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불평등 보고서] 고등학생마저 이렇게 말한다 “우리사회, 노력보다 집안이 중요하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9.1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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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격차가 곧 ‘희명격차’《기회불평등 2016》-②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진다.” 

 

최근 제기된 ‘금수저’, ‘흑수저’ 논란은 한국 사회가 계층이동이 어려운 ‘닫힌 사회’로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한국이 얼마나 ‘닫힌 사회’로 가는지를 통계적으로 검증한 보고서가 나왔다. 비영리 공익법인 동그라미 재단이 발간한 《기회불평등 2016: 생애주기별 경험과 인식 조사》다. 보고서는 청소년층, 청년층, 중장년층, 노년층이 직면한 ‘기회의 불평등’을 분석했다. 시사저널은 3회에 걸쳐 보고서를 통해 한국사회 기회 불평등의 실태를 연재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최하나(29․여․가명)씨는 언제부터인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지 않는다. “취직하고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사는 친구들이 사진을 올리는데, 내가 소외된 느낌이 든다”는 그다. 

 

최씨는 모범생이었다. 외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원래 풍족하지 않던 집안사정이 고등학생이 되고나자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가정의 지원과 관심도 줄었다. 성적도 잘 나오지 않았다. 최씨는 “당시에는 어린 생각에 집안형편이 좋은 아이와 우리집이 배경부터 다르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저 그 아이들이 사교육을 많이 받는 게 부러워 집에 가서 철없이 짜증을 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진학하는 데 실패했고, 지역의 한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생 시절에도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최씨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최씨는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돈을 벌어야 해서 뭐든지 늦었다. 스펙이 부족했고, 취업시장에서 뒤처졌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취업한 지 3년 이상 돼 저 멀리에 있다. 내 능력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태어날 때부터 그 친구들과 내 출발선이 달랐던 것 같다. 그 친구들은 집안 배경이 좋았기 때문에 태어날 때 사교육을 많이 받았고, 이 때문에 다수가 명문대학교에 진학했다. 또 좋은 직장을 잡아 무난하게 가정을 꾸렸다.”

© 일러스트 배중열

 

최씨가 구직과 가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느낀 ‘날 때부터 출발선이 다른 세상.’ 동그라미재단《기회불평등 2016》보고서는 고등학생․20․30대를 상대로 설문해 이를 입증했다. 이 보고서는 실제로 청소년기부터 교육격차가 커지면서, 이는 구직과 가정형성에도 차이를 준다고 분석했다.

 

‘교육격차’의 예는 ‘사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 소득․지역에 따라 사교육 기회가 달랐다. 500명의 고등학생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 사교육을 받는 학생의 비중은 하류층(58.4%)보다는 상류층(72.4%)에서, 월평균 100만원 이상 사교육비 지출 학생의 비중도 하류층(7.3%)보다는 상류층(18.6%)에서 높았다. 사교육을 받지 않는 고등학생은 36.7%였다. 이들이 못 받는 이유는 ‘가정형편상 사교육 비용이 부담이 된다(33.3%)’는 것이었다. 사교육은 ‘안’ 받는 게 아니라 ‘못’ 받는 학생이 많았다. 또 사교육경험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컸다. 사교육을 받는 고등학생의 비중이나 사교육비 지출액은 서울 등 수도권에서 더 높았다. 

 

ⓒ 동그라미 재단


이제는 학생들 스스로도 ‘기회의 불평등’을 느꼈다. 조사 대상 고등학생 중 61.7%가 “사회경제적 성취 과정에서 기회가 공평하지 않다”고 답했다. 연구를 진행한 이성균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현재와 같이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나 지역적 여건에 따라서 교육기회가 불평등하게 제공된다면, 교육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도구로 전락할 것이다”라면서 ”개인이나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최소한 배움의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하는 정책들이 시급히 요청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또 20~30대 1129명을 분석해 ‘교육격차’가 ‘구직 기회’ 혹은 ‘가정을 꾸릴 기회’에 영향을 준다고 짚었다. 20~39세 청년 남성의 경우 고졸 이하에서는 정규직 비율이 64% 정도였는데,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225만원 정도였다. 반면 대졸자의 정규직 비율은 82%, 평균 소득은 292만원이었다. 차이가 컸다. 

 

여성도 학력에 따라 기회의 불평등이 나타났다. 학력․성별에 따른 불평등이 겹친 여성은 불평등한 기회의 ‘샌드위치’ 상태가 됐다. 20~30대 여성 고졸자의 경우 월평균 소득은 184만원에 불과했다. 

 

청년들은 학력과 직업안정성에 따라 결혼․자녀 계획에 영향을 받았다. 미혼 남성 중 ‘결혼의사가 없다’고 밝힌 비율은 고졸이하 학력자가 대졸자보다 3%p높았고,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6%p높았다. 

 

ⓒ 동그라미 재단

보고서에서 청년세대의 ‘기회불평등’을 연구한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늘날 청년층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가족배경의 효과(사회․경제적 성취에서 한 개인의 가족배경이 개인의 노력보다 비중 있게 작용하는 것)는 한국사회가 개방적 사회(open society)에서 폐쇄적 사회(closed society)로 전환되고 있다는 신호”라면서 “일자리 기회와 가족 형성 기회 모두가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아닌 가족 배경과 젠더 등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조건들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지 않도록, 그리고 그 결과가 이후 생애과정 전반에 걸친 누적적 (불)이익으로 나타나게 되지 않도록 청년기의 기회의 평등을 위한 정책적 개입과 사회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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