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커피는 없다. 편안한 커피를 추구한다”
  • 이경진 ‘아레나옴므플러스’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08 16:33
  • 호수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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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로스터 이름 보고 커피 찾는 사람 늘어…서울의 대표 ‘커피맨’ 3인 인터뷰

셰프의 명성이 식당의 간판이 된 시대. 커피업계에서도 도드라지는 이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제3의 물결’이라 불리는 스페셜티 커피가 보편화되면서부터다. 커피란 식재료이고, 생두를 로스팅해 한 잔의 커피로 만드는 일은 요리와 같다. 이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그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를 찾으며 ‘인생 커피’를 만나기 위한 탐험에 나선다. 

 

커피 맛을 구현하는 바리스타나 로스터의 이름을 보고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누가, 어떻게 만드는 커피인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커피 애호가들이 이름을 기억하고 찾는 서울의 대표적인 ‘커피맨’들을 만났다. 팽창하는 서울의 커피업계에서 각자의 개성을 기준으로 삼아 동시대인들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한 이들이다. 

 

 

서울 마포구 도화동.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중 하나인 ‘프릳츠 커피 컴퍼니’가 이곳에 있다. 생두 감별사로 이름난 김병기가 공동대표다. 그는 매해 전 세계의 커피 농부들을 찾아다니며 원두를 산다. 간혹 생두를 직접 로스팅하거나 내리기도 한다.

 

 

‘프릳츠 커피 컴퍼니’ 김병기 대표 © 시사저널 고성준

커피를 업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커피가 내 삶의 지향점을 구현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학생 때부터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 책을 통해 커피 공정무역에 대해 알게 됐고, 이를 통해 커피농장의 농부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바에 서 있으면 멋있을 것 같기도 했고. 너무 1차원적인 생각이었다.

 

커피를 시작한 때와 지금, 추구하는 바는 어떻게 달라졌나?

 

예전에는 팬시하고 트렌디한 것, 빠르고 앞선 것, 한국에 가장 먼저 소개할 것들이 중요했다. 그런데 지금은 관계나 지속성처럼, 시간이 지나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지금 프릳츠 커피 컴퍼니는 어떤 커피를 추구하는가? 

 

우리는 스페셜티 커피를 다룬다. 시작이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스페셜티 커피는 커피를 식재료로 보고, 생두가 지닌 본연의 성질, 그리고 커피 맛에 집중한다. 우리는 중미의 4~5개 국가와 인도의 몇몇 작은 농장들과 직접 거래한다. 1년에 한두 차례 농장을 방문해 생두를 고르고, 구입한다. 오랫동안 같은 농장과 일하는 것이 목표다. 

서울 용산구 보광동 한국폴리텍대학 맞은편에는 ‘헬카페’가 있다. 《수요미식회》 커피 편에 등장했던 카페이기도 하다. ‘지옥다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곳은 코리아 내셔널 바리스타 챔피언십(KNBC)에서 3위를 수상한 바 있는 임성은 바리스타가 공동대표로 있다. 

 

 

헬카페의 임성은 대표 겸 바리스타 © 시사저널 최준필

헬카페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공동대표인 권요섭 바리스타와 나, 둘 다 커피를 나름 10년 넘게 취급한 사람들이다. 콘텐츠를 제대로 채울 자신은 있었다. 이름은 무조건 뇌리에 남는 것으로 짓고 싶었다. 또한 우리 두 사람과 어울리는 이름을 원했다. 시커먼 남자 둘이 하는데 커피 프린스 같은 이름이 가당키나 했겠나. 헬이 아니라 헤븐 카페였으면 지금과 같은 파급력이 없었을 거다. 여러 후보가 있었고 지난한 과정 끝에 결정한 이름이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커피는 어떤 맛인가? 

 

보디감이 좋고 씁쓸한 커피를 선호한다. 우리의 시그너처 블렌드도 그런 맛을 담고 있다. 블렌드 이름도 카페 이름처럼 우리의 이미지와 어울리게 짓는다. 초창기에 지은 블렌드 이름으로는 (좀 세긴 하지만) ‘고추밥’ ‘목구멍 깊숙이’가 있었다.

 

헬카페를 열며 세운 목표는 무엇이었나? 

 

떳떳하게 해내는 것. 헬카페는 나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오픈한 것이었고, 나는 필드에서 나름 10년 이상 뛴 사람이었으니까. 큰일이 없는 한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할 텐데, 창피하지 않게 하자.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커피를 평생의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지금 당신은 무엇을 꿈꾸나? 

 

커피 만들면서 밥 먹고 사는 걸 보여주고 싶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또 나는 커피를 매개로 커피업을 하는 게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카페에서, 필드에서 직접 접객하며 일하고 싶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조용한 주택가. 창문 하나 없는 지하 공간에 로스터리 카페인 ‘커피가게 동경’이 있다. 핸드 드립 커피만 취급하는 이곳의 문 앞에는 매일 긴 줄이 선다. 대표인 이재우는 이곳의 유일무이한 로스터이자 바리스타다. 커피를 볶고 내리는 일을 모두 혼자서 한다. 그는 일을 분배해 얻을 수 있는 효율성보다, 맛의 일관성을 택했다. 망원동은 이재우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이 동네에서 다녔다. 

 

‘커피가게 동경’ 이재우 대표 © 시사저널 이종현

카페의 로스터와 바리스타는 당신뿐인가? 


커피를 볶고 내리는 일은 혼자 한다. 분배해서 일하는 것이 어떠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내 손으로 다 해 드리고 싶다. 지금까지는 할 만하다. 효율성은 좀 떨어진다. 혼자 하기 때문에 손님들도 많이 기다린다. 그게 가장 죄송스럽다. 

 

핸드 드립 커피만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처음 커피를 시작할 때는 보통 카페처럼 에스프레소도 하고, 핸드 드립 커피도 하고, 샌드위치도 팔았다. 커피가게 동경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다 덜어내고 핸드 드립만 한다. 다 해 봤지만, 핸드 드립이 나의 성향과 가장 잘 맞는다.

 

커피가게 동경이 보여주고자 하는 커피는 무엇인가? 

 

맛에 대한 지향점은 계속 변화한다. 지금의 키워드는 균형감, 밸런스다. 스페셜티 커피만 사서 로스팅하던 때가 있었다. 또 산미에 심취하기도 했다. 약배전(생두를 약하게 볶는 일)의 끝까지 가서, 어디까지가 정말 안 익은 커피이며, 어디부터가 익은 커피인지를 보고자 하는 일에 깊이 빠진 적도 있었다. 어리석게도 고객에게 커피 맛을 강요한 때도 있었다. 이게 정답이라고, 이게 진짜 커피라고. 그런 오류를 범하면서 지나왔다.

 

커피에 대한 당신만의 철학이 있다면? 

 

완벽한 커피는 없다는 것. 나는 그걸 인정하고 수긍하는 커피를 하고 싶다. 완벽한 커피를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편안한 커피를 추구해야 그 맛이 고객에게도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커피 만드는 사람의 스트레스도 커피 안에 묻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점 없는 커피를 만들겠다는 지향도, 본인이 스스로 설정한 자신만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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