에서 복귀한 추신수는 그의 재활 목표대로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 나설 수 있을까.

 

탬파베이와의 1차전은 7번 타순에 배치됐다. 부상에서 막 복귀한 추신수가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길 바라는 배니스터 감독의 배려가 엿보였다. 2차전은 1번으로, 3차전은 2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재활 경기를 제외하고 실질적인 추신수의 복귀전이었던 세 차례의 경기에서 추신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3경기 성적은 12타수 2안타 삼진 2개.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경험 많은 베테랑의 합류를 내심 기대했던 배니스터 감독은 추신수가 타격감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씩 태도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추신수가 합류했을 때만 해도 리드오프로서 추신수의 가치와 커리어에 대해 잔뜩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정작 정규시즌을 마치고 포스트시즌 체제에 돌입하면서부터 배니스터 감독은 기자들과의 인터뷰 때마다 추신수를 거론하며 그의 로스터 합류 여부에 물음표를 달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추신수는 고작 3경기만 뛰었다. 3경기는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부분 중 아주 작은 수치이다. 이 3경기만으로 그가 디비전시리즈 로스터에 바로 포함된다는 건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추신수가 복귀하는 과정에서 타격 코치와 많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경기들의 타격감을 비교해선 안 되겠지만 그가 복귀하는 과정에 중점을 둔다면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 이 부분이 디비전시리즈 로스터 합류 여부의 키 포인트가 될 것이다.”

포스트시즌을 준비하고 있던 추신수는 자신의 로스터 합류 여부가 화제가 되자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올 시즌 4개월가량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기 때문에 구단과 감독이 어떤 결정을 해도 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로스터 포함 여부는 내가 아닌 그들의 몫이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뛸 수 있는 몸을 만들고, 경기 준비를 하는 겁니다. 설령 몸을 만들었는데 로스터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도 불만은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10월6일(한국시간 10월7일) 배니스터 감독으로부터 9번 타순에 배치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 상황으로 되돌아온다. 추신수는 감독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들은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프(감독 이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해도 될까요?”

 

“물론. 얘기해봐.”

 

“먼저 날 로스터에 넣어줘서 고맙습니다. 우리 가족들을 비롯해서 이번 포스트시즌은 큰 기대를 할 수 없었어요. 내가 팀을 위해 한 게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구단이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충분히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었습니다. 포스트시즌 출전은 야구 인생의 보너스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경기 중 필요하다면 날 교체해도 괜찮습니다. 그게 팀을 위한 결정이라면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습니다.”

1차전을 앞두고 선수단 훈련이 실시된 가운데 수비 훈련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던 추신수가 물을 마시며 그날 오전 감독을 만난 상황에 대해 설명해줬다. 며칠 동안 로스터 합류 여부가 미국은 물론 한국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고 기사를 쏟아냈을 만큼 화제를 모았던 터라 그걸 지켜보는 심정을 기자에게 살짝 흘리기도 했다. 

 

“다른 건 괜찮았어요. 그래도 난 이 팀의 베테랑이니까 이런 상황에 대해 구단이나 감독이 미리 이야기를 해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어요. 기자들로부터 얘기를 전해 듣는 게 아니라 일찌감치 날 불러서 팀 상황이나 나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을 직접 얘기해 줬더라면 며칠 동안 마음고생은 안 했을 텐데 말이죠. 그래도 난 할 말이 없어요. 4개월을 뛰지 못한 선수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추신수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 선발 출전했지만 3타수 무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콜 해멀스가 토론토의 막강 타선에 난타를 당하는 바람에 추신수가 비로소 첫 타석에 섰던 3회 말에는 이미 토론토가 5점을 앞서고 있던 상황이었다.

 

“10점을 뒤지고 있더라도 타자는 한 타석 한 타석이 중요해요. 야구는 경기가 끝나기 전까진 어떻게 뒤집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한 타석도 버릴 수가 없거든요. 그러나 선발 투수가 경기 초반에 무너지는 바람에 선수들이 타선에서 힘이 빠진 것도 사실입니다.”

추신수는 3회 멜빈 업튼 주니어의 타구를 잡으려고 쫓아가다 펜스에 수술 부위를 부딪쳐가면서까지 공을 잡아 아웃시키는 명장면을 보여줬다. 그는 “순간 아차 싶었지만 그 당시엔 부상 부위를 신경 쓸 만큼 여유가 없었다”면서 “별다른 영향을 받진 않았던 것 같다. (손목 부위는) 괜찮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추신수는 기자에게 “포스트시즌은 보너스인 만큼 승부에 대한 집착보다 즐기면서 야구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우리 팀의 프린스 필더가 목 부상으로 현역에서 은퇴 선언을 해야만 했어요. 1984년생 한창 야구할 나이인데 불의의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던 거죠. 그에 비하면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에요. 부상이 잦아도 계속 복귀하면서 야구를 하고 있고, 큰돈도 벌었으니까요.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잡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 같아요. 저도 한창 때는 성격이 만만치 않았어요. 항상 내가 중심이고 최고가 돼야 직성이 풀렸죠. 지금은요? 야구선수로 뛸 수 있다는 사실, 주전으로 매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배니스터 감독과 추신수 © 이영미 제공

 

매번 넘어져도 일어선 ‘오뚝이’ 야구 인생

 

추신수의 야구 인생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 2000년 부산고를 졸업하고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한 이후부터 그는 단 한 시즌도 순탄하게 보낸 적이 없다. 항상 한계에 부딪혔고, 그 한계와 싸워가며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마이너리그에서 7년을 ‘버티고’ 이겨낸 끝에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잡았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1억3000만 달러의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이끌어냈다.

 

팔꿈치·손목·발목·손가락 등 그의 왼쪽 부분은 다양한 수술 이력으로 가득하다. 매번 넘어졌고, 그때마다 일어섰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야구 인생을 ‘오뚝이’에 비교한다.

 

“높은 산은 절대 한 번에 오를 수 없잖아요. 등반하다가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히기도 하고,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 자신과 싸움을 벌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오르는 이에게는 정상을 정복했다는 값진 쾌감이 느껴집니다. 난 내 야구 인생을 등반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앞으로 또다시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난 포기라는 단어를 모를 겁니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추신수다운 게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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