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참을 수 없는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모병제 발언’
  •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0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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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앞두고 쏟아지는 정치인들의 선심성 발언

대선이 가깝게 다가오긴 한 것 같다. 갑자기 다들 무슨 위대한 위인이라도 된 것처럼 시대정신이 무언지 한 마디씩 내뱉는다. 누구는 격차 해소, 누구는 통일을 부르짖고 있고 누군가는 잠재적 대선 후보들을 한 명씩 언급하며 ‘시대정신을 모두 모른다’며 선각자 흉내를 내고 있다. 그러나 IMF 이후 우리나라 대선에서 거론된 시대정신은 언제나 한결같이 ‘개혁’, ‘통일’, ‘경제’ 셋 중에 하나였다. 역대 대선 후보들의 캐치프레이즈나 선언문을 잠깐만 살펴봐도 한 번에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기본에 충실하지 않고 그럴싸한 발언과 공약으로 대중을 현혹시키는 정치인들을 언제나 경계한다. 그들의 발언 하나하나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대표적으로 진정성이 결여된 선심성 발언 하나가 최근에 눈길을 끈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느닷없이 경기도정과 무관한 ‘모병제’ 발언을 쏟아냈다. 그의 모병제 논리는 사실 새롭지 않다. 앞으로 인구가 급감하면서 대규모의 군대를 운영할 수 없기에 소규모의 빠르고 보다 강력한 군대를 구성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여기에 김두관 더민주당 의원 역시 ‘이라크전을 보면서 미래 전쟁은 사람의 머릿수가 아니라 첨단 무기로 해야 한다는 점을 실감했다’는 실소가 유발되는 발언을 쏟아내며 모병제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쯤 되면 이들의 발언 자체가 얼마나 진정성이나 진심이 없는 선심성 발언인지 한 번에 알 수 있다.

 

첫째, 이라크전이 언제 발발한 전쟁인데 해당 전쟁을 모병제의 찬성 근거로 내세우는지 모르겠다. 만약, 대학 또는 기업 면접에서 어떤 학생이 2003년 발발한 이라크전을 토대로 모병제의 논리를 찬성한다면 그 학생은 십중팔구 아니 100% 불합격될 것이다. 이라크 전이 아니라 걸프전, 더 나아가 과거 2차 세계대전의 역사만 살펴봐도 승전국은 언제나 압도적인 첨단 무기로 상대를 무너뜨렸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최강국으로 부상한 건 첨단 무기로 일본 전역을 초토화시켰기 때문이다. 아울러 첨단 무기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승전국이 되는 것 또한 아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최첨단 무기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는 과학기술이 당시 최고였던 독일이었음에도 연합국의 파괴적일 정도의 물량 공세에 독일은 무너지고 말았다. 베트남 전쟁 역시 미국은 세계 최고의 무기를 보유하고도 상대의 게릴라 전략을 완벽히 뚫지 못했다. 그러므로 전쟁을 머리수나 첨단 무기로 평가하는 건 일차원적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모병제가 정말 대한민국 모든 젊은이들을 위해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방력 강화를 위해 중요하다면 왜 꼭 선거를 한 해 앞두고 이런 발언을 쏟아내는지 그 의도가 궁금하다. 지난 대선에서 전국 대학생들에게 선심성 공약인 ‘반값등록금’을 외쳤던 후보들은 지금 반값등록금이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2012년 젊은이들을 현혹시키기 위한 대선 공약 중 하나가 ‘반값등록금’이었다면 내년 대선은 ‘모병제’인 것 같다. 1200만 경기도민을 위해 도정에 전념해야 할 경기지사가 국가의 미래 과제인 모병제를, 그것도 대선 한해 전에 성급히 발언한 것 자체가 국가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정치인으로서 자격이 없다. 

 

아울러 국방비 3조~4조원으로 모병제를 유지할 수 있기에 비용이 절감되고 줄어든 국방 예산으로 12만~37만개에 육박하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김두관 의원의 주장 역시 너무나 안일하다. 국방비 절감을 통해 이를 일자리 창출로 전환시킨다는 국가 또는 해외 정치인을 본 적이 없다. 전형적인 포퓰리즘 발언으로서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나 성찰 없이 즉흥적으로 쏟아낸 발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첨단무기로 미래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국방을 위해 첨단무기에 투입돼야 할 대규모 예산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참고로 미국의 국방비는 거의 대부분 첨단무기 개발에 투입되고 있다. 전세계가 미국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140만의 미군 병력 규모가 아니라 그들이 해마다 첨단무기에 투입하는 막대한 연구개발 예산때문이다. 

 

더군다나 남경필 지사는 모병제 전환에 드는 예산을 추정하면서 월 급여 200만원, 9급 공무원 수준의 대우를 주장했다. 북한과 마주하는 현실 속에서 죽음을 무릅써야 할 젊은이들에게 월급 200만원 대우가 마치 대단한 보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그의 가벼운 발언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 달에 200만원 주면서 목숨을 바쳐야 할지도 모를 군인으로 근무하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부모 중 선뜻 자신의 아들을 군대로 보내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야말로 가정 형편이 좋지 못해서 또는 자신을 희생해서 집안을 일으키려는 어려운 청년들만 사지로 끌어들이는 격이다. 남경필 지사의 말처럼 군대에 가고 싶을 정도로 정말 좋아진다면 자신의 아들을 다시 한 번 정당히 월급 200만원 주면서 보내길 바란다. 그렇다면 그의 발언을 포퓰리즘이 아닌 진정성으로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필자는 모병제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역시 언젠가는 모병제로 전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마음에도 없는 선심성 발언을 불쑥 쏟아내고 당선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을 이제 그만 보고 싶다. 4년 전 두 대선후보가 반값등록금 실현을 그토록 외쳤음에도 당선된 이나 낙선된 이나 이 제도의 실행 가능성에 대해서 지금까지도 입을 다물고 있다. 또한 매번 대선 때마다 국가의 미래를 걱정해서 진심에서 우러나온 발언이 아닌, 젊은이들의 표를 의식해서 군 복무기간 단축을 약속하는 후보들의 선심성 가짜 공약도 지겹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포퓰리즘 공약에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20대 젊은이들을 현혹시켜서 표를 얻겠다는 심산이면 엇나가도 너무 엇나간 공약들이다.

 

모병제로 전환되려면 군인 한명 한명에 대한 실질적 혜택 외에도 국방부 전체의 문화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강압 위주의 대한민국 군대의 모습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200만원이 아니라 300만원을 월급으로 주더라도 가고자 하는 젊은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 군대를 다녀온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과연 9급 공무원 대우와 월급 200만원을 받고 북한과 실제로 대치해야 할 군대에 자발적으로 가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진심으로 국가의 국방력 강화를 위해,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해 모병제를 생각했다면 장기적인 차원에서 대한민국 군대의 폐쇄적이고 고압적인 문화를 개선하고 군인들을 존중하는 체계적인 시스템과 문화에 대한 대책을 쏟아내야 한다. 군인들이 실제로 겪는 문화를 개선하지 않고 200만원 월급과 9급 공무원 대우를 약속하는 그들의 발언은 여전히 ‘돈을 지금보다 좀 더 주고 대우해주면 취업이 어려운 젊은이들이 많이 갈 것’이라는 저급한 발상에 불과하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두관 의원이 ‘가고 싶은 군대 만들기’ 토론을 했다고 한다.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 나온 발언 자체가 월급 200만원, 9급 공무원 대우, 국방 예산 절감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걸 제공한다고 가고 싶은 군대가 될 수 있다고 그들은 정말 믿는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모 명예교수는 미국 군대는 모병제로 전환 후 여전히 세계 최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는 이유가 정말 모병제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가공할 핵무기와 최첨단 과학이 집약된 무기들 때문에 미국이 전 세계 경찰국가를 자임하고 있다는 건 우리나라 초등학생도 다 아는 이야기이다. 실제 젊은이들이 복무할 수 있는 지원 체계에 대한 깊은 고민과 대안 없이 내년 대선에서 표를 끌어 모으기 위해 쏟아내는 그들의 얕은 발언에 국민은 절대 속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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