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종말 직전 최후 생존자 위한 한 권의 책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30 14:31
  • 호수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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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우주연구원 루이스 다트넬이 쓴 《지식》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세계는 끝났다. 어쩌면 강력한 조류독감의 변종이 결국 종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 숙주에 성공적으로 침투하거나, 생물테러(Bioterrorism)라는 의도적 행위로 유포될는지 모른다. 핵탄두의 뚜렷한 전자기파를 탐지한 중국이 미국을 향해 선제공격을 감행하고, 미국과 유럽의 동맹국 및 이스라엘이 보복 공격을 단행하면, 전 세계의 주요 도시들이 방사선에 오염된 잿더미로 변할 것이다. 엄청난 양의 먼지와 재가 대기권을 뒤덮을 것이기에 지상까지 도달하는 햇살 양이 크게 줄어들고, 그로 인해 10년 이상 핵겨울이 지속되며 농업이 붕괴되고 전 세계가 굶주림에 시달릴 것이다.”

지구 종말 전후에 무엇이 중한지 알려주려 《지식》을 펴낸 영국의 우주연구원 루이스 다트넬은 책 머리말에 소설이나 영화에서 익히 보았을 것이라며 종말 전후의 모습을 요약해 앞세운다. 

 

“생존자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곤경을 받아들인다면, 다시 말해서 과거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던 모든 기반시설이 파괴되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잿더미로부터 다시 일어서서 장기적으로 융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대한 신속하게 곤경에서 벗어나 정상 상태를 회복하려면 그들에게 어떤 지식이 필요할까?”

 

루이스 다트넬 지음 김영사 펴냄 424쪽 1만5800원


생존과 문명 재건 위한 핵심 지식 정리

 

이전에 존재하던 세계는 끝나고 살아남은 자들이 생존을 위해 사투하는 지옥 같은 시간 속을 들여다보며, 그는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제일 필요한지 살펴보는 동시에 인류의 지식 발전 과정을 독특하고 흥미롭게 정리했다. 살아남은 자 중에 자신이 포함되는 행운(?)을 맞았을 때 과연 필요한 ‘지식’이 무엇일까 돌아보자는 것이다. 물론 최악의 종말이 닥친 후에도 생존자들이 곧바로 자급자족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영국 환경식품농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쌀과 말린 국수 및 통조림처럼 부패하지 않는 비(非)냉동식품이 영국 전역에 11.8일 치가 비축되어 있다. 재앙으로 인구가 크게 줄어들어 1만 명 정도가 살아남는다면, 그 비축량으로 50년가량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50년가량 버티면 뭔가 살길이 생기지 않을까. ‘천재 과학자’라고 불리는 루이스 다트넬은 그가 가진 모든 지식을 동원해 절망을 우선 전한다. 

 

“식량과 의복, 의약품과 기계 등 온갖 테크놀로지의 산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여지없이 분해되고 부식되며 퇴락하고 부패한다. 결국 생존자들에게는 유예기간이 주어지는 것일 뿐이다. 문명이 붕괴되는 순간, 원료를 수집해서 정제하고 제조하는 과정 및 운송과 유통이란 핵심적인 과정이 중단된다.”

그래서 루이스 다트넬은 먼저 사라진 문명이 남긴 쓰레기더미에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들을 찾아내 재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 의식주에서부터 의학·의약품·전력·운송·커뮤니케이션·고급 화학·시간과 공간 등 생존과 문명 재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지식과 과학기술을 압축적이고 실용적으로 정리했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가 끝나면 생존자들은 맨손으로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명이 붕괴된 이후 최대한 신속하게 편안한 삶의 방식과 기본적인 수준의 역량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실질적인 지식이 생존자들에게 전달되어야 하고, 그들의 과학적 연구에 필요한 핵심적인 지식도 전달되어야 한다. 루이스 다트넬은 ‘완전한 책(Total Book)’이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온 개념을 찾아내 설명한다. 

 

“옛날 백과사전 편찬자들은, 위대한 문명이 언제라도 붕괴에 직면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오늘날의 우리보다 훨씬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드니 디드로는 1751년에 《백과사전》 첫 권을 출간하며, 대재앙이 닥칠 경우에 대비해서 인류가 이룩한 지식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보존하는 것이 백과사전의 역할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지식》을 펴낸 영국의 우주연구원 루이스 다트넬 © 김영사 제공

 

 

 

“지식 생성해 내는 과학적 방법 남겨줘야”

 

백과사전은 모든 지식을 논리적으로 정돈하고 상호적으로 참조해서 축적한 지식의 타임캡슐, 따라서 재앙이 광범위하게 닥치더라도 시간의 침식에 견딜 수 있는 타임캡슐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루이스 다트넬은 “계몽시대 이후로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며 “오늘날 인간의 지식을 완전하게 편찬하는 작업은 어마어마하게 힘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완전한 책’의 편찬은 현대판 피라미드 건설 프로젝트에 비유되고, 수만 명의 학자가 동원돼 오랫동안 작업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혹시 위키피디아에 참여하는 헌신적인 지원자들이 이미 그런 시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위키피디아는 애초부터 그런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 아니어서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자세한 설명이 부족하고, 기초적인 과학기술부터 첨단 응용기술까지의 발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도 못하다. 게다가 인쇄된 자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일 것이다. 종말 후에 생존자들이 그 엄청난 자료를 어떻게 찾아내서 유지할 수 있겠는가?”

루이스 다트넬은 지식을 보유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 지식을 활용할 수단까지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설명을 보탠다.

 

“종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돕는 최선의 방법은 모든 지식을 포괄하는 기록을 작성하는 게 아니다.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응용되는 기본적인 원리에 대한 설명만이 아니라 중대한 지식을 혼자 힘으로 재발견하는 데 필요한 기법들을 전해 주는 것이다. 요컨대 지식을 생성해 내는 강력한 시스템, 즉 과학적 방법을 전해 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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